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고, 한동안 교무실은 전화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대체 교장선생님은 뭐하시는 분이냐,
어떻게 그런 애송이를 선생님으로 들일 수가 있느냐는등.
선생님들은 벨소리만 들려도 깜짝 깜짝 놀랬다.
교장선생님은 소위말하는 치맛바람일으키는 엄마들의 원성을
서선생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으로 잠재웠다.
서선생을 믿지 못하겠다는 엄마들의 극성에,
우리 학교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그래서 교육방송에서 강의도 하는
이선생을 수학B과목을 맡게 했다고 했고, 그제서야 엄마들은 한시름 놓았다는 등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때 그 엄마들은 서선생이 맡지 않은 다섯반의 엄마들의 부러움을 사게 될 줄
꿈엔들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중간고사가 끝나고 시험결과가 나왔다.
선생님들의 놀랜 표정과는 반대로 흐뭇한 표정의 교장선생님.
선생님들은 뭔가 잘못됬다는 표정이었다.
특히, 1학년수학 B과목을 맡은 이선생의 충격은 컸다.
자그마치 이선생이 맡은 단원보다 무려 평균10점이나 높았고,
다른 다섯개 반아이들 보단 평균 15점이나 높았다.
이선생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실력이 좀더 낫거나, 운좋게도 잘찍었던것뿐이라고.
잠시나마 긴장했던 아이들은 중간 고사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등
시끌벅적댔다.
그리고, 지원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수학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수학시간을 즐겼고,다른반 아이들은 그런 지원의 소문을 듣고,
풀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자신들의 담당선생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수학문제집을 들고 지원을 찾아오기 일쑤였다.
지원은 그들의 담당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선생님들은 불편한 심기를 애써 숨키며
괜찮다고 했다.
그런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학부모들에게 퍼지자,
지원이 맡지 않은 다른 다섯반 엄마들은 다음 학기땐 꼭 서선생님이 맡게 해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해왔고,
얼마전까지만해도 지원의 실력 운운했던 엄마들은, 다음학기에도 꼭 지원이 맡게 해달라고
코맹맹이소리까지 내곤했던 것이다.
지원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교장선생님은
그제서야 온전하게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지원을 믿었지만, 엄마들의 거센 항의와 선생님들의 불신의 눈초리에
내심 불편했던 교장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중간 고사가 끝나고, 조금은 여유로운 학교생활이었다.
지원은 학교가 끝나자 일찍 집으로 들어와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 때, 자신의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다.
"네, 서지원 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혹시 강세찬이란 학생을 아십니까?"
"세찬이요? 저희반 학생인데요.?"
" 맞군요, 여긴 강남경찰서 인데요......."
그 뒤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었다.
지원은 처음 당해보는 일에 당황을 해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금방 자신이 갈테니까 세찬일 잘좀 부탁한다고 하곤,
지금 입고 있는 청바지와 흰후드티를 그대로 입고선 2층에서 내려왔다.
마침 퇴근하고 들어오던 지운은 급히 내려오는 지원에게 무슨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 서지원! 무슨일이야?"
"응, 오빠 왔네. 근데, 어쩌냐, 나 급히 갈데가 있는데...."
허둥대는 지원의 모습에 지운은 지원을 따라 나갔다.
"가자, 오빠가 데려다 줄께."
"그래줄거야? 고마워 오빠."
"자식, 그깟일에 고맙기는."
지운은 경찰서까지 가면서 지원을 따라 나서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원의 반학생이 싸움을 한 모양인데, 지금 지원의 모습을 보고
누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타이핑 소리만 나는 조용한 경찰서 내에 벌컥 문여는 소리가 나자 모두의 시선이
지원을 향했다.
그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지원은 세찬이 부터 찾았다.
"강세찬! 대체 이게......"
처음 겪는 일에 지원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교실에선 늘 조용하던 세찬의 이런 모습은......
한쪽 눈두덩인 부어 똘망똘망 한던 눈동자는 반으로 줄어들고, 교복은 꼬깃꼬깃 해져
곳곳엔 핏물이 들어있고.
도저히 그 깔끔하고 귀공자 같던 강세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원을 본 세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젠장......"
가뜩이나 나이도 적은 담임의 지금의 모습이란......
긴 생머리는 목뒤에서 하나로 질끈 묶고, 입고 있는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라니,
세찬은 외면하고 싶어졌다.
그 때까지 타이핑을 치던 경찰관이 지원을 향해 물었다.
"저, 어떻게 오셨는지요?"
"네, 강세찬 담임인 서지원이라고 하는데요."
"네?"
세찬과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킥킥킥."
"푸하하하핫."
"큭큭큭큭."
세찬이 그런 녀석들을 한껏 쬐려보았다.
여전히 그녀석들은 배를 부둥켜 안고 웃고 있다.
"조용히햇!"
당황한 경찰관이 녀석들을 향해 소리쳤다.
경찰관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지원은 급히 들고온 자신의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신분증에 있는 사진과, 교원증을 확인했음에도 참으로 난감했다.
그 때 지원과 함께온 지운이 나섰다.
"수고들 하십니다."
"아, 네. 누구신지?"
"네, 서지운 이라고 합니다."
"아, 혹시 서울지검의 서지운 검사님 아니십니까?"
"저를 아십니까?"
"아, 네 사건때문에 들어갔다, 얼굴을 뵌적이 있죠."
점점 풀려지는 기미가 보였다.
"그럼 혹시 이분이?"
"네, 제 여동생입니다."
