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잡고 다잡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맞은 남편이었건만, 역시나 텁텁한 술 냄새를 향수처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술을 세상 사람들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라도 부여받은 듯, 살신성인...제 한 몸에 쏟아 붓듯 먹고 또 먹어 대는 술이었다. 그 속이 무쇠라도 되는 양, 먹고 또 먹어대는 술이었다.
“밥은...”
새벽이 가까운 시간에 들어 온 사람에게 처음해보는 말이었다. 그런 세나의 반응에
‘어허, 이거 또 뭐야... 술이 취하긴 했나봐... 헛소리가 다 들려...’ 순남의 풀어진 눈동자가 잠시 생각하듯 좌우로 흔들렸다.
“밥?! 세상 천지에 어떤 놈이 나를 밥 먹여 주냐?” 순남이 문 앞에서 비틀거리는 모습으로도 바지를 훌러덩 벗어 버렸다. 그동안 늦게까지 먹어댄 술은 어쩌고 까맣게 앙상한 다리가 새삼스레 세나의 눈으로 들어 왔다.
집에 있을 때 먹어대는 밥의 양이 하루 4끼에 아이들 군것질거리까지 찾아가며 먹어댄 것들을 어쩌고, 밖으로 돌며 무엇을 안주삼아 먹은겐지...참 볼품없는 몸이었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간 순남을 애써 태연한척 지켜보던 세나였다.
그녀가 두부와 참치를 넣고 끓인 김치찌게를 좋아하던 남편 순남을 생각해서 시금치 된장국이 있더라도 일부러 만든 참치김치찌게가 담긴 냄비를 가스 불 위에 올렸다.
프라스틱 세수 대야로도 그리 험한 소리를 낼 수 있구나...덩커덩 요란스런 화장실 속의 광경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세나는 온통 까만 머릿속을 뒤지며 잡념들을 떠올리려 했다.
‘내일은 할머니 좀 더 만나고... 모처럼 분이랑 그동안 못한 얘기 좀 꺼내야 되겠다... 그리고 뭐를 해야 하나...’ 그것도 바닥나면 노래를 떠올렸다. 나오는 노래라고는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듯 ‘아! 옛날이여~’ 아니면 ‘참새와 허수아비’처럼 볼품없는 현 시점의 생활과 딱 어울리는 것들뿐이었다.
몰골이 말이 아닌 생태로 그냥 눕지 않은 것만 어디인가, 감사하자...하는 마음으로 차린 밥상, 그 앞으로 씻고 나온 순남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앉았다.
“웬일이야... ”
하고 묻는 말엔 ‘웬 떡’의 반가움보다는 뜻밖의 배려가 살짝 두려움이 묻어있는 듯도 했다.
“뭔 일?”
남자 앞에 애교스런 여자들 드라마에서 많이 봤지만 죽었다가 깨어나도 흉내 못 낼 일이였고, 그렇다고 평소처럼 가시 돋은 말로 대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응, 당신 늦은 저녁까지 술 잡숫고 다니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는데, 집구석에서 하는 일 없는 여편네가 고생하는 낭군님 속이라도 걱정하며 이러고 있는 일이 당연한 것 아니것어여~?’ 하며 잉크라도 한번 찐하게 날리며 깊은 밤, 타오르는 밤을 위하여 암시하며 밥상에서 얼레리 꼴레리, 하는 눈빛을 교환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간단명료한 나름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태생이 그런가보다. 기회를 더 주고 싶었드랬다. 노인의 말도 있었고 미치고 날뛰어 봐야 끝내 손해는 내쪽이였으니까, 몸부림치다 치다 제자리를 찾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었으니까, 굳은 마음과 달리 그럼에도 그런 억울함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세나였다.
“이 밤에 상을 다 차려주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딸꾹...”
살짝살짝 혀의 마비를 느끼며 해대는 말들은 꼬여있었다. 들어 올린 수저가 제 방향을 찾지 못해서 상위에서 연실 헤매다가 힘겹게 찬과 밥을 한 대 모여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세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상 앞에서도 한참을 별의 별, 듣고 싶지 않은 얘기들로 시간을 보낸 순남에게
“피곤해, 얼른 치고 쉬고 싶어.”하는 말로 재촉을 했다.
그렇게 또 하루를 힘겹게 마무리 하고 오랜만에 닦았음에도 술 냄새를 씻어내지 못한 순남의 곁으로 세나가 누었다. 적과의 동침처럼 영 어색한 자리였다.
늘 각방을 쓰는 자신에게 주변에서 하는 걱정은 똑같은 것들이었다. 머리 터지게 싸웠어도 부부는 한방에서 자야만이 정이 깊어진다고. 머리 터지게 싸운 웬수랑 어찌 한방에서 잘 수 있는 건지, 그런 사이에 무슨 정을 깊이 해야만 하느냐고, 꼬치꼬치 따지던 세나였지만 우선 남들 얘기처럼 쉽지 않겠지만 합방부터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역시 잠자기는 틀린 듯, 피곤함으로 모래알이라도 들어간양, 따끔거리는 눈이었지만...정신만은 어느 때보다 맑게 깨어있었다.
어허...그런데 순남의 행동이 심상찮았다. 처음엔 벽을 보고 향하던 자세가 뒤척이는가 싶더니 천정을 향했고... 다시 세나에게로 향했다. 퀸사이즈의 넓은 침대에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세나의 곁으로 순남이 바짝 다가와서 ‘피유...피유...’ 10cm 전방에서 고른 숨을 쉬어대고 있었다. 결혼 생활 16년 째... 아이들 둘이나 낳았고 낙태 수술 전적만도 3번이었지만 남편의 손길이 편치 않았고 그의 품이 거북함을 쉬이 떨치지 못하는 세나였다. 1년 평균 잡아 10번을 중점으로 크게 벗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성관계를 유지할 뿐이었다. 순남과의 성관계가 대부분 불편했던 세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번번이 핑계를 찾으며 피했던 세나였다.
더듬...더듬...
이놈의 잠버릇, 술버릇...아니 어쩌면 잠버릇을 가장한, 술버릇을 가장한...‘니 몸에 금테 둘렀어?’하고 불만을 털어놓던 마음이, 늘 쌓인 욕구불만을 충족시킬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음에 행할지도 우발적인 뜨거운 밤의 욕망을 갈구하는 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물...스물...둔부를 타고 오르는 순남의 거친 손의 감촉이 서서히 위로 향하고 있었다.
“헉!!! 뭐야... 저리 가!!!”
세나가 바짝 다가와 몸을 붙이는 순남의 몸을 세차게 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