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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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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은 휘날리고 ㅡ 2


BY 데미안 2010-11-20

 

2.

[이모...]

[안돼! 안돼! 안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잖아. 조금만...조금만 더 기다려봐. 내가 구해볼께. 구할 수 있어!]

[어디서? 어디서, 누구한테? 응? 아빠가 그렇게 되시고 누구 한 사람, 우리한테 손 내밀어 준 사람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 모두들 등 돌리는 거 이모도 알잖아요. 우리 사정, 이모 사정,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우리 도와 줄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모도  할 수 있는 일 다 해봤잖아. 나도... 난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무것도... 이 길 밖에 없어......]

[안돼. 그래도 그건 안돼! 너한테 그런 일을 시키고 내가... 내가 언니 얼굴을 어떻게 봐!]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고... 아니, 이모와 나만 아는 일로 하면 되잖아.  이모는 엄마마져 저대로 돌아가시게 두자고? ]

[안죽어!]

[아니... 수술비 구하지 못하면 엄만..죽어.  난 그렇게 못해요. 무슨 일이 있든 무슨 짓을 하든 엄마만큼은 살릴거예요. 그러니깐...그러니깐 이모, 제발...날 원한다면...날 원한다면 ...줄께.]

[안돼!!!]

[난 괜찮아요. 연락해서 만날 약속...잡아줘요. 병원에 있을게. 오늘중으로 연락줘. 이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나설거예요]

너 정말!]

유마담은 계단을 황급히 내려가는 여자를 잡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흐느낌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난처했다. 이미 봐 버린 상황이라 나서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가자니 유마담이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평소의 유마담은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들을 대하는 부드러운 사람이고 정 많은 여자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항상 한결같은 마담이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놀란 유마담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젖어 있는 눈이 남자를 발견하고는 크게 뜨졌다.

[김...사장님!]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들킨 게 몹시 당황스러운 듯 했다.

[본의 아니게...미안합니다 유마담.]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남자는 돌아섰다. 그때였다. 유마담이 그를 잡은 게...!

 

[염치불구하고...뻔뻔하기 그지 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고...제가 김사장님께 부탁하나 드려도 될런지.....]

[부탁이라... 일단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자 유마담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말릴 사이도 없이.

[제발...제발 한 번만 저 좀 도와주세요. 아니, 앞 날이 창창한 젊은 여자 아이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도와주세요. 그러면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제가 뭐든지, 김사장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지요]

 

[조금전의 그 여자애는 누굽니까?]

[조캅니다. 친 조카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아이지요. 그 아이가...그 애가 지금 자신을 팔겠다고...]

[판...다.....몸을?]

[네에... 그 애도 저도 지금...벼랑끝에 내몰려 있지요. 오죽허면 그 애가.....그렇게 망가져야 될 애가 아닌데...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어요. 절대로... 그런데 정말이지 .....]

유마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한번만...한번만 김사장님이 도와주세요. 그저 달라는 게 아니에요.  시간이 걸려도 갚을테니 빌려만 주면...!]

[돈 몇 푼에 자신을 파는 여자라......]

남자는 차갑게 내뱉았다.

 

 그런데, 이 여자...!

남자는 아직도 문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확실히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았다.

확실히 고집도 있어 보였다.

[전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에요]

꼭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3.

제가 도울 수 있으면 벌써 도왔죠.

도와주고 싶죠. 내 심장을 팔아서라도 도울 수 있다면 돕겠어요.

그 애 엄마가 내 고향 언니이자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주고 동생 취급 해 주었지요.

내가 알코올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구해주고 보살펴주고 치료해 준 사람이 그 언니고 형부였어요.

형부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지요. 인심 좋고 법 없이도 사는.....

그런데 철썩같이 믿었던 동업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하루 아침에 회사는 부도에 알거지가 되었어요. 믿었던 그 나쁜 놈이 언니 집 재산을 몽땅 챙겼을 뿐 아니라......내 전재산까지도 뺏아 갔더군요. 나쁜 새끼......!

 

그충격으로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언니는 쓰러져 입원을 했고...형부는 어느 날 술에 취해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사망했어요.

보험금이 나와 안심을 했는데...형부 회사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그 돈마져 낼름 챙겨 가 버리더군요. 당장 언니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애는 휴학을 하고... 동분서주 했지만 돈 한 푼 빌릴 때가 없었죠.

나 역시 마찬가지고... 훗, 나야 살아온 인생이 그러하니 당연지사겠지만 그 애 엄마 아버지는 늘 베풀면서 살았는데도 어려워지자 모두가 등을 돌리더군요. 참 허탈하지요. 사람들이 참 무섭더군요.

 

언니는 지금 한 시각이 급한 상태고... 참으로 착하고 성실하게 산 분들이에요.

그리고 그 애들...걔들은 또 무슨 죄가 있나요...

지 아빠 그렇게 보내고 지 엄만 의식도 없이 누워 있고...하나뿐인 남동생, 탈영할가봐 쉬쉬하면서 엄마 살릴려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내 속이  시커멓게 다 타요.  오죽하면...오죽하면 그 애가 나한테 그런 부탁까지 하겟냐구요.

 

김사장. 난 그애가 그러는 거 못봐요.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 애를 그렇게 망가트릴 수는 없어요.  조금 있으면 졸업인데.... 명색이 이모랍시고 거들먹댔지 할 수 있는 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그 애 말대로 언니만큼은 ... 언니만큼은 살려 놓고 ...

 

부탁할게요. 한번만 저를 믿고 그 애를 도와주면 안되는지요....

 

참으로 기구한 한 집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자리에서 돈을 빌려 주기로 했다. 이자없이...무기한으로...

여자가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면 그때 조금씩 갚으라고 했다.

유마담은 믿을 수 없어 하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여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일어섰다.

 

남자는 그렇게 돈을 융통해 주엇을 뿐 아니라 친구 병원에 부탁까지 해 주었다.

그런데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많은 돈...공짜로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을 걸려서라도 다 갚겠지만 그냥 빌릴 수는 없습니다. 제 마음이 편치않아서예요. 사장님께서 절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그 땐 어쩔 수 없지만...]

 

당돌하기 그지없는 여자였다. 겁도 없었다. 자존심이 대단한 여자였다.

필요없다고 해도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이자라고 생각하란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결코 여자를 아쉬워해보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여자를 안을 수 있는 힘이 있는 남자이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가 거부를 하는데도 여자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는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