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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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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옥과 만남 2


BY 황영선 2007-02-25

 그 첫날 이후 도혜옥이 말하던 연에서인지, 지현을 닮은 도혜옥때문인지, 삼라만상이 문을 닫기 전까지 주영은 부지런히 도혜옥을 보러 갔다

 

 "저런 욕심은, 다 가져다 뭣에 쓸라꼬예? 필요한 거 없으면 사지 마이소. 다음에 오시면 됩니더. 걱정마이소. 찬찬히 구경하이소.?

 

 도혜옥은 장부정리를 하려는지 출입문을 열면 그 끝이 닳을락 말락한 네모난 키 높이 반인 유리상자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유리상자는 주영에게 키 높이 반 정도로 보였지만, 도혜옥이 그 뒤로 가 서자 가슴이 닿는 꼴이 되었다.

 도혜옥의 키는 그만큼 작았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지예? 피부 빛이 다른 걸 보니, 바닷가 사람은 아니지예? 그 말투도 이곳 사람은 아니고 고향이 어디라예?"

 도혜옥이 쓰던 손을 멈추고 돋보기 안경 너머로 주영을 건너다 봤다.

  "예, 제 고향은 경기도예요. 평촌요."

 "서울 아이고예?"

 벌써 저 소릴 열번쯤 들었다.

 

 주영은 자신이 서울 사람이든, 경기도든 별 상관이 없는데, 이곳 사람들의 호기심이 유별나다고 여기며, 경계의 눈빛을 보았다고 하면 주영 자신이 일으킨 착각일 것이라 생각하며, 도혜옥의 말을 부정하고 다시 정정 해 준다.

 

 "네. 저 서울 사람 아니고, 경기도사람인 걸요.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고,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하긴 했지만 거의 30년을 경기도 평촌에서 살았어요."

 주영으로서도 정확하게 서울과 경기도의 지역적인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긴 했다. 집값의 차이정도인가? 어떨 때는 그냥 고향이 서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얼굴은 평촌이 좀 더 까만가? 서울보다 공기가 좋으니까, 주영이 퍼뜩 그런 생각을 했다.

 

 "사투리 안 쓰면 우리 같은 지방 사람한테야 다 서울 사람 같아예. 그래 이 지방엔 무슨일로?"

 

 주영의 어머니는 주영이 지도 끝인 진해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어디든 사람 살 곳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었다. 경기도 안성의 시골에서 자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이 도시도 사람이 살고 잇으니 두려운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주영은 믿었다.

 도혜옥의 저 얼굴은 꼭 경계의 눈빛은 아닐 것이다.

 주영은 누구에게도 경계의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직 이 도시에 대해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신랑일 때문에요. 건설회사 직원이에요."

 "그래예? 조선소 가는 길에 새로 짓는 아파트를 말 하는거구먼?"

 "아뇨 저희 신랑은 신 항만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걸요. 토목기사예요."

 주영 자신도 그 장소가 어딘지 정확하게 감을 잡을 수 없었으나 동욱의 일은 아파트를 짓는 일은 아니었다. 공사는 2011년이나 되어서야 완공된다고 했다.

 동욱의 일은 그때까지는 계속되지 않겠지만.

 

 "아 그래예? 내가 하루 종일 가게만 지키고 있으니 알 수가 있겠어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 우짜겠어예?"

 주영은 잠깐 도혜옥의 남편이 죽은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 얼굴을 알아차리고, 도혜옥이 말했다.

 

 "우리 주인양반 말이지예? 그 양반, 저 쪽 울진에 있어예. 고향이 거기라예. 주인 양반이 아엠에프 때 실직했어예. 그래 이 도시에 시누부가 살아서 이곳으로 왔어예.  그 때 부터 내가 대신 돈 벌었지예. 우리 딸아는 대구에서 대학 다니고 있어예. 기숙사 생활해예. 자식은 딸아 하나 뿐이라예. 새댁은 아는 없어예?"

 "네. 아직 결혼한지 얼마 안돼서요. 따님뿐이시군요. 그 때 실직 많이 했었죠. 저도 의류회사에 다녔는데, 윗분들 실직으로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했었던 게 기억나네요. 그럼 혼자 계시겠네요."

 주영은 도혜옥의 말에 뒤죽박죽으로 말하고 대답했다.

 

 "예, 조 너머 쪼매한 방ㄹ 하나 얻어갖꼬 혼자 지내예. 우리 주인 양반이 가끔 오긴와예."

 "가겐 오래 되셨나 봐요?"

 주영이 물었다.

 "그 때부터 이 가겔 채리 갖꼬 벌써 햇수로 5년째나 됐어예."

 "네."

 주영은 하늘색 기하학 무늬의 국그릇 2장을 집어 들었다.

 라면 끓여 담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영은 초록색 중지갑을 꺼냈다.

 그런 주영은 조금 지친 모습이다.

 

 "그래, 진해는 많이 구경 했어예? 집은 어디라예?"
 "아뇨, 분위기가 어떤지 축제 구경도 할 겸 , 겸사겸사 나왔어요. 여기 재래시장 보는 일도 재미있고, 저희 집은 행복빌라트에요."

 "그래예? 집이 여 가게하고 가깝네예. 꼭 물건 산다 말고 심심하면 다음에 차 마시러 내려 오이소, 내 다음에는 기가 막힌 차로다 한 잔 대접 하게예."

 

 도혜옥은 주영의 집 위치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하기야 5년 째 이 고장에 살고 있는 도혜옥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울에 비하면 진해의 거리는 아주 단순했다.

 

 도혜옥이 계산을 치른 그릇을 신문지로 싸면서 자신의 명함을 한 장 주었다. 가게 이름 삼라만상과 자신의 이름, 전화번호, 가게의 위치가 인쇄 되어 있었다.

 

 주영은 시장을 지났다.

 4층 높이의 낡은 아파트 여러 동을 지나자 초등학교가 나왔다.

 초등학교를 가파르게 넘어서면 5분 거리도 안 되어 동욱과 주영이 살고 있는 아파느가 나왔다.

 아파트는 약간 높이 지어져서 한 눈에 바다가 보였고, 바로 아래의 주택 여려 채와 바다 가에 붙어 있는 또 다른 아파트 몇 동과 저 멀리 바다 끝쯤에 동욱의 공사현장이 보일락 말락 했다.

 주영은 뒤 베란다 미닫이 문을 열었다. 다시 앞 베란다 문을 열었다. 맞바람이 들어왔다.

 돌아다니느라 피곤했지만, 주영에게 바다 공기는 상쾌하게 와 닿았다.

 빨래를 앞 베란다에 늘고 있는 주영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빛이 좋아 금방 마를 것 같았다. 주영의 눈 아래 꽃이 화려하게 핀 도로가 눈에 띄었다. 온통 벚꽃 천지다. 아름답다. 아파트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도 14층에서 내려다 보였다. 14층 아래는 화단이었다. 뒤 베란다에서도 창문을 열자 가까운 산에서 이미 만개한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주영은 만개한 벚꽃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텔레비젼 화면 안의 기자의 말은 사실이었다.<8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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