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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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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바람 -2-


BY 데미안 2012-06-01

 

1.

유마담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했다.

때맞춰 함박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누나의 남자가 온다는 소리에 일찌감치 윤우도 자리하고 있었다.

장여인은 주방에서 벌써 몇시간째 조물조물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유마담과 설은 바깥 테라스에 서서 준수의 모습이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속으로 준수의 차가 보이자 설의 가슴이 팔딱거리며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짙은색의 코트를 휘날리며 준수는 계단 아래에서  설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김사장님. 어서오세요]

유마담이 웃음기 가득찬 인사로 준수를 맞았다.

준수는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장여인이 다소곳 서서 준수를 맞았고 그 옆에 키가 크고 다소 마른 체형의 젊은 남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준수를 보고 있었다.  법대에 다닌다는 설의 동생 윤우였다.

[어서와요]

장여인의 음성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직한 음성으로 준수가 인사를 했다.

[우야, 인사드려라. 누나와 사귀시는 분이다]

장여인이 아들을 소개시켰다. 우는 살피듯 가만히 준수를 응시했고 준수가 내민 손을  우가 조심스레  잡았다.

어디선가...본 것 같은데....?

우는 준수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많이 보아온 얼굴인데..... 어디서....!

헉.....! 생각이 났다.

[저 혹시...00대학교 법대...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장호연 교수님의...]

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면서 말끝을 흐리자 준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나의 은사신데...혹, 자네의 담당 교수님이신가?]

준수의 말에 우는 활짝 얼굴을 펴더니 그에게 꾸벅, 허리를 접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교수님 방에 걸린 사진을 봤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아끼시는 제자라고...이렇게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다소 들뜬 우의 목소리에 준수는 싱긋 웃었다. 설의 동생 우가 자신의 모교에 재학중인건 알고 있었으나 같은 교수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을줄은 몰랐다.

인연이란게 참...!

[누나. 왜 얘기안했어. 매형되실분이  뉴욕 최고 법률센타의 검사로 계신다는 소리. 나의 롤모델이란 말이야]

불만의 화살이 설에게 꽂혔다. 어이없다는 듯 설은 웃었다.

[넌 좀 빠져]

장여인이 얼른 아들 우를 한쪽으로 밀었다.

[우선...저녁부터 들어요. 시장하죠?]

장여인이 준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준수는 멍한 표정의 우를 보고 씨익 웃었다.

[우리 얘긴  차차 하기로 하지]

한마디 던진 그의 말에 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횡재다...!

우는 자신의 누이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법대에선 전설적인 존재다. 교수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지 않던가...

어리숙하고 맹숭맹숭한줄만 알았던 자신의 누나가 어떻게 저런 거물을 낚았는지 우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2.

[어머님께서 저를 부르신건 설을 제게 주시겠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저녁상을 물리고  따뜻한 차의 향기를 맡으며 준수가 먼저 말문을 텄다.

장여인은  앞에 앉은 준수와 설을 번갈아  바라보며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유마담이 장여인 옆에서 손가락으로 가만히 장여인의 허벅지를 찔렀다.

어서 대답하라는 신호였다. 장여인이 유마담을 째려보았다.

장여인의 뒤에 앉은 우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장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집의 어르신은 설의 존재를 알고 계세요?]

장여인은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자신들은 가진게 없었다.  부모도 한 부모다.

대기업을 주물럭거리시는 분이 과연 설을 마음에 들어할지...

준수가 웃었다.

[물론 아십니다. 아마 반대는 없을겁니다]

[그래도 혼사라는게... 두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맺어지는 것인데 보다시피 우리가 어디 내세울 것이 없어요]

[집안을 위해서 설을 원하는게 아닙니다.   제가 원하고 설이 원하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내세우기 위한 며느리가 아니라 김준수의 아내를  원합니다]

[언니. 뭘 걱정해. 김사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할려구]

유마담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면서 좋은지 준수를 보고는 빙긋이 웃었다.

[어머님. 사업은 어차피 제 어머니와 형님의 몫입니다. 설에게 들었다시피 형님을 대신해 잠시 맡아서 하는 것 뿐이고 이곳에서의 모든 것이 정리되면 저는 저의 본업으로 돌아갑니다]

[그럼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뒤에서 윤우가 말했다. 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알고 계십니다.  돌아갈땐...설이도 함께 갑니다]

[설...이와 같이?]

장여인은 그제야 딸을 잃을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언제나 옆에 있을거라 생각했다.  빨리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길 바랬는데도 막상 그 일이 현실이 되자 가슴이 휑했다.

[그리고...]

[......!]

또 뭐지?....

장여인의 준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걸 보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제가 설을 데려갈까 합니다]

[데려가?...어디로...?]

