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7,732

이 기분은 뭐야...


BY 꿈을 이루다. 2008-12-01

둘 사이로 나무와 풀들의 숨결을 간직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세나의 가슴속에도 일순간 일렁이는

두근거림이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바람 속에서 태육의 몸에 묻은 체취를 느낀 세나는

알 수없는 두근거림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몇 살이나 됐을까... 27... 28?...’

 

“으음...! 저기 죄송해서 어떡하죠? 할머님께서 언제 올라오실지

기약이 없으셔서... 하지만 연락처를 주시면 나중에 따로 연락을

하시겠다고...“

 

잠시 넋을 잃고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세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태육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말을 이었다.

목석처럼 남자들에게 흥미를 잃었던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내심 당황된 세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서 뒤로 넘겼다. 어차피 계속 노인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음을 나눠주고자 했던 노인의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고 받아들인 배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만 자신 역시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노인이 나오지 못할 거라면 그냥 관둬도 됐을 것을...

끝까지 자신을 배려한 노인의 그 마음이 감사했지만 연락처를 알려주며

계속 이어가고 싶은 심정이 세나에게는 없었다.

 

“아뇨... 할머니께서 제게 나눠주신 마음, 너무 감사했다고

말씀만 전해주시겠어요? 이렇게 일부러 사람을 보내시지 않아도

되는데... 연락처는 알려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해요.

그럼...“

 

한참 젊은 사람에게 추태처럼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낯설고

부끄러운 마음에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세나가 산을 내려가려고 했다.

 

“저기요, 혹시 지금 들고 계신 거 먹을 수 있는 거면, 염치불구하고

얻어먹어도 될지...제가 오늘 일찍부터 서두르느냐고 아침을

걸렀거든요. 배 속에 개구리가 열두 마리도 더 있는 것 같이

난리가 났네요. ㅎ ㅎ..ㅎ.“

 

세나가 들고 있던 가방에 태육의 시선이 고정되어있었다.

그도 뻘쭘한지 쓰고 있던 모자를 쓸면서 말했다. 하얗게 들어난

태육의 치아가 세나의 눈 안으로 부서져 들어왔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만들었던 것들을 아이들이나 먹여야겠다던

생각이었다. 노인도 없다는데 할머니께 전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그러려고 했다.

어쨌든 노인이 줬던 돈으로 장만한 음식들이었으니 노인을

대신해서 그가 먹는다면 어쩌면 미안하고 감사했던 묵직한 마음이

덜어질 지도 모를 일... 아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마음이 될 것이다.

 

“...그럴래요? 할머니랑 나눠 먹으려고 했던 거니까...

태육씨라고 했지요? 저기 아래 벤치가 있는 곳에서

들어요, 그럼...“

“ㅎ ㅎ ㅎ... 감사합니다. 거절하면 어쩌나 창피를 무릅쓰기를

잘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한참 나이가 어린데 말씀 놓으세요.“

 

동산 아래 몇 개 놓인 나무벤치 하나에 자리를 잡고 세나가

보온병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한잔 따라서 태육에게 먼저

건넸다. 그리고 초밥과 샌드위치를 꺼내서 가지런히 펼쳐 놓았다.

음식들을 가운데 놓고 한쪽에는 세나가 다른 쪽에 태육이 나란히

앉았다. 매력적인 미소를 얼굴에 그리며 태육이 여자 못지않은 곱상한

손가락으로 세나가 건넨 포크를 받아 유부초밥 하나를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오물거리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와~ 음식 솜씨가 좋으시네요. 정말 맛있어요.”

 

생긴 것만큼이나 듣기 좋은 목소릴 갖은 태육이 붙임성 있게

말했다. 집안 내력인지 노인처럼 태육 또한 낯선 사람에게 거부감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 했다. 어쩌면 저럴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익숙한 편한 상대에게 말하듯 이것저것 말들을 열거하며

태육이 말했다.

 

“제 나이는 29살입니다.”

“대학 다니다가 휴학했어요. 그리고 군대 다녀와서 복학해서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묻지 않은 말을 술술 잘도 이어갔다.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둘의 분위기가 따뜻한 가족을 연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의 말에 “네..." 추임새처럼 간간히 대꾸하며 세나가 생각했다.

 

탈선할 듯 위태롭던 기차같은 심정으로 힘겨웠던 마음을

다시 어떻게든 추켜세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면역성을

키우기 위한 단계처럼 독감을 앓은 듯... 힘겨웠던 마음이

어느 정도 비워진 것이 노인이 계기가 됐던 건지 어떤 건지도

몰랐다. 아니 차라리 생각이란 모든 자체를 차단시키고만

싶은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태육에게 노인을 대신해서 음식을

먹이고 돌아오던 날 밤 세나는 잊지 못할 꿈을 꿨다.

그 꿈만 생각하면 아주 오래전에 잃었던 성감대 부분으로 짜릿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우습지만 그 기분을 한동안 잃고 싶지

않았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입김...

그의 탄탄한 근육질 매끄러운 피부가 유두를 스치던 그 느낌이...

꿈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뚜렷한 느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