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준수의 친구가 모두 모였다.
설은 자리를 피해주며 밖으로 나왔다.
장희의 아내 권미진이 담요 두장과 따뜻한 모과차를 들고 따라 나왔다.
[못말리는 삼총사가 모였죠?]
[그...런가요? 전 두분을 오늘 처음 뵈었어요. 참...보기 좋아요]
둘은 나란히 앉아 눈내리는 바닷가를 건너다 보았다.
[초면에 제가 실례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상한 일이 아니라 조금은...당황스러워요]
조심스런 설의 말에 권미진은 소리내어 웃었다.
[어려워하지 말아요. 이런 곳에서 이런 일에 종사하다보면 사람이 그리울때가 많아요. 그래서 누구라도 찾아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그렇군요...]
[네에...남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낯가림이 있어 사람과 쉽게 사귀지 못해요. 남편이 생긴 건 저렇게 산도적 같아도 나보다 더 숫기가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준수씨나 혁씨 같은 대단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는지...아이러니해요]
[남펀분...참 믿음직해요]
[그렇죠? 의리하나는 최고죠]
미진의 말속에서 설은 그녀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수 있었다.
부럽기도 하고 보기가 좋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놀랐어요. 준수씨, 냉정하게만 보였는데 오늘보니깐 굉장히 낭만적이고 로맨틱해요. 설이씨 때문이겠죠?]
[저...요?]
[네에...준수씨가 설이씨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어요. 설이씨가 여기 있단걸 알고 한걸음에 내려온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두 사람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준수씨가 설이씨를 사랑한다는 건 확신해요. 경험자로서 하는 말이예요]
권미진은 다 이해한다는 눈빛을 하며 웃었다.
[저 세 사람, 앉았다하면 날 셀 때까지 마실거예요. 오늘 돌아가지는 않을 거란 얘기죠]
설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준수의 모습을 찾았다.
사랑?...김준수씨가 나를?...과연 그럴까요?...
아닐 것이다.
그가 내게 호의적이긴 해도 사랑은...아닐 것이다...
잔잔한 눈빛으로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듯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가슴이 뭉글뭉글, 아지랭이같은 감정이 피어올랐다.
가슴이 꽉 막힌듯, 사랑의 아픔이 시작되었다.
나는...당신을 사랑해요...
설은 눈빛으로라도 그에게 그렇게말하고 있었다.
하지만...당신은 아니겠죠? 당신이 나를 염려하고 아껴준다는 건 알아요. 그것은 연민이겠죠?
그렇다고해도 상관없어요.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거에요.
지금은 그냥...제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만 갈거예요...
2.
그녀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눈빛을 준수는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즈끈...그의 심장이, 그의 하트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예리한 남자다.
그녀의 눈빛속에 담긴 무언을 놓칠리가 없었다.
어느날부터인가. 그녀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때가 아니란 생각에 모른척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신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은 때가 아니다...
준수는 고개를 저었다.
[야, 김준수. 얘기해봐]
혁이 준수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관심을 돌렸다.
[무슨 일이야? 왜 너의 그녀가 혼자서 이런 쓸쓸한 곳을 찾아 들어왔는지...]
준수는 작은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손수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나로 인해...나의 욕심으로 인해 교사직을 그만두게 생겼는데도 내게 아무런 도움도 바라지 않아]
[너를 거절해? 천하의 김준수를?]
놀랍고 재미있다는 투로 혁이 말했다. 준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와우!]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이제 얘기 좀 해봐, 임마]
준수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혁과 장희가 궁금해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준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준수는 친구들의 궁금증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며 고개를 들어 권미진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설을 가만히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3.
미진이 설을 놓아준 건 그녀의 어린 딸이 잠에서 깨어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미진은 주거니받거니 하는 세 남자 사이로 걸어 들어갔고 설은 멀찌기 뒤에 서 있었다.
[언제까지 마실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설이씨는 이제 자야 할 것 같네요]
세 남자가 동시에 돌아보았고 준수의 눈은 곧장 설에게 꽂혔다.
[설이씨는 2층에서 쉬게 할 거에요. 내일 해돋이를 보고 가기로 했거든요. 남자분들은 열심히 드시다가 1층 손님방에서 주무셔도 되고 여기서...그냥 주무셔도 되고...물론 내 남편도 포함해서요]
[나까지? 왜?]
덩치 큰 장희가 투덜거리자 미진이 째려 보았다.
[잠 깨우기만 해봐요~]
아내의 으름장에 장희는 금세 꼬랑지를 내렸다.
설은 준수를 비롯해 세 남자에게 짧게 인사를 보내고는 미진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설이씨 뿐이니깐 마음놓고 자도 돼요. 마음에 드는 방을 고르면 되는데...참고로 저쪽 방이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제일 좋아요]
[감사합니다...]
[뭘요...그럼, 편히 쉬고 내일 봐요]
[네에...안녕히 주무세요]
설의 진심어린 말에 미진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진이 내려가고 설은 조심스레 둘러 보았다.
깨끗했다. 거실은 넓고 따듯해 보였으며 주방도 있었다.
냉장고도 있고 tv도 있었다.
