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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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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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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달도 있었다


BY 장미혜 2007-11-06

눈이 유난히도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남편과 나는 아직까지 신혼이었기에

 

참 다정하게 지냈었다. 그 무렵 회사 사정이 어려워 여러가지 일을 도맡아

 

해야했던 남편은 새벽까지.. 업무상이라며 술 마시고 들어오는 일이 무척이

 

나 많았다.  그러다보니 남편에게는 아침에 늦잠 자는 것은 거의 생활이 되

 

어있었다. 그날도 8시 30분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간신히 깨워

 

놓고 남편이 씻는 동안 그 당시 한참 유행했던 푸른색 와이셔츠에 어떤 넥

 

타이가 어울릴지를, 침대위에 넥타이를 모조리 꺼내 놓고는 맞춰보고 있었

 

다. 욕실에서 나온 남편이 오늘은 빨리 가봐야 한다며, 옷 입고 아침 먹는

 

동안에 자동차에 시동 좀 걸어 놓고 오라고 했다. 그 당시 난 면허증도 없

 

었고 겁도 무지 많았기에 도저히 할 수가 없을것 같았다.

 

"나.. 못할 거 같은데요. 한 번도 안해봐서 무서워요~"

 

"괜찮다. 걍 열쇠 낌어가~ 끝까지만 돌리믄 된다"

 

"진짜? 진짜 그러기만 하면 돼요? 엉?"

 

"그래. 얼른 갔다 온나"

 

거실 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도 매서웠기에 난 남편의 무스탕

 

잠바를 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 당시 난 몸집이 아주 작은 편이어서

 

남편의 잠바를 입으면 임신한 사람인지 학생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였다. 남편은 어젯밤에 술이 너무 취해서 차를 어디에 새워 두었는지 잘 기

 

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빙판진 길 위를 열 발가락

 

에 힘을 끝까지 주고 천천히 걸어갔다. 주차장에는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

 

들이 여러 명 있었다. 차 유리의 성에를 긁어내고, 바퀴에 체인을 감고 사

 

람들은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앞쪽을 지나 뒤 주차장으로 갔을

 

때 화단 옆에 비스듬하게 새워져 있는 남편의 차가 보였다. 차문을 닫고 운

 

전석에 앉아서는, 남편이 하라는 대로 키를 돌리는 순간.. 이런! 차가 앞

 

로 서서히 움직이는 게 아닌가...

 

 "엄마야~ 엄마~ 이거 왜이래~ 아저씨! 저기 나 좀 살려주세요!

 

  저기요~! 엄마야~"

 

유난히 겁이 많았고 또 만삭의 둔한 몸이었기에 난 어찌할 바를 몰라 차 안

 

에서 바들바들 떨며 울먹일 뿐이었다. 그때 바로 앞 쪽에서 자동차 앞 유리

 

의 성에를 긁어내고 있던 한 아저씨가 달려와 차를 잡아주고는 괜찮냐며 얼

 

른 내리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어느새 눈물이 맺힌 눈으로 말없이 그

 

사람에게 차 키를 내밀었다.

 

 "괜찮아요.. 잠깐 옆으로 가 있어요"

 

남자는 차 키를 받아서는 차를 안전한 곳에 옮겨주고 시동도 걸어주었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안 채워져 있었네요"

 

 "네? 네.. 고맙습니다.."

 

늠름한 모습의 남자는 나에게 활짝 웃어 보이고는 자신의 차를 타고 날렵하

 

게 빙판이 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때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뭔지도

 

몰랐음으로 그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날 아침 그는.. 내게 참 고마

 

운 사람이었다.

 

 

 

 

그는 나보다 더 그날 일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일에 대해 자꾸 이

 

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그와 나는 차츰 친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영애씨. 정말 귀여웠어요. 물론 지금도 예쁘지만 그땐 꼭 아기천사

 

  인형같았어요. 그때가 영애씨 스물 한 살때죠? 아마?"

 

 "네. 근데 제 기억으론 그때 제 이름이나 나이를 가르쳐 드린 적이 없는

 

  데요.."

 

 "네. 물론 그랬죠.. 영애씨는 그때 하얗게 질려서는 아기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니까.. 근데 지난번에 보니까 아이들 태우고 어디 다녀오는

 

  것 같던데.. 이제 운전 잘 하시나봐요? 이젠 그때 생각하면 웃음나지 않

 

  아요?"

 

 "네.. 웃음 나요. 그치만 그때는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잠시 동안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며 웃었다.

 

 "그날 회사에 가서 위층 숙소 직원들한테, 아침에 있었던 일 설명하면서

 

  영애씨 인상착의랑 차 종, 차 넘버 가르쳐 주고는 뒷조사좀 해보라고 했

 

  죠. 우리 회사엔 아파트에 사시던 아주머니들이 몇분 계셨거든요..

