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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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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엄마


BY 헬레네 2008-11-19

사택단칸 방에 살던엄마가 한칸을 더 얻어서 벽을트고 방둘 부억 둘이던 것을

방둘 부엌하나 거실하나를 만들어서 대궐같은 집이 되었다 .

 

둘째언니를 불러 들여서 부엌일을 맡기고 엄마는 3교대로 돌아가는

광산일을 하셨는데 천성이 남자스러워 부엌일을 싫어하던 엄마였다 .

결벽증이 있을정도로 깔끔 스럽던 엄마는 청소는 하루종일 할지언정

부엌에서 음식만드는걸 싫어하셨다 .

 

안가겠다고 , 내나이 스물에 무슨 시집을 가느냐고 대항하는 작은언니를

거의 강제이다 시피 합방을 시켰고 27살의 형부에게 시집을 보냈다 .

처음엔 강제 였는데 언니는 그런대로 행복해 보였고 엄마의 강제가 꽤 괞찮은

선택이었던것 같았다 .

 

부엌일을 질색하시던 엄마가 이번차례인 날 불러 들였고 나는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가정주부가 되었는데 집안의 절대 권력인 엄마에게서 늘 도망치고 싶었다 .

 

당시엔 집집마다 문밖에다 사과궤짝이나 고무다라이 등을 두고 쓰레기를 모아두었다가  

새벽 4-5시  사이에 딸랑이를 흔들며 청소차가 오고 소리에 맞춰  일어나 들고가서 청소차에

올려주면 아저씨들이 받아서 차에 쏟고 빈통을 돌려주면 받아 와야하는데 연탄이

주연료 였으니 아침부터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는날이 허다했다 .

 

어쩌다 깜빡 하루를 걸르면 내일 버려도 될것을 잡아먹을듯이 쌍욕을 해대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어쩌다 막걸리라도 얼큰하게 마신날이면" 이년 대갈통을 빠숴버릴까보다 "며

 혼자 흥분했다가 실제로 사과궤짝을 내게 들이 붓는다며 들고 오는것을 옆집 미경이

 엄마가 말려 준적도 두어번 있었다 .

 

여름이면 김치를 항아리에 담아서 큰 고무다라이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담궈두고 먹었는데

행여 깜빡잊고 다 먹은 김치 항아리를 제때 안씻어 둔것이 눈에라도 띄는 날이면 집구석에서

쳐먹고 노는년이 이런것도 하나 안하고 있다며 김치 항아리로 내 대갈통을 부숴야 한다며

욕을하다가 그래도 성이 안풀리면 항아리를 들고 내게 돌진해 오고 나는 피해서 도망을 다녔다 .

 

추위가 덜가신 이른봄 꽁치철엔 역에가면 온통 꽁치가 지천이었다 .

엄마는 1호방 정엽이네 집에서 몇사람과 술을 먹고 있다가 술이 얼큰히 취해서 나를 부르더니

돈 만원을 주면서 역에 기차 들어올 시간이니 가서 꽁치 열두름을 사오란다 .

꽁치젖을 담아야 한다면서,,,,,,,,,,,,,, 나는 고무다라이를 들고 역에가서 한두름이 스무마리니까

열두름 200마리를 고무다라에 담아 이고 엄마가 시킨 설탕한포를 들고 힘겹게 돌아와서 옆집에

있는 엄마에게 보고했다 . 만취되어 놀고있던 엄마가 날따라 오더니 " 남은돈은 ? " 하시기에

쓰고남은돈을 건네는데 갑자기 " 이 x 같은 년이 간도 크게스리 그 많은돈을 다쓰고 요걸

남겨왔네 " 하더니 욕을하기 시작했다 .

칼로 배떼지를 콱 쑤셔 죽인다는둥 내손에 죽어보라는둥 하며 길길이 날뛰며  내가 한두름만

사오랬지 언제 열두름을 사오랬냐며 두들겨 팼다 .

 

동네사람들이 말리고 옆집아줌마가 " 열두름 사오라 소리 우리모두 들었는데 왜 아를 잡나

미쳤데이 그리고 한두름 갖고 무슨 꽁치젓을 담노 ? 열두름은 돼야지 " 하며 말려도 막무가

내여서 당신 화가 풀릴때 까지 잡고 때렸다 .

힘이 장사여서 80 kg 짜리 가마니 쌀을 번쩍들어 머리에 이고 오는 엄마이니  청년들도

힘으로는 왠만해선 못당했다 .

 

억울한 매를 맞고 굴신도 못하고 누워있어도 미안하단 소리는 커녕 여전히 손하나 까딱안하고

제때에 밥을 안주면 난리가 났다 .

그후에 공동 수돗가에 물을길러 갔다오는데 황반장네 아줌마가 조용히 내게 오시더니

" 친엄마고 계모고 ? " 묻길레 대답을 안했더니 몇몇 사람이 후에 내게 전하길 " 계모였다고 ? "

하며 놀라워 했다 .

 

툭하면 사네 , 못사네 하고 친정으로 쫓아오던 큰언니가 또 다시 2살 4살의 아이들을 이끌고

집으로 왔고 한바탕 난리를 치른후에 형부가 와서 애들과 언니를 데리고 돌아가는길에 타고가던

택시가 굴렀단다 . 아무도 안다치고 언니 혼자만 다쳤는데 혼수상태 였다 .

당시 시골병원의 의료기술로는 안된다며 후송을 갔고 유달리 큰딸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엄마는 꼬르륵 넘어갔다 .

