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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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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오는 바람


BY 데미안 2011-12-14

 

1.

기습 키스도 키스지만 그 짜릿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움에 설은 정지된 듯 꼼짝할 수 없었다.

밀어내야 하는데도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을뿐더러 빠져나갈 빌미조차 없이 그가 그녀의 머리를 꽉 누르고 있었다.

뜨겁다...그의 입술은 활활 타오르는 태양마냥 뜨겁고 나른했다.

삼킬듯 그녀의 입술을 점령하고는 입속 깊숙이 돌진한 그의 혀는 날름거리는 뱀의 혀처럼 그녀의 혀를 찾고 있었다.

당황스럽고 놀란 그녀의 혀가 안쪽으로 몸을 숨기자 그는 더 깊숙이 따라 들어와 기어이 그녀의 혀를 찾아 꼬았다.

머리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그대로 관통한 것 같은 느낌에 그녀의 눈이 저절로 감기더니 감전된 듯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것은 그대로 준수에게 전달되었고 준수의 몸이 미친듯 활개치게 만들었다.

입술이다!!!

단지 그녀의 입술을 맛보는 것인데 욕망이란 놈이 미친듯 그녀를 집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멈추어야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자석처럼 착 달라붙게 만들었고 그 입안은 핑 돌 정도로 취하게 하고 있었다.

어느 술이 이보다 더 독할까!

어느 쥬스가 이보다 더 달짝지근할까!

그녀에게서 세어나오는 미세한 반항의 신음소리는 어떠한가!

그 어떤 악기 소리보다 황홀했다.

어느새 그녀의 손이 그의 셔츠 깃을 쥐어 뜯듯 감아 죄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몸이 주체못할 만큼 떨고 있음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여기까지...!

아쉬운 듯 준수는 힘겹게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뜨거움이 자신의 입술에서 멀어지고 찬 기운이 살짝 돌자 그녀는 화들짝,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번쩍 떴다.

강렬하게, 쏘아보듯 그의 눈이 눈앞에서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바보같았다.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게 보였을까 싶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가슴은 주책스럽게 저혼자 쿵쾅거리며 뛰고 난리였다.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병이다...이건 분명 병이야...비정상이라구, 윤설...

[또...]

그가 조용히 나즉히 입을 열며 손으로 그녀의 벌어져 있는 입술을 살짝 쓸었다.

촉촉했다.

[또 생각...당신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해]

고개를 저으며 준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밥 먹으러 갑시다... 더 있다간 우리 둘, 여기서 밤 세야 돼]

쌓이는 눈도 눈이지만 더 있으면 자꾸만 그녀를 탐낼 것 같은 자신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자신이 없는 준수였다.

 

2.

그 밤,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따뜻한 허브차를 타서 설은 눈이 제법 쌓인 바깥으로 나왔다. 찬기가 온몸을 휘감아오자 일순, 그녀는 몸을 떨었다.

차를 마셨다. 두 손으로 꼭 감싸쥐고.

그리고 그를 생각했다. 그를 떠올리고 그의 키스를 떠올렸다.

뱃속이 당기는 듯 저릿해졌다.

그의 존재가 아스라이...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위험한 감정이었다.

어서 빨리 잘라내야 하는 위험한 감정...

왜 그가 싫지 않고 왜 그가 한번씩 떠오르는지...첫..남자라서일까...첫 감정이라서?...

[그래서...설렌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하긴...

그는 어떤 여자가 봐도 매력적으로 여길 남자였다.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굵직굵직한 선을 그리는 생김새는 남자다움을 내보이고 있고  탄탄하게 보이는 몸매에 커다란 키...그리고 능력도 있고...

[휴...]

절로 한숨이 세어나왔다.

[너, 혼자서 무얼 그리 중얼거려?]

[에구, 깜짝이야!]

드르륵 문을 열며  유마담이 들어섰다.

[얘가 얘가...나쁜짓하다 들킨 사람마냥...]

[이모도 참..]

유마담이 가만히 설을 건너다 보았다.

[이 밤에 왜 나와 있어? 무슨 고민있니?]

[아니...그냥 눈내린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렇지? 아름답기는 하지?]

유마담이 어린아이처럼 함박 웃었다. 보기 좋았다. 설은 유마담이 이제는 자주 그렇게 웃기를 바랬다.

[우리 이모, 참 예뻤는데...우리 가족때문에 마음 고생 많이 해서 주름이 늘었어. 아까워서 어떡해]

[얘가 별 소리를...! 나이들어서 주름 는 거지 왜 니 가족때문이니. 그리고 너와 우, 언니는 나에게도 가족이야.  그런 섭섭한 소리 하지마]

[알아...그래서 항상 고맙고...미안하고...]

[내가 왜 고맙니? 난 죄인이야. 사랑하는 조카라고 말만 하면서 널 지켜주지 못한 게 무슨...!]

[또 그 소리...! 내 선택이었다고 했잖아요. 이모 원망안해. 그리고 난 지금 행복해. 엄마 건강 되찾아서 이모랑 이렇게 일도 하고 난 원하던 선생이 되었고 우야도 잘 하고 있고... 뭘 더 바래요?]

[그래도...그래도 난 너한테 많이 미안해. 후회도 되고...]

[아유..우리 이모 이러다 폭삭 늙겠어. 걱정 뚝.]