설은 미진이 권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깨끗했다.
가족들을 위한 방인지 2층 침대가 양쪽으로 나 있는데 두 사람씩 자도 거뜬할만큼 크고 아늑해보였다.
욕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걸로 봐서 매일 청소를 하는 것 같았다.
집주인의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미진의 말대로 창문을 열자 겨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왓다.
설은 가방을 내려놓고 욕실로 들어가 하루동안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
그리고 작은 등을 켜고 침대에 누웠다.
간만에 편히 잠들수 있을 것 같았다.
4.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때 설은 잠들어 있었다.
모로 누워 잠들어 있는 그녀 앞에 준수는 가만히 앉았다.
[사람을 이렇게 애태워놓고...잠을 자?]
가만히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예쁜 여자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는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럽고...
하여튼 자신의 심장위에 떡. 하니 앉아있는 여자라는 것은 확실했다.
준수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그녀의 볼을 쓸어내렸다.
그 작은 접촉에도 그녀가 눈을 떴다.
익숙치않은 느낌이라 반사적으로 번쩍 눈이 뜨였다.
놀란듯 그렇게 뜨진 눈에 준수가 보이자 설은 한순간 숨을 죽였다.
말없이...그윽한 눈빛으로 그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술냄새가 났다. 그러나 취한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윤설...]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감미롭게...사랑스럽게 들리기는 처음이라 그녀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잠이 확 달아났다.
[윤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의 얼굴선을 그리는 그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설은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면...그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내게서...멀어지지 마라. 보이는 곳에 있어,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에 감으며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다가와도 설은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술내음이 나는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포개어져도 설은 싫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듯 두근거렸다.
그대로 준수는 그녀의 몸위로 몸을 실었다.
그녀의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으나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에 닿은 순간부터 준수의 이성이 제기능을 잃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탐닉하기 시작하자 설은 눈을 감고 그 감각을 즐기려 했다.
그녀의 손이 움직이더니 그의 목으로 올라가 감쌌다.
그 떨리는 손길이 자신의 목을 감자 준수의 입술은 대담하게 그녀의 입술을 가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준수는 설이 숨을 쉴수 없을만큼 그 입술을 깨물고 당기며 맛보았다.
그녀가 아플 정도로 자신의 목을 꽉 조여도 준수는그녀의 입술이 주는 그 황홀함에서 멈출수 없었다.
키스가 그러할진데 만약 그녀의 전부를 벗기고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손에 쥐고 그녀의 깊고 뜨거운 그 곳으로 들어간다면....!
생각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아서 준수의 손이 다급하게 그녀의 엉덩이로 내려가더니 자신에게로 밀착시켰다.
그녀가 숨을 들이마셨다.
무언가 딱딱한게 꿈틀거리며 자신의 배를 찔러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은 모르지 않았다.
이미 한번 그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그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그녀의 머리속이 갑자기 어질어질해지며 하얘져갔다.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그가 주는 감각에만 정신이 집중되었다.
그녀의 입술위에서 그녀의 입술을 태워버리기라도 할 듯이 정신없이 키스를 퍼붓던 그가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속에 얼굴을 묻더니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등뒤를 오르내리며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놓았다.
그가 그녀를 팔안에 가두며 몸을 일으켰다.
헝컬어진 머리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촉촉하게 빛나는 입술로, 그렁한 눈빛을 하고 그녀가 그를 보고 있었다.
준수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위에서부터 천천히 쓰다듬었다.
[알겠어?...내가 너를...얼마나 갖고 싶어 하는지...미치도록 너를 안고 싶어하는거...]
그녀는 대답대신 몸을 굳혔다.긴장시켰다. 그걸 아는 그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거다. 다시는 너를 그런 식으로 안지 않을 거란 얘기야. 더군다나 이런 곳에서...술냄새를 풍기면서 너를 갖지 않아]
준수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그의 몸이 아래에서 미친듯 고동치고 있지만 준수는 초인적인 힘으로 달랬다.
그의 말에 설은 괜스레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가 한없이 고마웠고 그에 대한 사랑이 더욱더 깊어졌다.
눈물이 삐죽이 나왔다. 그가 손으로 닦았다.
[울지말라고 내가 경고했을텐데?]
[...미안해요...]
설은 들릴락말락하게 속삭였다.
그는 그 속삭이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강하게 내리눌렀다.
한참이 지나 준수는 그녀를 팔안으로 끌어당겨 안으며 함께 누웠다.
[자...]
하면서 준수는 그녀를 바싹 당겨 안았다.
설은 자신의 엉덩이쪽에 와닿는 그의 그것이 아직도 꿈틀대는걸 느꼈다. 민망한 마음에 가만히 거리를 두려고 몸을 움직였으나 그의 팔이 허리를 잡아 당기며 다시금 밀착시켰다.
[움직이지마...]
피곤해하는 음성으로 그가 말했다. 그녀는 어둠속에서 살며시 웃었다.
이래서 잠이 오려나....
햇으나 그녀는 어느덧 잠이 들었고 새근거리는 그녀의 숨소리에 그제야 준수 또한 힘겹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