“다녀왔습니다.”
“누구야?”
“나야. 나.”
신발을 벗고 부엌으로 가서 얼굴을 내민다. 아들만 셋이다 보니 누가 들어 왔는지 헷갈려하시곤 한다.
“엄마 혼자 먹고 있네. 수한 이는?”
“학원 갔지. 밥 먹었어?”
“있다 먹을게. 친구들이랑 이것저것 사 먹고 왔거든.”
“차려놨을 때 좀 먹지.”
오후 5시. 밖에서 군것질을 하고 들어와 바로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좀만 있다 먹을게요.”
이럴 때만 말끝에다 ‘요’자를 붙인다. 가끔 엄마한테 미안해질 때면 나오는 존댓말이다.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엄마한테는 존댓말이 어색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어른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존엄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편안하고 친근한 엄마를 자연스레 친구처럼 느끼고 있던 것 같다.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재빨리 양말을 벗어던지고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언제 들어올 수 있냐고 묻자 벌써 접속했다고 한다. 게임은 언제나 하듯이 스타크래프트. 친구에게 채널을 전해 듣고선 나도 재빨리 게임을 켠다. 채널에 접속하니 친구가 혼자 들어와 있다.
“다른 애들은?”
“학원 갔다 온데. 둘이 하고 있자.”
그렇게 몇 시간을 했을까.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녀석이 먼저 저녁 얘기를 꺼냈다.
“나 그만 가봐야겠어.”
“왜?”
“엄마가 저녁 먹으래.”
“아.. 한판만 더 하고 가지.”
“안 돼. 내일 다시 하자.”
그렇게 친구가 나가고 나서야 나의 허기진 배도 신호를 보내온다. 게임에 빠져있을 때는 밥 생각 따위 전혀 못 했는데... 마치 게임을 끄고 나면 갑작스레 배가 고파지는 것 같다.
“엄마 배고파.”
힘없는 목소리로 문을 열고 나오니 엄마가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다.
“먹을 때 먹지 좀..”
한숨 섞인 말투와 함께 힘겹게 일어선 엄마가 부엌 쪽으로 향한다. 곧 가스 불이 켜지며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새 편안한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집어 든다.
“수한 이는?”
“아직도 안 들어왔어. 전화 좀 해봐.”
“아. 핸드폰 방에 있는데...”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방으로 간다. 핸드폰을 가지고 나와 소파에 누워 전화를 걸자 어수선한 벨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잠시 후에도 계속되는 벨소리에 결국 음성 녹음멘트로 연결된다.
“안 받는데? 엄마.”
“얘가 요즘 들어 계속 늦네...”
“친구 없는 애들이 수두룩한데 뭐, 신입생치고는 잘 된 거지.”
“그런가? 착한 애들이랑 어울려야 할텐데...”
엄마는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난 그새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 딴 거 봐도 되지?”
그렇게 묻고선 엄마가 대답하기도 전에 채널을 돌려버린다. 시끄러운 예능 프로그램을 틀자 부엌의 도마질 소리마저 묻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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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저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글을 연재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만 해도 일주일에 한 편 씩 올려야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프롤로그를 올리고 난 후 3주씩이나 보내고 나서 첫번째 글을 적게 되는군요. 더욱이 생각했던 것 만큼 많은 양의 글이 나오지도 않고요..
하지만 조회수가 100이 넘어가는 걸 보고, 감동지수가 오르는 걸 보고(비록 숫자는 1이지만 제겐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부담이 되면서도, 큰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와 같아 글을 쓸 때마다 더욱 더 정성을 더하게 됩니다.
매번 늦은 연재에, 짧은 글을 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제 글에 투자하신 시간의 가치를 몇 배의 감동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