 

틈만나면 수시로 애들을 맡기지 못해 안달하던 큰언니는 병원에 실려갔고 어린 조카들까지

내몫이 되었다 . 물을 길러다 먹고 손빨래를 해야하는 당시에는 날마다 내복에 , 겉옷에 기저귀

까지해서 빨래감은 늘 고무다라로 한가득 넘치게 나왔고  어린조카들이 설사라도 할라치면

빨래감은 두배가 되었다 . 엄마는 저년이 집구석에서 `아 도하나 못보고 설사병을 나게 했다며

욕을해대면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혼란스러워 졌다 .

자기 자식도 나몰라라 했던 사람이 외손자 , 손녀를 그렇게 까지 벌벌떨며 돌보는것이 이해가

안됐고 힘든 노동일에 적당히 지쳐서 술이라도 거나해서 들어온날은 자신이 무슨말을하고

어떤행동을 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생각나는대로 함부로 말하길 " 내 피 빨아먹고 사는 인간들

하루에 한마리씩 꺼꾸러 뒤져래이 " 하면서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악을쓸때면 내가 마치

버러지가 된것같은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

아들에게는 , 큰언니 에게는 엄마였지만 나머지 우리에겐 엄마가 아니었다 .

17세에 시집와서 18세에 큰언니를 낳았고 큰언니 역시 열아홉에 낳은 조카이니 37세에

외할머니가 되었고 40세의 외할머니가 자기딸보다 외손주가 더 끔찍히 이쁘다는게 내머리

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시커먼 광산촌에서 새벽 다섯시면 일어나 물을길어다 밥을하고 도시락을 싸서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나서 2살짜리 조카를 업고 청소에 빨래까지 하고나면 12시나 한시가 훌쩍 넘었다 .

때 맞춰 두아이들은 백일기침에 걸렸고 하나를 재워놓고 병원에 데리고 가 주사를 맞춰 데리고

와서 재우고 또다른 하나를  업고 병원에 갔다오면 하루해가 다갔다 .

두달여를 백일기침을 앓던 아이들에게 시달리랴 , 살림하랴 , 하루종일 쉴새없이 힘들어도 워낙

깔끔을 떨던 엄마인지라 지저분 한것은 조금도 용서가 안됐으면서도  당신은 손가락 하나를

까딱안했고  밥상한번을 들어다 주질 않았다 .

뒷집 옥이가 부러웠고 고등학교 졸업반인 원자가 한없이 부러웠다 .

 

드디어 언니가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지가 한참을 됐는데도 애들을 데리고 갈생각을 안했다 .

쫙 빼입고 손님처럼 와서 해주는 밥을먹고 손가락 하나 까딱않고 앉아 있다가 가버리고 나면

엄마는 내게 " 니언니가 병원에 오래 있어서 아직 시원치 않으니 니가 아들좀 봐레이 " 하며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던지면 나는 대꾸도 못한채 멀거니 있었다 .

 허구헌날 쏘다니 면서도 엄마 앞에만 앉으면 아주많이 아픈것 처럼 쇼를 했다 .

어쩌다 자기 감정이 조절이 안돼면 갑자기 악을쓰며 흥분했다가 공황상태에 빠져 드는것이

엄마와 똑같이 닮은 큰언니 였다 .

 

형부와 함께 놀러갔다 오는 길이라며 들렀기에 도저히 못참고 얘기했다 .

이젠 애들좀 데리고 가라고 ,,,,,,,,, 사람들이 나를 애엄마 인줄 착각 하는것도 싫고 애들보며

 살림하기가 너무 힘이 드니까 웬만하면 델고가서 언니 새끼들은 언니가 키우고 애엄마면

 애엄마답게 행동하라고 ,,,,,, 얘기 했더니 갑자기 흥분해서 내게 달려 들더니 머리채를 잡고

벽에다 대고 찢찌으며 죽여버리 겠다고 목을 조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

감히 언니를 가르치려 든다면서 ,,,,,,,,,,,,,참으로 어리석었던것은 대항을 하고 같이 때려 줄수도

있었건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동생이니 같이 때리면 안될것이란 생각에 그매를 고스란히

맞았고 형부란 작자는 팔짱을 낀채 구경만 하고 있었다 .

 

매 맞는 소리에 옆집 미경이 엄마가 달려왔고 " 지동생을 어째 그렇게 두들겨 패나 내가 보다 보다

첨봤데이 그 기운이면 소도 잡겠다 야가 얼마나 힘든데 그래 때래쌌노 ? 어이 니 힘쓰는거 보이까

아들 델꼬 가도 되겠네 " 하며 나무라자 겨우 진정이 되었고 엄마가 퇴근해 들어왔다 .

헝클어진 머리와 여기저기 터진 자국들을 보면서도 태연히 " 니들 뭐? 했노 " 하고 묻기만 하자

아줌마가 끼어 들어 설명을 하면서 " 내사 보다 보다 첨봤데이 지 동생이 지아들을 봐주느라고

얼메나 힘이드는데 한참 놀 나이 아이가 " 하며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

 

나는 당연히 엄마가 내편이 되어서 야단을 쳐줄것이라 생각 했는데  목이 부어오르고 입술이

 다 터진 내 몰골을 보고도 씩 웃으면서 " 가시나가 아~들좀 보는게 뭐 그래 힘들다꼬 " 하며

" 원래 동생은 언니한테 맞고 크는거라 "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더니 큰언니를 야단한번 하지

않고 끝냈다 . 나는 당연히 니 동생말이 맞다며 왜 ? 동생을 저꼴로 만들었냐며 얘기할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게도 언니는 의기 양양하게 돌아가 버렸다 .

 

며칠을 앓아 누웠고 목이 졸렸던 터라 물한모금 못삼킨 나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 똑같은 일상을 강요 하고 있었다 .

둘째 언니가 와서 보더니 어떻게 그럴수 있냐며   왜 가만 뒀냐며 엄마를 상대로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 나는 더 이상 참을수도 ,  견딜수도 , 이해 할수도 없어서 가출을 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