[제가 사는 집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5년을 허비했습니다. 이제 더이상은 안되겠기에 설을 데려가야겠습니다]

[......!]

당당하고 다소 건망진듯한 준수의 말에 설을 제외한 세 사람은 입을 딱 벌릴정도로 놀랐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준수의 발언에 장여인은 할말을 잃었다.

설과 떨어져 있기 싫으니 결혼도 하기 전에 데려가 살겠다는 소리다.

[결혼도 올리기전에 설이를 데려간단 소리예요, 김사장님?]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유마담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결혼이란  절차는 어차피 형식적인 것이고 살면서 준비해도 된다고 봅니다.  대신 혼인신고부터 하고 싶습니다]

하면서 준수는 벗어놓은 코트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장여인 앞에 내밀었다.

[저와 윤설의 혼인신고섭니다. 허락없이 제가 먼저 밀어붙였습니다]

멀뚱히 보고만 있는 장여인 대신 유마담이 얼른 펼쳐 들었다.

[어머나...어머나! 정말이네. 김사장 이름아래 윤설이...배우자로 되어 있어, 언니]

유마담이 보여주는 서류로 장여인의 눈이 쫓아갔다.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법적으로 윤설은 이제 제 아냅니다]

어이가 없다. 기가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 당당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

장여인이 설을 바라보았다.

설은 이미 알고 있는지 수줍게...미안한듯  보일락말락 미소를 지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이미 혼인신고라니..... 혼인신고가 먼저고 결혼은 그 다음이라니....

[용서하십시요, 어머님]

준수는 충격에 빠져있는 장여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고는 그 큰 손으로 설의 머리를 헝컬었다.

[이 녀석없이는 제가  더이상 안되겠습니다. 제 옆으로 데려다 놔야겠습니다]

노골적이다. 장여인 앞에서 감히 딸을 품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허락이 아니라  보고였다.

낼모레 육십인 장여인도 살만큼 살았고  유마담도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인데도 준수의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설 또한 발그래한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당사자인 준수만이 태연했다. 그만큼 그는 절박한 것이다.

유마담이 킥킥거렸다. 재미있다.

김사장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을 이렇게 일사천리로 만들어놓을 줄이야.

몸이 달아도 아주 단단히 달았어. 하긴 5년이나 기다렸다면 몸에 사리가 쌓여도 한바가지는 쌓였겠네?.....

자꾸 웃음이 나오는 유마담이었다.  장여인이 노려보았다.

[네 생각도 같아?]

설에게 물었다.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싶어요]

딸의 말에 장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전에 그쪽 어르신을 뵙고 싶은데...]

[그렇잖아도 어머니께서 보자고 하셨습니다. 이틀안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설을 데려가겠습니다. 더이상은 양보못합니다]

찍소리하지 말란 소리군...!

장여인은  오만하리마치 당당한 준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솔직히 싫지 않았다.

유마담처럼 대놓고 실실거릴수는 없지만 기분은...좋았다.

자신의 딸이 예뻐죽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리고 한가지 더 있습니다]

하면서 준수가 다시 다른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또 뭔지...?]

준수는 장여인과 유마담을 한번 스윽 보았다.

[건물 매입 서륩니다]

[건, 건물...뭐라구요?]

[이 건물을 매입했습니다.  어머님과 유마담...아니, 이제는 이모님이라고 불러야겠지요]

[이,이모님...?]

유마담은 놀랐다.

이모님... 김사장이 나를 이모님이라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님과 이모님 앞으로 되어있을 겁니다. 설을 만난건 이모님 덕분이니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설을 데려가는 대신 제가 두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유마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도 쩍 벌어졌다.

 

3.

[언니. 이제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우?]

준수가 돌아가고 설 또한 잠자리에 든  늦은 밤에 장여인과 유마담이 술잔을 기울였다.

[얘는...내 딸이 잘나서 그런건데 무슨...]

장여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유마담이 웃으며 술잔을 채웠다. 장여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고맙다, 미숙아]

진심이었다. 유마담이 소리내어 웃었다.

[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애 언니]

[죽긴 왜 죽어. 오래 오래 내 옆에서 살아야지. 설이 가고 우도 장가 가면 너와 나밖에 더 있니?]

[그렇지? 그래, 우리 둘 오래오래 살자. 알았지? 언니, 건배해]

밤은 깊어가고 눈은 소보소복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4.

아침부터 부산이다.

부모 상견례가 있기 때문이다.

[언니. 언니는 한복입고 난 그냥 정장 입을까?]

유마담이 새벽부터 일어나 호들갑이다.

[머리를 어떻게 할까? 올릴까? 그냥 자연스레 내릴까]

[얘, 유미숙. 누가 보면 네가 결혼하는줄 알겠어. 적당히 해]

장여인이 곱게 핀잔을 주었다.

[늦지 않게 얼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