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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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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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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루만지는 바람


BY 데미안 2012-03-12

 

1.

[선우?]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오후, 선우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차 한 잔 하자는 소리다.

마침 시내에 볼일도 있고해서 설은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선우와의 만남이 설은 부담스러웠다.

자신을 바라보는 선우의 눈빛이 그저 친구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후부터...

그러나 한번쯤은 진지하게 대화를 해야할 것 같았다.

 

잔잔한 새미클래식이 흐르는 카페에 들어서자 마자 설은 선우를 쉽게 찾았다.

추상적인 그림으로 도배를 한 벽을 등지고 앉은 선우가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바깥이 춥지?]

선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웃었다.

[응...눈송이가 하나씩 날리고 있어. 그래서 추운가봐...잘 지냈어?]

[그럼, 나야 항상 잘 지내고 있어]

밝은 표정의 선우를 보며 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사실은 오늘도 너한테 퇴짜 맞으면 어쩌나...했어]

그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선우야,  난 네가 항상 그렇게 웃으면서 지냈음 좋겠어....

 

커피가 나오고 선우와 설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두서없이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오가는 알수없는 긴장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선우의 말은 절로 과장이 되고 말수가 많아졌다.

[내게...할 얘기가 있는거지, 선우야?]

그녀가 먼저 멍석을 깔았다.

선우가 다소  긴장되는지 겸연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설을 바라보았다.

그녀, 설은 눈빛이 따스한 여자였다.

그 눈빛이 웃고 있으면 따스한 봄날에 들판에 누워 햇살을 쬐는 것처럼 그렇게 나른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난 네 눈빛이 참 좋았어. 처음 봉사활동 갔던 자리에서 널 봤을때도 넌 미소 짓고 있었지]

[내가...그랬어?]

선우는 소리내어 작게 웃었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아...내가 널 좋아하게 된 것이...]

[......!]

선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저번에 내가 한 말 농담 아니야. 나랑 사귀자는 소리...]

[선우야...]

놀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쁜 표정도 아닌,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설을 보면서 선우는 예상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더 솔직히 말할께. 그 좋아하는 감정이 이제는 사랑으로 변했어]

[선우야!]

[군대가기 전에 너에게 고백하지 못한게 난 후회가 돼. 막연하게 난 네가 기다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어. 우습지?]

[선우야, 그러지마...]

[내게 기회를 줘]

[나에게 넌 혜지처럼 그냥 친구야.  우린 친구라구, 선우야]

[다른...누군가가 있는거야?]

선우는 자신의 물음에 설이 살짝 긴장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혜지의 결혼식날 설을 태우고 떠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그 남자의 포스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뭔가 울컥하는게 뱃가죽을 잡아 당겼다.

내가 먼저 만났어. 윤설을 먼저 본 것은 나란 말이야...

선우는 그 말을 내뱉고 싶은 걸 참았다.

[혜지 말로는 네게 애인이 없다고...]

설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인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너와 난 친구라는게 문제고 내가 너를 친구 이상으로는 보고 있지 않다는거야]

[그럼, 친구로 만나면 되잖아. 그러다보면 좋은 감정이 생길수도 있고...나 알고 보면 괜찮은 놈이야]

[알아. 좋은 친구라는 거 알아, 선우야. 하지만 그 감정은 변하지 않아. 난 네가 상처받는 거 보고싶지 않아]

[왜 그렇게 쉽게 단정짓는건데? 일단은 사귀어보고...!]

[내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꽉 차 있어, 선우야]

결국 설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선우의 안색이 변했다.

그것을 보는 설의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자신의 사랑도 선우처럼 외사랑인데 선우를 어찌 이해할 수 없겠는가...

그렇다고 그에게 일말의 희망을 준다는 건 더 잔인하지 않을까...

설은 일어섰다.

[정말 미안해...미안해, 선우야...나 먼저 갈께]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선우를 두고 설은 무겁게 발걸음을 떼었다.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를 어느새 내려온 선우가 그녀의 팔을 움켜 잡았다.

[윤설, 잠깐만!]

잘생긴 선우의 얼굴에는 아직도 못다한 얘기가 많은지 복잡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그늘져 있었다.

마음이 아픈 설이었다.

[그러지마, 이선우. 우린...아니야. 어쩌면...너도 진정으로 날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우리, 좋은 친구로 오랫동안 봤으면 좋겠어...]

그녀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팔에서 선우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 냈다.