설은 자신이 유마담에게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렸다. 유마담은 극구 말리고 협박도 했다.

가지 말라고...그가 오지 않아도 된다는데 왜 가냐구!

그러나 그녀의 고집이 셌다.

원금이야 갚겠지만 그 고마움을 낼름, 날로 삼키는 건 그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뻔뻔하고 이기적일까...

상대가 김준수라서...그렇게 젊고 매력적인 상대라서...

만약...만약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갑자기 그 생각이 들자 설은 자신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

 

[이모, 이모는 첫사랑...기억나요?]

[첫사랑?....기억나지...]

유마담의 눈빛이 금새 쓸쓸하게 어두워졌다.

[그래, 첫사랑...참 오래전 얘기네. 첫사랑답게 푹 빠져서 다른 무엇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그가 건달이고 마약에 찌들어 나를 팔아도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 무던히도 참고 살았어. 결국 그가 다른 여자와 도망을 갔을때도 난 돌아올것이라고, 돌아와서 잘못했다고 빌면서 날 구해줄것이라고 믿었지]

[이모 첫사랑...너무 아프다]

[그랬지. 첫사랑이 지랄 맞으니깐 두번째 세번째...마지막이라 믿었던 사랑까지도 나의 뒤통수를 치더라. 알지?]

그렇다. 이모의 마지막 사랑이란 바로 설의 집안을 박살내고 전재산을 챙겨 사라진 박전무였다.

깊은 한숨을 내쉬던 유마담은 이제는 세상을, 사랑을 통달한듯한 미소를 띄더니 설의 머리를 다정스레 쓰다듬었다.

[우리 설이...너는 그러지 않을거야. 넌 좋은 사람 만날거야. 분명히! 아암.. 넌 반드시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거야. 오로지 너만을 사랑해 주는...]

[이모도 참...!]

수줍게 웃는 설을 보며 유마담을 빌었다.

설이만큼은 진짜 최고의 남자를 만나기를...그래서 그녀의 아팠던  세월을 모두 지워주기를...유마담은 밤이면 밤마다 그렇게 빌었다.

 

3.

토요일 아침이다.

설은 일찍 잠에서 깨어 가게를 깨끗이 청소하고 커피 한잔을 뽑았다.

[너 왜 이렇게 일직 일어났니?]

머리를 틀어 올리며 장여인이 가게로 내려왔다.

[잘잤어요, 엄마.  오늘 혜지 결혼식이야]

그러자 머리를 묶던 장여인의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식가서 좋은 남자 어디 없나, 잘 좀 살펴봐]

설은 소리내어 웃었다.

[미안하지만 엄마 딸은 아직 결혼 할 생각이 없네요]

장여인의 도끼눈이 설에게 내리꽃혔다. 설은 태연한 척 들고 있던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전화가 울렸다. 준수였다.

아침부터...?

설은 슬쩍 장여인을 보더니 자리를 떴다. 바깥 테라스로 나왔다.

-집?-

[네에...그런데....!]

-1시간 후에 데리러 갈테니깐...!-

[안돼요!]

-...안돼?-

잔뜩 힘 들어간 목소리였다.

[오늘 제일 친한 친구 결혼식이예요. 가봐야해요]

전화기 저편에서 흘러 나오는 짧은 한숨 소리에 설은 피식 웃었다.

-몇시 결혼식이오?-

[1시요]

-어느 예식장이지?-

[예?]

-데리러갈테니 어느 예식장인지 알려주시오-

[...성당인데...]

 

성당에서 하는 결혼이라 지루함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조용하고 엄숙했다.

양가 어른들모두 시끄러운 걸 질색해서 인지 사람들도 그닥 많지는 않았다.

시종일관 조용했다.

[쟤들, 신혼여행 없나며?]

옆에 앉은 선우가 소곤거렸다.

양복입은 선우의  모습이 꽤 근사해보였다.

[없는게 아니라 조금 있음 겨울 방학이잖아. 그때 간다고 했어]

[그래? 어디로 간다든?]

[하와이로]

[더운데로 피신간단 말이지?]

선우의 말에 설은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런 둘을 선우 옆에 앉은 한지원이 힐금거렸다.

설과 선우가 소곤대는게 못마땅한 눈치였다.

[결혼식 끝나고 뭐 할거야?]

선우가 다시 말을 걸었다.

[약속없으면 나랑 놀자]

[미안...나, 약속있어]

설의 조심스런 말에 선우의 안색이 급 다운되었다.

실망한 티가 역력해서 설은 괜스레 어색해졌다.

 

설은 일찍감치 성당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 한줄기가 그녀의 머리를 휘젖고 지나갔다.

옷깃을 여미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전화가 왔다.

[네에]

-앞을 봐-

전화를 귀에 댄 채 설은 시선을 들어 살폈다.

저만치 앞에 준수가 차를 세우고 서 있었다.

그가 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왜 그렇게 기쁜지...왜 설레는지...

모른채 설은 그에게로 바쁜 걸음을 걸었다.

 

그런 설의 모습을 누군가가 또 지켜보고 있었다.

따로...같이...

지원과 선우였다.

설이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선우의 가슴이 아려왔다. 즈끈, 아파왔다.

설이가 자신이 찍었던 남자에게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지원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질투로 입가를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