 

  그랬더니 반나절도 않되서 녀석들이 정보를 수집해다 주었는데.."

 

 "좀.. 실망하셨겠어요~"

 

 "네. 그날 세상에 있는 소주.. 제가 다 먹어 없애버릴려구 했습니다. 하

 

  하하"

 

우리는 조용한 놀이터에서 한참을 그렇게 소리내어 웃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의 옛 이야기, 요즘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어머. 세시가 넘었네요. 얼른 들어가 보셔야죠"

 

 "그럼 영애씨는요?"

 

 "전화 다시 한번 해보죠 뭐"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신호음이 채 몇번이 울리기 전에 남편이 전화

 

를 받았다.

 

 "와? 무신 일 있나? 와이리 전화를 마이했드노?"

 

남편의 첫마디였다.

 

 "열쇠.. 않주셨잖아요.."

 

 "아~ 열쇠를 내가 가 있었드노? 알았다"

 

남편은 조금 미안해하며 지금 곧 들어 오겠다고 했다. 남편과 통화를 끝내

 

고 그를 바라 보았을 때, 그는 어느새 또 한개피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 채 였다.

 

 "남편한테 원래 그렇게 말해요?"

 

 "뭘요..? 제가 어떻게 말 하는데요?"

 

 "존댓말.. 하잖아요"

 

 "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신랑이랑 열살 차이 나거든요"

 

 "그래두 부분데.. 그게 잘 않되지 않아요?"

 

 "글쎄요. 이제 습관이 되서 잘 모르겠어요. 대신 싸울 때는 한번씩 반말

 

  두 해요. 많이 화났을 땐 어쩌다 '나이두 많은게~' 이런 말두 하구요"

 

나의 말에 우린 또 한번 웃었다. 그렇게 여러 번을 함께 웃으면서, 나는

 

어느새 남편이 조금만 더 늦게 오기를 바라고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한대가 들어왔다. 역시 남편이었다.

 

 "오셨나봐요"

 

 "네.. 얼른 가보세요. 많이 춥죠? 영애씨 감기 걸리겠어요.."

 

 "네.. 들어 가셔야죠?!"

 

 "네. 가야죠.. 먼저 들어가요. 전 조금만 더 있다가.."

 

 "그래요. 그럼. 저 먼저 갈께요.."

 

나의 인사에 그는 8년전 그날 아침, 주차장의 그 하얀 눈처럼이나 뽀얀 얼

 

로 다시금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왠지 그 환한 웃음 속에서 순간 달 같은 쓸쓸함이 베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날 일은  남편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워낙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어쩌면 의도적으로 나는, 남편에게 많이 수다스러운 편이어서, 일상의 모든

 

일들이나 내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일들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는 편

 

이었지만 어쩐지 그에 대해서만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들키면 안 될

 

것만 같은 커다란 비밀처럼 난 그에 관한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 마저도 내

 

가슴 속에 꼭꼭 숨겨 놓았었다.

 

 

 

 

그의 이름은 '유경민'이라 했다. 나이는 세른세 살이라 했고, 아들 이름이

 

'영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영재아빠'라고 불렀다. 나 또한 사람들

 

과 이야기 할 때는 그를 '영재아빠'라 불렀지만 그와 승강기에서 만난다거

 

나 하여 잠시나마 둘이만 있을 때면 곧잘 '경민씨'라 부르곤 했다. 그날

 

놀이터에서 그가 나에게 '영애씨'라고 불러 주었을 때 난 그 흥분되면서도

 

낯선 느낌에 묘한 매력을 느꼈었다. 이십대 초반에 큰 아이를 낳고 난 후로

 

내 이름은 줄곧 '정아엄마'였기에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난..

 

그 동안 식민지 시대에 살면서 강제로 빼앗겼던 주권을 찾은 양 알수 없는

 

해방감마저 느꼈었다.

 

여자들이 원래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림만 하다보면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

 

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런 주부로서의 소소한 당연함에서 오는

 

일종의 박탈감을 남자들은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

 

어쨌든 난 그날, 그 때문 아주 오랜만에 내 이름을 찾았었다.

 

 

 

 

놀이터에서의 만남이 있은 후에 우린 꽤 많이 친해졌다. 수퍼에서 만나면

 

서로 음료수를 권한다거나 주차장에서 마주치게 되면 서로 상대가 주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다거나 하며 말 그대로 우리는 

 

'친한이웃'이 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그와 마주치는 날이면 우리집 식탁은 항상 풍성해졌고 그를

 

알게 된 후로 왠지 목욕탕 청소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이불 빨래나 베란다

 

청소, 서랍정리 등의 집안 살림에 나는 부쩍 열심이었다. 그 때문에 오랜만

 

에 생활의 활력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나는 예쁜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부터 나에겐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에도 꼭 거울

 

을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나의 서른한 살은.. 이렇게 아주 작은 행복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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