 

마음이 아리게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2.

[얘...선우, 많이 아프겠다]

다음 날, 카페로 놀러온 혜지에게 설은 선우 만난 얘기를 했다.

[너한테 진짜 진심인 것 같았거든]

[나도 편하지 않아... 하지만 아닌건 아닌거야]

[한달만이라도 선우 말대로 한번 만나보지?]

조심스레 혜지가 말하자 설은 그런 친구를 쫴려 보았다.

[동정심으로 선우를 만나는 건 선우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거야. 상처주고 싶지 않아. 지금 조금 괴로울지라도 훗날...어쩌면 선우는 나한테 오히려 감사할지도 몰라. 난 선우를 친구로서 그렇게 오래 보고 싶어]

[에휴.....아깝다. 그만한 남정네도 드문데...]

[재혁씨 들으면 좋다고 하겠네...]

[아니, 남주기는 좀 아까운 친구라서...]

[됐어...그건 그렇고 정말 늦게 가도 괜찮아?]

[그럼...저녁까지 해결하고 오신댄다. 나 자유 부인이야]

하면서 혜지는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설은 편하게 웃을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네가 나랑 놀아줘야 해]

[알았으니깐 커피나 마셔]

 

커피를 홀짝이던 혜지가 카페 안을 빙 둘러보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었다.

힐끔 주방쪽을 본 혜지가 설에게로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어머니...괜찮으셔?]

그동안의 사정을 다 아는 혜지였다.

설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속으로 삭히고 계시는 것 같아]

[휴...그러실거야. 더군다나 학교까지 관두게 생겼으니...! 그런데 정말 방법이 없어? 다시 한번 교장 선생님께...!]

[그만하셔, 장혜지씨]

[네가 없어니깐 학교 갈 마음이 안 생겨]

[내 몫까지 열심히 해!]

 

[윤설, 장혜지! 이리와서 점심 먹어!]

유마담이 그들을 불렀다.

 

3.

카페 손님들이 거의 빠져 나갔다.

그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장여인과 유마담이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었다.

그 시각에 되어서야 설은 혜지와 헤어지고 들어왔다.

[이제오니? 혜지는 갔어?]

유마담이 제일 먼저 반겼다.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바로 올라 가려던 설은 멈칫하더니 장여인과 유마담 곁으로 다가갔다.

[저기...엄마, 이모]

잠시 갈등을 했다. 그래서 머뭇거렸다.

[얘가...왜 뜸을 들이고 그래. 뭔데?]

장여인이 물었다.

[얘긴...해야 할것 같아요]

설은 결심을 하고 유마담 옆에 앉았다.

[예고없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깐...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슨 얘길 하고 싶은거니?]

[엄마...얼마 전에 기차역에서...아저씨를 만났어요]

[아저씨?...무슨 아저씨?]

왠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장여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박...종철...아저씨]

설의 말에 장여인도 유마담도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더니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진호 오빠도 같이...]

[오빠는 무슨...!]

유마담이 곧바로 악에 받친 목소리고 되받아쳤다.

[그 놈을 봤단 말이지? 그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을 봤다구?]

[네에...낯선 사람 같았어요. 당당하고...여유롭고...]

[당당? 당당하게 너를 알아 보더라구? 그 사기꾼들이?...천하의 나쁜놈들! 은혜를 웬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놈!]

[그런데...조만간 들리겠다고 했어요. 빈말인지 정말인지는 몰라도 혹시나해서...]

[여길 찾아온다고? 정말이지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르네. 나쁜 놈....!]

입에 거품을 물며 분노하는 유마담에 비해 장여인은 아무 말도 없었다.

입만 꽉 다문 채...!

 

4.

그가 오기로 한 날.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눈이 또 내리고 있었다.

가슴이 설레었다.

보고 싶었다.

그가 없는 며칠을 설은 혜지도 만나고 카페일도 도우고 하면서 부지런히 보냈는데도 그가 없는 그 며칠이 몇 달은 지난것처럼 그렇게 허전하고 보고 싶을수가 없었다.

시간도 더디게 흘렀다.

그가 도착 시간을 문자로 날렸다.

그 몇 시간 전에 설은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온기가 없는 집안에 불을 올리고 커튼을 열어 바깥 경치가 훤히 보이게 했다.

그리고 집안의 먼지를 말끔히 닦아 내었다.

청소가 끝나자 설은 장봐온 물건들을 식탁위에 올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