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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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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은 휘날리고 ㅡ 3


BY 데미안 2010-11-23

 

3.

 

여자가 남자를 빤히 보았을 때 남자는 알수없는 죄책감과 짜릿함을 느꼈다.

분명 여자를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 여자가 나를 어떤 속물로 보겠는가... 하는......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도 ... 되나요?]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약간 흔들리고 있었으나 단호한  음성이엇다.

하지만 가을의 서늘한 바람처럼 부드럽기도 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안으로 들어 왔다.

여자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 남자는 너무... 젊고...게다가...너무 압도적인게...!

딱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냉철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상대로 하여금 주눅들게 하고 있었다.

 

여자는 새삼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으나 애써 평정을 잃지 않으려 했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진짜 이유는?]

남자의 음성은 차가웠다. 아니 비웃고 있었다.

여자는 피식 웃었다. 자조적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일전에 말씀드린 대롭니다. 사장님도 이모님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 많은 돈을 조건없이 빌려 쓴다는 게  염치없는 것 같아서... 비록 지금 우리가 가진 게 진짜... 지금은 단돈 천원도 귀중한지라 그 돈을 받겠지만  공짜는 싫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솔직히 그 돈을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는 저도...지금 장담을 못하기에 이렇게라도...이런 식으로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편히 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사장님은 그저 ... 저를 이자로 보시면 됩니다.]

 

남자는 할말이 없었다.

여자는 지금 남자가 그 돈을 빌미로 다른 어떤 일을 꾸미지 못하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냉정하면서도 똑똑한 여자였다.

남자가 여자를 가짐으로해서 여자는 마음의 짐을 내려 놓겠다는 심사였다.

[결국...너는 짐을 내려놓고 편히 그 돈을 쓰고 내가 대신 너의 짐을 져라?]

[......!]

여자는 당황한 기색이고 남자는 잛게 웃었다.

 

[좋아. 너의 생각이 그렇다면...나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겠다.]

남자의 말에 여자의 시선이 흔들렸으나 잠시뿐이었다.

수백번도, 아니 수천번도 마음을 다잡고 찾아온 여자였다.

[우선...술 한잔 할까?]

남잔 테이블로 여자를 안내했다.

여자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남자가 술병을 드는 사이 유리창 너머 야경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평화롭고 안전하고 따스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바깥 세상은...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여자는 그런 세상을 즐겼다.

그러나 지금은 천길 낭떠러지 위에 서서 세상을 보고 있지 않는가...!

 

남자는 여자의 눈빛이 슬픔으로 반짝이는 걸 보았다.

그런 여자의 모습이 안스럽고 측은하고...또 다시 스르르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불빛에 비친 여자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남자의 가슴이 긴장을 했다.

익숙치 않은 감정이었다.

 

여자의 눈은 아름다웠다. 그 어떤 가식도 없이 맑고 고요해보였다.

입가는 살짝 올라가 있는 게 미소를 지으면 정말이지 예쁠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잔을 건넸다.

그런데 그가 미처 건배를 청하기도 전에 단숨에 마셔 버리는 게 아닌가!

시원하고 짜릿하게 속을 훒고 지나가자 여자는 놀란 듯 심호흡을 했다.

 

웃음이 나왔으나 남자는 참았다.

참으로 묘한...아가씨군...!

겉보기와는 달리 여자가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잔을 내려 놓으며 여자가 일어섰다.

[화장실 좀 ...쓰도 될까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어디?]

남자는 피식 웃으며 일어나 손수 욕실 문을 열어 주면서 여자가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욕실은 화려했다.

여자는 씁쓸한 기분으로 호화찬란한 욕실을  둘러보며 거울 앞에 섰다.

표정없는 한 불쌍한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해야만 하니?]

여자는 겨울을 향해 말을 던졌다.

[정말...정말 후회 안 할 자신있니?  가라고 할때 가는 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유없는 친절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부담만 돼...]

하면서 여자는 남자에게로 생각을 돌렸다.

멋진 남자다......

자신의 친구들이 봤다면 감탄할 정도로 남자는 매력적이었다.

그건 인정해야만 했다.

어쩌면...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첫 남자가 젊고 매력적인 남자라서... 아마 경험도 있겠지?.....

 

여자는 심호흡을 했다.

나는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자는 단호하게 입을 악물며 샤워기 앞에 섰다.

 

남자의  방으로 벨이 울렸다.

호텔 프런트에서 온 것이다.

[음...연결해]

유마담이었다.

ㅡ왔나요?ㅡ

[조금전에 도착했소]

ㅡ... ...!]

유마담의 떨리는 숨소리가 길게 들려 왔다.

[여자가 원하면...돌려 보내 주겠소]

ㅡ그런다고 돌아올 애도 아니지요. 그럴 심사면 가지도 않았겠지요ㅡ

유마담의 말에 남자가 웃었다.

ㅡ제가...제가 할 말이 없네요... 그나마 김사장님이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전화주세요. 제가 데리러 갈테니...ㅡ

[그러겠소]

ㅡ저기, 김사장님 ㅡ

[... ...?]

ㅡ망설였지만 이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애 설이는...자신의 순결을 살 남자를 찾고 있었어요ㅡ

[... ...!]

ㅡ김사장님이 잘 좀... ... 끊을게요 ㅡ

 

 

미처 그 부분은 생각하지 않았다.

자유분방한 시대에 살고 있는 대학생이 아닌가.

의외였다.

여자의 가방이 눈에 띄었다.

여자만큼이나 묘하게 그 속이 궁금해진 남자가 가방을 열었다.

책 몇권과 다이어리가 전부였다.

빨간 노트가 눈에 띄어 남자는 무심코 집어 들고 펼쳤다.

반듯하고 깨알같은 글씨가 예쁘게도 정리되어 있었다.

일기장 같았다.

봐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남자는 호기심에 이끌렸다.

 

 

죽고 싶다.

정말이지 나도 죽고 싶다.

죽어 버릴까?

죽으면 이 절망과 고통도 끝날까?

 

아니다....

그건 현실 도피다.

살자

살아야 한다.

난 살아야 한다.

엄마를 위해서...동생을 위해서......

지금껏 받아온 사랑을 이제는 내가 베풀어야 한다.

살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남자는 덮어 버렸다.

여자의 치부요 어쟈의 자존심이었다.

제자리에 넣어두고 창가에 섰다.

부잣집 응석받이로 자란 줄 알았더니...

그 부모님이 딸은 잘 키웠군.....

 

딸깍!

욕실문이 열리고  여자가 나왔다.

옷차림은 그대로였으나 머리끝이 젖어 있었다.

샤워를 했다는 건 결심이 섰다는 걸 의미했다.

여자가 남자에게로 왔다.

남자는 자신이 긴장하는 걸 느꼈다.

좋지 않은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