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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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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시작과 끝


BY 황영선 2007-03-11

 2006년 새해가 들어서자 동욱이 서울을 떠나던 그 해 어느 날처럼 인천공사 현장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월에 짐을 꾸려 주영은 만삭인 몸을 하고 진해를 떠났다.

 주영은 배 속에 있던 아들 지우가 그 고장 벚꽃을 기억할 것 같지 않았다.

 지우는 이제 겨우 생후 2개월이 지났다.

 

  그 고장 진해는 도혜옥과 태풍매미와 친구 지현에 대한 편지 글을 쓰게 햇으며, 3년 동안 가슴을 뛰게 했던 주영의 전셋집이 있었고, 집주인의 온화함 뒤에 감추어진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였다.

 

 오늘 주영은 바람에 벚꽃이 눈처럼 날리던 그 고장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곧 벚꽃이 필 것이다.

 굵은 벚나무의 가지 사이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공설운동장의 벚꽃 아래, 테니스를 치던 그들에게 느껴졌던 열기와, 동욱과 함께 신발을 벗고 걸었던 안민고개에서 느꼈던 차가움까지 그 모든 것들이 주영의 머리 속을 헤집고 나와 시간의 터널 속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주영은 그 고장 진해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도혜옥이 없고, 태풍매밍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가고, 집주인의 비밀스러움도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린 지난 기억만큼 부질없는 것이 있을 까?

 기억 속의  그 도시는 아들 지우가 자라는 속도만큼 잊혀져 갈 것이 분명한 사실임을 주영은 알고 있다.

 3년 전 서울에서 달아나고 싶었던 이유를 오늘에야 깨달은 주영이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영에게는 축제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 아-! 주영은 친구 지현이 자신이 서울에서 떠나던 그 때를 이해했음을 알았다.

 주영 자신이 오늘 그 도시를 떠난 도혜옥을 이해한 것처럼.

 다만 그 순간은 누구라도 서로를 붙잡지 못했으리란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그 일은 마치 태풍이 온 그날처럼 주영이나 도혜옥으로서는 막지 못하는 거대한 힘임을!

 

 끝내 버릴 수 없었던 민철이 준 책과 끝내 마실 수 없었던 도혜옥이 준 중국차 반 봉지.

 지현이 보고 싶다.

 도혜옥이 보고 싶다.

 같이 있었다면 오늘처럼 슬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같이 있다 해도 오늘 처럼 슬플 것이다.

 그러나 같이 슬퍼하고 싶다.

 주영의 눈 아래로 일제히 떨어지는 벚꽃처럼 눈물이 꽃잎인 양 떨어진다.

 

 나물에서 떨어진

 잎이 계곡을 뒤덮는다.

 수 많은 잎의 잔해가

 하나 둘 나무 아래 잠들고

 그 여름 푸르기만 하던

 나무는

 노랗게 빨갛게 옷을 입는구나!

 시간은 덧없다지만

 우리는 내일을 기다디고

 다시

 또 다른 너의 여름 푸른 잎을 꿈꾼다.

 

아이 러브 주영. 10. 31. 민철

 민철이 남긴 책 맨 뒷장 여백에 남아 있는 그의 마지막 필체였다.

 이미 볼펜이 번져 있는......

 

<25편 끝-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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