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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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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얼굴을 돌려주세요


BY 헬레네 2008-12-13

85년 겨울 또다시 그놈 막내 동생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며 돈을 내놓으라 요구했다 .

 

그동안 몇번의 횡포에도 일절 무시로 일관하던 내가 그날은 참을수가 없었다 .

술을먹고 눈동자를 희번득이며 협박을 했다가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선웃음을

쳤다가 하는식의 정신병자 같은 협박과 행동이 지겨웠다 한두번도 아니고

그놈이 술을 마시고 나타났다 하면 내가 무슨죄가 있어서 번번히 바보처럼 도망을

다니고 숨고해야 하는지 울화통이 터졌다 .

 

이추운 겨울날에 어린아이를 안고 또 어디로 피신을 가야한단 말인가 ?

화가나서 대거리를 했더니 자기는 볼장다본 인생이니 까불지 말라며 이죽거리더니

부엌으로 달려나가 식칼을 찾아들고 나왔다 .

아이는 놀래서 넘어갈듯울며 내품을 애처럽게 파고들며 떨고있고 나는 미처 옷도 챙겨입지

못한채 아이를 안고 도망을 나왔는데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식칼을 들고

우리모자를 찾아다니는 미친개를 잡아갔다  .

 

오뎅공장 시동생이 파출소에 가서 수갑을 채워놓은 놈을 몇대 때려 주었다며 내게 말했다 .

다음날 아침 상철암 파출소에서 나를 오라고 해서 갔더니 경찰아저씨 말씀이 일단 칼을들고

있는것을 현장에서 붙잡았으니 현행범인데 조서를 받아서 넣어봐야 얼마살고 나오면

아주머니만 더 괴롭힐것 같아요 . 저놈의 새끼땜에 우리도 힘들어요 한두번도 아니고

뻑하면 사람을 출동시키니 ,,,,,,,, 참 아주머니가 불쌍하네요 . 하며 나를 동정했다 .

 

나도 조서를 받고 쳐넣어 봤자 발뻗고 못잘것은 분명했다 .

경찰은 내게 풀어는 주되 아주머니 근처에는 얼씬도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풀어 줄것이니

안심하라며 나를 위로했다 .

얘기를 마치고 식칼을 어쩌겠냐는  경찰에게 " 그냥주세요 " 했더니 놀라서 나를 쳐다보며

" 갖고 가시게요 " 한다 " 하도 많이 놀래서 이젠 놀랄일도 없네요 시장에 가서 다시 사봐야

그것도 또 칼이지요 " 했더니 말없이 신문지에 둘둘 말린 식칼을 나에게 내어 주었다 .

 

86년이 되었고 광산 근로자들의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주택개량 사업이 시작 되면서 15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아 상철암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

점점 심해지는 그놈의 술주정은 대답을 해주면 말대꾸를 한다며 건방지다고 때리고 말을

안하면 사람을 무시한다며 때리니 이래저래 매맞는 일만 잦아졌고 아이는 세살이 되었다 .

죽은것도 산것도 아닌 시간들이 치열하게 흘러갔다 .

 

87년의 이른봄날 축농증이 있는내게 용한 의원이 단양에 있는데 같이 가자며 동네 아주머니

몇분이 내게 권했고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3월의 일요일 봄날에 네살바기 아이를 데리고

아저씨 한분과 아주머니 세분 나와  아이까지 6명이 차에 올랐다 .

제천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하니까  번거롭지 않게 다섯명이 공동으로 렌터카를 빌려타고

 가자했고 일행중 가장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아무생각  없이 그러시라 했다 .

가던도중 운전미숙과 정비불량 으로 인해 상동재에서 차가 굴렀다 .

 

봄날의 햇살을 받으며 밭을 일구던 농부가 사고를 목격하고 달려 왔는데 포니 2는 힘없이

구겨져 있었고 앞좌석의 나는 차유리가 내얼굴로 쏟아진 탓에 귀도 덜렁대고 턱도

 덜렁거릴 정도로 온얼굴이 성한곳 없이 찢기워져 있었고 아들녀석은 다리가 부러졌다 .

앰블런스가 오고 부러진 다리가 덜렁 거리는데도 아프냐는 내질문에 녀석은 참을수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 응급실 안에서도 늘 매맞고 당하는 엄마가 슬퍼 보였는지 아프냐고 묻는

의사나  간호사 선생들에게 나는 괞찮은데 우리 이쁜엄마 얼굴이 많이 아프겠다며 우리엄마좀

안아프게 해달라고 부탁을해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감동을 먹였었다 .

한쪽다리를 무릎위까지 깊스를 하고도 당시 최고의 인기가요인 박남정의 널그리며를 부르며

춤까지 춰 주어서 병원의 인기를 독차지 하는 아기천사 였었다 .

 

급하게 대충대충 꿰메어 놓은 얼굴은 가관이었다 .

한달여 만에 퇴원을 하기전에 성형외과 의사는 내게 6개월후에나 성형수술을 할수

있을것이라고 설명을했다 .

어떻게 해야돼냐고 물었더니 방법은 두가진데 6개월후에 오더라도 나처럼 많이 찢어진

경우에는 한꺼번에 수술을 다못하고 몇번에 나누어서 해야하는데 그냥 보험회사 에다 맡겨서

보험사의 지정병원으로 가던지 아니면 성형수술비를 견적을 뽑아서 보험사에 제출하고 내가

원하는 곳 서울이든 어디든 내맘대로 가서 할수있는데 문제는 지금 현금으로 지급을 받았을땐

예를 들어서 2년에 걸쳐서 하게 된다면 매년 의료비가 10 % 정도 오르는 것은 반영이

안되니까 본인이 보태서 할수도 있다며 설명을 해주었다 .

 

내나이 이제 스물여덟인데 병원 복도를 지날때마다 쯧쯧대며 측은한듯 쳐다보는것도 싫었지만

화장실에서 비쳐지는 내얼굴이 나도 무서웠다 .

서울로 가리라 ,,,,,,,,,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명동으로 가서 처음 상태 그대로 만들어

 놓고야  말리라 . 마음먹고 성형외과 선생에게 견적서를 요구했다 .

1센치당 수술비가 3만원인가 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꼼꼼히 자로재서 산출을 해주더니

그당시의 거금 13만원을 견적서 값으로  내라면서 간호사를 시켜서 받았다 .

 

퇴원수속을 마치고 아이를 업고 원주에 있는 자동차 보험사를 찾아 갔더니 내얘기를

들은 보험사 직원은 나를 보며 코웃음을 쳤고 그런경우는 아예 없다면서 있지도 않은

선례라며 아예 대꾸조차 안했다 .

 

다시 원주기독병원을 찿아가 보험회사 직원의 얘기를 그대로 전하면서 선생님의 얘기와는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된거냐고 묻자 그건 난 모르겠다며  내가 보험사 일까지

어떻게 아느냐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았다 . 그럼 견적비 13만원은 돌려 주세요 이게 아무

소용없는 무용지물 이라면 이거 도로 놓고 갈테니가 내가낸 돈은 돌려 달라는 내말에

돈을 내가 받았느냐 간호사에게 얘기하라며 시치미를 뗐고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다 .

 

억울해서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경찰서에서는 별거아니라는듯 보험사에서 안해 준다는것도

아니잖아요 하며 오히려 나를 핀잔을 주었다 .

이게 세상이고 세상은 내가 맞서 살아가기엔 이렇게나 함정이 많은곳이구나 .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한 사기가 힘없고 순진한 자기의 환자를 치료한 의사였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고 칼만 안들은 도둑놈들이 의사란 소리가 맞는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