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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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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근처엔 꼭 허름한 여인숙이 있다


BY 정자 2010-09-26


 

 


기차역근처엔 꼭 허름한 여인숙이나 여관이 있었다. 지금이야 모텔이 더 흔하지만  그 땐 여관보다 키가 낮고 방만 다닥다닥 붙어 골목길도 한 사람만 겨우 들어 갈 수 있는 여인숙이 더 많았다.  잘만 애기하면 방값도 깍아 주었다.좀 더 오래 된 여인숙들은 달세방이라고 큼직하게 문패처럼 붙여서 장기간 투숙하는 사람들도 따로 받아 영업하는 집도 모두 대개 역  근처였다

 

다섯 명이 함께  숙박을 한다고 했더니 그렇게 큰 방이 없단다.

모두 쪽방처럼 두 사람 어깨 세워 칼잠을 자도 좁을 듯한 여인숙도 있었다.

멀쩡한 집 놔두고 떼거리로 몰아서 잠자는 방을 알아보려니 내심 창피하기도 했다.

" 아니 우덜이 집 없는 여자들이여..왜 이러고 다니냐?"


그러지 말고 좀 근사한 방을 구하자고 한다. 금방 지은 듯 신축여관이 보였다. 그래서 현관을 기웃 거렸는데 도무지 어디가 입구이고 방 있냐고 묻고 싶어도 문이 보이지 않았다. 안의 복도는 길게 어둠 컴컴하다. 아직 영업을 얺하나 모두 다 어디 갔나 이 방 저 방 기웃거렸다.


' 누구세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키 작은 여자가 우리를 생소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자고 갈려고 하는 데.."

" 몇 분인데요?" 목소리가 앙칼지게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왠지 우리는 움츠러들었다.

" 다 섯명이요" 겨우 대답을 했는데.

침대있는 방은 둘이 들어가야 하고 온돌방은 세 분이 들어가야 한단다.

 

그러니까 두 개의 방을 쓰라고 한다. 우리는 그 키 작은 여자의 목소리에 기가 팍 죽어 버렸다. 뭔지 모르지만 그 여자의 목소리는 은근한 카리스마가 듬뿍 배여 우리가 그렇게 안하면 큰 일 날 것 같은 상상을 저절로 하게 했다.

누가 침대 쓸 거냐고 묻지도 않고 덜컥 방 열쇠를 내 손에 두 개를 쥐어준다.

 마주보고 있는 방을 주었다.


막자언니는 문을 열어보더니

“야..니는 침대체질이 아니다...온돌방으로 갈 겨!” 이러시더니 얼른 나 있는 쪽으로 오신다. 그런데 모두 침대 방은 싫단다. 그러니 다른 온돌방을 바꿔달라고 하는 데. 나는 그 키작은 여자 목소리가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침대방을 쓰고 말지.


송화랑 나는 침대를 쓰고 막자언니랑 멀대 아줌니는 벌써 베개를 안고 다니신다. 냄새가 좋다나..아마 세제냄새 일텐데. 그렇게 방을 정해놓고 보니 배가 출출하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대충 허겁지겁 때웠는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동안 못 먹은 거 먹어야 한다고 멀대 아줌니가 메뉴를 애기하란다. 그 메뉴판이 있어야 고르지. 먹는 상상만 해서 금방 떠오르냐고 떠벌이 아줌니도 덧 붙여 설명을 하실려나 뭐니 뭐니 해도 객지에 나오면 밥 심이 젤 중요하다고 했다.

"아 누가 뭐랬어? 밥을 먹자고 했지..근디 요 근처에 중국집 있나?"

" 웬 중국집이여..짜장면 먹게?" 멀대 아줌니 묻는 말에 떠벌이 아줌니 얼른 대답을 한다.

" 아니 그게 짜장밥도 있고 볶음밥도 있구..짜장면도 먹을 수 있고.."

" 짜장면 먹고 싶냐? 그럼 나는 짬뽕이다.!"


밤 먹자고 하시더니 어느 새 면으로 결정 되 버렸다. 나가기도 귀찮다고 카운터에 주문하란다.

나도 그러고 싶은 데 그 키 작은 여자 목소리가 또 듣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모두 그러셨나 에잇 그냥 우리 나가서 시켜 직접 먹고 다시 들어오자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같이 중국집을 가 본 적이 없다. 식당을 같이 하다보니 회식이라는 것도 별미를 찾아다니면서 먹은 적도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회식이라는 자체가 없었던 것은 잘 모르고 같이 몇 년을 살다보니 우리 식당에서 같이 먹고 자고 그게 전부 인줄 알앗으니, 굳이 중국집에 탕수육이나 한 접시 시켜서 순도 높은 고량주 한 잔 돌리면 그게 최고인 줄 알았다.


울긋불긋 글자가 기가 막히게 한문초서체로 북경루 라고 써 있는 중국집이 보였다. 들어서는 입구 오른쪽에  작은 개집이 보였다. 묶인 개는 나른하게 배를 바닥에 길게 깔고 하품을 하는 중이다. 개밥에 먹다 남은 탕수육이 누렇게 마르고 있었고. 그 맞은편엔 선인장이 늘씬하게 키가 커서 푸른 대나무처럼 서 있었다.


