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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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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여 불어라 -3-


BY 데미안 2012-06-15

 

1.

시간이란게 세상사와 상관없이  앞만 보고 가는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상도 하다.

어찌보면 늘었다가도  눈깜짝새 줄어드는 게 시간이란게다.

그 깊고 깊은 밤이 준수에게는 그렇게 짧을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을 찾아 그 달콤함속에 빠져들고 그의 두 손은 준수의 의지를 배신한 채 그녀의 곱고 부드러운 탐스러운 가슴과 매끈한 배와 앙증맞은 엉덩이, 그리고 환희가 철철 넘쳐나는 열락의 숲속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물고 빨고 맛보고 훔치는 동안만이라도 시간이란 놈을 묶어두고 싶은 게 준수의 심정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준수는 침대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기분좋은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넓다란 황금빛깔의 침대 위에는 윤설이 세상 모르고 잠에 취해 있었다.

한손은 머리 위로 올려져 있고 한손은 옆구리에 둔채 말이다.

머리카락은 물결처럼 흩어져 있고 뽀송뽀송한 이불은 반쯤 흘러내려 그녀의 몽글한 가슴 한쪽이 드러나 있었다.

참지못한 준수가 손끝으로 빨갛게 솟아있는 유두를 살짝 건드리자  잠결에도 그녀는 파르르 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러나 깨지는 않는다.

그가 얼마나 그녀를 몰아붙혔으면 그럴까 싶다.

그것을 아는 준수기에 굳이 그녀를 깨우려 시도는 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인데 뭘...

설아, 앞으로 한동안은 내가 짐승처럼 굴면서 너를 재우지 못하는 날들이 많을거다.

어젯밤처럼 네가 힘들어해도 울며 애원해도 난 들어주지 못할지도 몰라.

네가 그런 나를 당분간은 참아줘...

 

피식 웃었다.

준수는 손으로 이불을 잡고 잠시 들추어 보았다.

그녀의 몸 군데군데가 붉다.

밤새 그의 욕망이 만들어놓은 흔적들이다.

안쓰럽지만 준수는 왠지 뿌듯하고 기쁘다.

그것이 남자들의 영웅심리에서 오는 우월감이요 생식본능에서 오는 소유욕이 아니겠는가.

마음같아선 그녀옆에 다시 누워 자신이 만들어놓은 그 흔적 하나하나에 입맞추고 싶으나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준수는 아쉬운 신음을 흘리며 이불을 끄러다 그녀의 목까지 조심스레 덮어 주었다.

그리고  잠든 그녀의 입술에 가만히 입술을 겹쳤다.

[사랑해...]

 

2.

사랑해.......

끔결에도 그 소리는 알아들은걸까...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뒤틀었다.

다시금 깊은 잠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갑자기 몸을 발딱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침대위로 풀썩 쓰러졌다.

온몸이 쑤시고 아릿한 통증과 가시지 않은 절정의 여운이 그녀의 온몸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아, 진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어제는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다.

호텔에서 나와 그녀와 준수는 장여인에게 들렀다.

그리고 간단한 짐만 챙겨서 그녀는 준수의 집으로 왔다.

짐도 채 정리하기 전에 준수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누웠고  그 다음은...!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밤새도록 열락속에서 환희를 경험하며,  마치 저 손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 올라 무아지경속에서 허우적 댄 기분이었다.

그의 짙은 애무속에서 까무룩거리기도 하고 울며 애원하기도 하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설은 기억에 없다.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무엇하나 걸치고 있지도 않았다.

퍼뜩 정신이 든 그녀가 옆자리를 보았다.

없다.

그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알몸임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시간을 보았다.

10시가 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요란스레 계속 울렸다.

얼른 휴대폰을 열었다.

 

[네에, 여보세요]

-애기냐? 나다!-

애...기?....나보고?....누구....! 힉.

신여사다. 정신이 확 깼다.

[어, 어머님! 안녕하세요?]

_쯧쯧...얘야 너 지금 정신없지?-

[네? 아, 아뇨!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됐어. 설명하지도 않아도 안다. 아마 그 놈이 밤새도록 괴롭혔겠지...-

뒷말은 혼자말처럼 들릴락말락 했다.

