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28일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서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복녀도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왓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여서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죽 들러서 있다.
어디에도 그녀를 위해 마중나온 사람은 없다.
“휴~”
이제 어떻게 가야 하나 싶었지만 10년만에 밟아 보는 고국땅이었다.
많이 변한것 같으나 주변에서 들려 오는 소리는 온통 한국말이다.
그것만도 좋아서 복녀는 한참을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서있는 그녀를 보고서 택시가 와서 선다.
우선 명동으로 가자고 하였다.
가지고 온 돈을 바꾸려면 명동이 가장 좋을것 같았다.
명동에서 돈을 바꾼 그녀는 다시 해방촌으로 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서 그때의 그집이 그대로 있을까?
택시도 들어 가지 않는 길이라 한참을 꼬불꼬불거리는 길을 돌아서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명희 엄마가 아직도 살고 있을까?
그 집을 기웃거리는데 안에서 누가 나온다.
”누구세요? ”
”혹시 이집에 명희네가 아직도 사나요? ”
”그런데요. ”
”너, 명희니? ”
”네. 누구세요? ”
”아이구 많이 컸구나. 나, 복녀인데....
내가 전에 너 업어 주고 했었는데 기억이 안나지? ”
”아~ 들은 기억이 나요. ”
밖에서 사람소리가 들리니까 안에서 초로의 여인이 나온다.
”아니 이게 누구야? ”
복녀의 두손을 잡더니 누가 볼세라 복녀의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 간다.
“안녕하셨어요? ”
”어쩐일이냐. 너 어디서 오는거야 지금.... ”
”미국에서 막 왔어요. ”
”뭐? 미국에서 ...? ”
”네, 가족들이 너무 그리워서 다니러 왔어요. ”
”그래 그런데 어찌 이렇게 말랐냐?
그래 미국가서 잘 먹고 살지 않았어?
그때 그 남자가 잘 해 주든?
다른 사람들도 다 잘 해줘?
다른 사람들이 너 무시하고 그러지 않든?
주위에 한국사람도 있어? ”
초로의 여인은 질문을 마구 쏟아 내고 있다.
"그럼요, 다 잘 해줘요. 데이브가 정말 잘 해줘요.
한국사람은 거의 없어요.
데이브가 워낙 촌 사람이라 거긴 시골이어요.
저처럼 미군 쫒아 온 사람들만 드문드문 있어요.
그것도 차 타고 한시간은 가야 만나요. ”
”그래~”
”그런데 영자와 승미는 어떻게 되었어요? ”
”응~영자는 저쪽 동두천에 가 있다가
어떤 흑인병사를 만나서 미국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승미는 ... ”
초로의 여인은 담배를 한대 찾아 물고는 한숨을 푹 내 쉰다.
”그년, 죽었어. ”
”네? ”
”갔어.
어떤놈의 애를 배었는데 미국 데리고 간다더니 그대로 놔두고 내 뺐어.
그래서 아이를 떼려고 야미로 해주는데 갔는데 거기서 그만....허~~~”
복녀는 얼굴이 예뻤었던 승미의 얼굴을 떠올린다.
승미는 복녀가 미국가기전에 극장도 데리고 가곤 했었는데...
남들이 비록 양갈보라고 놀리고 욕을 했지만 승미의 마음은 참 착했었는데,
자신이 입던 옷도 주고 가끔가다가 화장품도 주고 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니 마음이 착잡하였다.
”아주머니는 장사가 잘 되셔요? ”
그제서야 방을 둘러 보았다.
그 방은 자신이 명희의 엄마와 명희 이렇게 셋이서 자던 방이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살림은 거의 그대로였다.
변한것이라면 웃목에 텔레비젼이 한대 있는 것이다.
”잘되기는... 국산품 애용운동인가 한다고 해서 안돼.
거기다가 단속도 심해졌고...
그래도 다행히 철호는 대학을 졸업해서
명우실업이라고 아주 큰 회사에 들어 갔고
저 명희년 하나 남았는데 지금 상업학교 2학년이니까
이제 좀 수월해지겠지.... ”
명희의 오빠는 복녀가 미국가기전에 해방촌에서는 용 나왔다고 하는 남자다.
명희 엄마는 자신의 아들인 철호를 학교 앞에서 하숙을 시켰었기에
그 철호 학생은 한달에 두번정도만 집에 왔다 가고는 했었지만
대학교 뱃지로 인해 더 잘생겨 보이는 그 얼굴에 가슴이 설레이었다.
모두들 언감생심 쳐다는 못 보지만
그 유명한 사립대학의 뱃지를 달고 다니는 그 모습을 얼마나 동경했었던가?
그러더니 잘 되었구나.
”그럼 며느님도 보셨어요? ”
”봤지. 그것도 약사며느리야. ”
‘’그래요? 그럼 아줌마 이제는 팔자 피셨네요? ”
”아이구 무슨? 장가 가더니 집에는 거의 안와. 명절에만 내가 그 집으로 가지. 이곳이 창피한가봐. 잘 사는 처가집 옆에 붙어 살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은 양키물건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미군을 상대로 몸파는 여인들이나 그 주위에서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다.
복녀는 16살 어린나이에 배고픔에 주려 있는 자신에게 부잣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면 배불리 먹을수 있고 중학교도 보내 준다는 말에 동네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올라와서는 어떤 부잣집에 일하는 아이로 들어 갔다가 흘러흘러 명희의 집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명희의 엄마는 일찍 혼자가 되어서 양키물건장사를 하면서 양공주들 두명을 하숙치고 있었던것이다. 복녀는 명희엄마가 나가면 명희를 보고 빨래와 밥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손님이 오는 날이면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발 싸움만 안일어 나면 좋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신사적이고 좋은놈이 왔다 간날은 승미와 영자도 기분들이 좋아서 복녀에게 잘해 주었지만 거친놈이 왔다 가면 술먹고 우느라 잠도 못잘 정도였으니까....
명희네 집에서 하루밤 자고는 다음날 오후경에 자신의 고향인 천안 소정리로 길을 나서는 복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명희엄마는
‘그래 밝은 대낮에 집으로 찾아 들어 가기는 힘들겠지... ‘ 생각 하고는
”미국 들어 갈때 다시 와서 자고 가~” 하며 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