한동안 서울지검엔 서지운검사의 소문이 떠돌아 다녔다.
최연소 합격자란 타이틀에 맞게, 그가 맡은 사건에 미결은 없었으며, 그 보다 더 수재인 아니, 천재란 소리가 더 맞을거라는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
그제서야 이 상황을 이해한 경찰관이 지원을 향한 굳은얼굴을 폈다.
"강세찬 학생이 집에는 연락할 수 없다고 해서, 부득이 하게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저 녀석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세찬학생은 훈방조치 하겠습니다.
나중에라도, 진단서 첨부해서 고소장을 낼 수 있습니다."
"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세찬인 제가 데리고 갈께요."
세찬의 앞으로 간 지원은 세찬을 일으키는 동시에 옆에 앉은 녀석들에게 잊지 않고
한마디했다.
"너네들! 어느 학교 몇학년 몇반이야?"
경찰서에서 나온 세찬은 욱씬거리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똑바로 메고선 앞으로 걸어갔다.
"세찬아, 강세찬."
'우띠, 저녀석은 맨날 콩나물만 먹은거야,뭐야? 왜이렇게 큰거야?'
긴다리로 빠르게 걷고 있는 세찬을 따라잡기 위해 지원은 거의 뛰다시피 했다.
"야, 강세찬! 너 거기 안서?"
세찬을 따라잡은 지원은 세찬을 휙 돌려세웠다.
"너, 대체 ......."
그렇지만, 세찬의 몰골을 본 지원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세찬의 담임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그녀의 나이 스물.
여린 감성에, 매우 아플것 같은 세찬의 모습에 지원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길 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챈 지운은 두 사람의 팔을 잡아 자신의 차기 세워진 곳으로 왔다.
" 일단 차에 타."
세찬일 먼저 차에 태우자, 지원이 세찬이 옆에 앉았다.
" 집이 어디야? 데려다 줄께."
" 집에 안들어 갑니다."
" 이녀석아, 그런게 어딨어? 남자답게 가서 잘못했습니다, 하면 되는 거지.
그나이에 안싸워본 녀석이 어디 있겠냐? 뭘 그까짓것 같고 그러냐?"
" 오빠!!!!!!!!!"
" 절대 집에 안들어 갑니다."
어쩔 수 없이 지운은 자신들의 집에 세찬일 데리고 왔다.
"휴, 저 고집하고는...... 어쩔 수 없지 뭐.
지원아 세찬이 부모님 걱정하실테니 일단 집에 전화 드려서 니가 적당히 둘러대고
몇 일만 데리고 있어라.
하긴 저모습으로 집에 가봐야 부모님들 걱정만 하실게 아니냐."
지운의 말에 지원은 세찬에게 물어 세찬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세찬이네 집이죠?"
" 응, 그런데, 세찬이 지금 집에 없는데."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
"안녕하세요? 세찬이 어머님이신가요?"
"응, 그런데 누구니?"
"네, 전 세찬이 담임인 서지원이라고 합니다."
헉, 수화기 건너 당황하는게 분명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해할만했다.
전화상의 지원이 목소릴 세찬이 친구로 여기는건 당연하니까, 근데 이 낯설지 않은 음성이란........
" 아이고.
죄송해요, 선생님. 전 목소리가 너무 어리게 들려서....."
갑자기, 어투가 바뀌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원은 세찬의 어머니가 당황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지금 세찬이가 저희집에 있는데요, 다른 애들 몇명과
제가 어떤과제를 해결 할 게 있는데, 도움이 필요해서요.
며칠만 같이 있으면 안될까요?"
믿는지 안믿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께 맡기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었어도, 지원은 세찬이 어머니가 누굴까 궁금했다.
정말로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단 말이다.
지원은 구급약으로 세찬의 상처난 부위를 소독해주고, 지운의 트레이닝복을 건네주곤,
세찬의 교복을 세탁했다.
세찬을 큰오빠 지섭의 방으로 데려갔다.
" 오늘은 푹쉬어. 그리고 내일 나랑 같이 학교 가자."
지원이 방에서 나가자, 세찬은 낯선방에서 쉬이 잠들것 같지가 않아, 책장에 꾲혀져 있는
앨범을 찾아 한장씩 넘겼다.
"훗, 디게 귀엽네."
지원의 백일과 돐사진.
점점 자라는 지원의 모습을 본 세찬은 오늘의 일들은 다 잊어버린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원의 앨범엔 이상한게 있었다.
자신의 앨범과 비교해서 가족들 사진은 있었으나, 친구들 사진이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졸업식 사진도 없고.
아, 여기 졸업식 사진이 있다.
대학교 졸업식 사진인가 보다.
지원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언니오빠들이랑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
그제서야 세찬은 지원이 자신이 살아온 삶과는 무척이나 달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 옆에는 또하나의 파일이 있었다.
" 헉.
뭐야, 박사였어?"
지원이 그동안 받은 상들과 수료증들이 꼽아져 있는 파일.
지원의 실력에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어?"
수료증에 씌어진 서지원이란 이름과 옆에 있는 지원의 주민번호.
" 뭐야? 아직 스무살도 안된거잖아?"
지원은 7월생.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지원은 아직 만으로 스무살이 된건 아니었다.
"큭큭큭큭...."
혼자 웃고있는 세찬의 표정엔 알 수 없는 장난스러움이 가득했다.
"좋았어.
서지원선.생.님!
올해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성년식을 치뤄줄께, 기대하시라구......"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며 세찬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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