[저기, 어머님....]

-오늘 어디 가니?  점심때 나올수 있겠니?-

[네에...어디로 갈까요, 어머님?]

-준수와 통화해보고 결정하거라. 끊는다-

 

설은 준수에게 문자를 했다.

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

얼마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일어난거야? 괜찮아?-

나즈막하지만 부드러운 그의 음성에 그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언가 아릿한 아지랭이 같은 열정이 발끝에서 스멀거리며 기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요!  그런데 왜 깨우지 않았어요?  나, 잠버릇 그렇게 얌전한 편 아닌데...]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널부러져 자고 있었을 자신의 모습이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그가 웃었다. 기분좋은 웃음이다.

-알아...잡아먹어라는 듯 활짝  나래를 펴고 자던걸?-

웃음벤 그의 말에 설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했다.

-네가 오라고 하면 난 지금 바로 갈 수 있어. 그럴까?-

[아녜요! 무슨...!]

그가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저기, 어머님이 전화하셧어요. 점심때맞춰 나오라고 하시든데... 당신과 통화해보라고...]

끙.

이번엔 준수가 앓는 소리를 했다.

그녀가 웃었다.

[준수씨.  저 어머님한테  통역비도 받아야 하는데...알죠? 제가 호텔로 갈까요?]

 

설은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을 맞춰 준수가 차를 보낸다고 했다.

코트를 챙겨서 나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혜지다.

잊고 있었다.

[어, 혜지야. 그렇잖아도 너한테 전화할...!]

설은 통화를 하다말고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혜지의 째질듯한 버럭 소리에 귀가 멍했다.

-너 어디야? 너, 너, 그게 다 무슨 소리냐구?-

어이쿠, 나야 말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수가 없네. 앞뒤 다 빼고 서는...

-가게 전화했더니 너,! 너...뭐라구? 결혼했다구? 그래, 분명히 그렇게 들은것 같았어. 이모님이 너랑 통화를 해보라고 해서...너, 거기 어디야?-

[혜지야. 장혜지! 진정좀해!  그렇잖아도 오늘 중에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어. 우리 저녁에 만나. 알았지? 우리가 가던 그 커피숍에서  6시에 만나. 만나서 얘기해]

 

잊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혜지한테 일언의 말도 없이... 하긴, 나도 뭐, 정신이 없었지 뭐... 김준수씨가 이래저래 내게 생각할 시간을 줬나 뭐...

설은 고개를 저었다.

혜지의 그 속사포 잔소리를 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다 없다.

 

3.

호텔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준수가 직접 차 문을 열고 그녀가 내리게 잡아주었다.

호텔 직원들의 눈이 호기심을 갖고 그녀를 보았다.

준수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로비로 들어섰다.

카운트 직원들의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벌어졌다.

[모두들 쳐다봐요. 손 좀 놓고...!]

[쳐다보는 건 신경쓰지마.  여기서 내가 너한테 키스를 한들, 어때서 그래. 내 아내 내가 만진다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곧 네가 내 아내라는 건 다 알게 되어 있어]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그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나저나 어머니가 너를 자꾸 불러 내는 핑계를 만드시는데...]

[왜요? 어머님이 저 찾는 거 싫어요? 전 좋은데?]

[좋아하면 안돼. 어머닌 너를 어머니 사업에 동참시키려 할 용량이신데 그러면 너와 내가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들지. 그리고... 아니다. 관두자. 하여튼 이 문제, 어머니와 진지하게 얘길 좀 해야 할 것 같아]

네가 내 약점인 거 아신 이상 우리의 신여사께서 너를 빌미로 나를 사업에 끌어들일 모양이신데...

준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면서 힐끗 설을 보았다.

활기차보인다.

눈동자도 반짝 거리고...그렇단 말이지?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반짝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엘리베이트로 향하는 순간 들려온 소리에 준수가 인상을 팍 구겼다.

[김사장! 김사장, 잠깐만  얘기좀 합시다]

다급한 음성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설은 흠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