주문을 하니 다 제각각이다. 못 먹었던 것을 시켜야 한다고 하던 멀대 아줌니는 짬뽕을 시키시더니. 아깐 짬뽕을 시키려고 했던 떠벌이 아줌니는 짜장면! 이러신다. 막자언니는 메뉴판을 한 참 살펴보더니 삼선짬뽕이라고 하는데.

“ 그건 짬뽕보다 더 비싼 거여? 근디 뭘 넣어서 그런 겨? ”


결국 나도 간짜장에 송화는 밥 한 공기를 추가 주문해서 같이 밥을 비벼 먹었다.

첫 여행지에서 기차역 옆 중국집에서 밥을 사먹은 게  내 일생에 처음이었다.

아침 첫 기차를 타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누가 제일 먼저 일어날 거냐고 당번을 정했다.

당연히 새벽에 제일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날 것 같은 막자언니 놔두고 떠벌이 아줌니가 먼저 깰 거라고 하신다. 하긴 우린 침대에서 따로 잘 건데. 누가 일찍 일어나도 상관이 없었다.


대게 객지에서 잠을 자는 데 당연히 설친 잠에 얼핏 꿈 같은 것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꿈에선 자꾸 누가 우리를 몰아서 돼지우리보다 못 한 곳에 좋은 여행을 하라고 잡아끈다. 우리는 싫다고 말 한 번 못하고 그냥 어쩌지도 못하고 어정쩡하다가 나는 새벽에 잠을 깨었다. 제일 먼저 일어난 것은 나였다. 미심쩍은 눈으로 여관에 발라진 도배지에 새긴 꽃 무뉘를 하나 하나 열거하듯 세어 보고 있었다.


문득 집에 가고 싶었다. 애들도 보고 싶었다. 울컥 눈물이 났다. 그냥 소리도 없이 눈물이 얼굴위에서 뚝뚝 떨어졌다. 지금이라도 막자언니에게 말하고 나 서울 가는 대신 애들 좀 보고 와야 겠다고 말 할까 했었다. 도무지 지금 몇 시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붉은 커텐을 제치고 바깥을 살펴보았다. 도시는 이상하게 밤에도 새벽에도 환하다. 그래서 별이 하늘에서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내 옆에서 자던 송화가 울고 있는 나를 호들갑스럽게 얼른 다른 아줌니들을 부르러 갔다.

내가 운다고 언니가 왜 그러는 지 모르겠다고 했나보다.


사실 눈떠보니 집도 아니고 늘 잠을 자던 식당도 아니고 낯선 곳에서 어둠침침한

이런 분위기에 쓸쓸 할 만도 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또 내가 왜 우는지 모를 때다.

정확히 무슨 제목을 달아서 왜 우는 지 이유를 대야 놀라서 달려온 아줌니들에게  대답을 해야 할 것인데.


내가 울어도 모를 그 이유가 딱 한마디로 요약이 영 안 되었다.

" 야 니 서울 가기 싫어서 우는 거여?" 떠벌이 아줌니가 묻자 옆에서 멀대 아줌니가 대답을 한다.

" 그럼 말을 하지? 울긴 왜 울어? 식전 댓바람부터?"


난 그게 아닌데 서울 가기 싫어서 운 게 아닌데 그렇게 되 버렸다.

막자언니가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둘리 아줌니가 있을 때는 세금이며 각가지 일상에 대한 고견과 참견을 도맡아 했었는데.

그 빈 자리를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매출 장부정리며 은행에 가는 거며, 잘 세지 못하는 돈도 나는 세는 연습을 해가면서 회계 일을 봐야 했었다. 그래봤자 하루 수입과 지출만 따지면 되는 것이고 막자언니가 계산 맞나? 물으면 나는 대충 맞는 것 같어 이러면 통과되었으니까 어려울 건은 없지만  서울 갈 때 서울이 고향이지만 서울에 살아도 서울 지리 전혀 모르는 길치가 맨 앞장에 서서 인도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내가 서울 가는 게 싫어서 울고 있다고 했으니 막자언니가 또 얼굴이 침울하다.


울다가 눈물이 그친 것은 배가 고파서 배고프다고 했더니 아침 일찍 문 여는 식당이 해장국집 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우리는 또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기차역전이 보였다.


첫차가 8시 5분에 출발한단다. 그것도 완행기차였다. 아마 출퇴근을 하는 통근 기차였을 것이다.

우리는 완행을 타고 갈까 ,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 더 빠른 기차를 탈까 의논을 했기는 햇지만 그래도 첫차를 타면 그 만큼 빠르게 도착 할 거라는 기대에 결정하였다.


식당에선 우리만 여자들이었다.

구리터분한 냄새가 여기저기에 배인 선지 해장국집이었다.

지난 새벽에 벌써 거나하게 취한 취객들이 버리고 간 휴지가 구겨져 바닥에 이쑤시개며 국물이 흐트러져 있었다. 술 먹은 고객이 식당에서 체면을 차려 줄 것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

밤새도록 술을 푸고 또 해장하러 왔다는 두 사내의 욕지거리도 다섯 명의 아줌마들이 앉아 잇는 것을 보고 조용히 해장국을 주문했다. 우린 그냥 쳐다보기만 했는데 무슨 조직을 보는 것처럼 우리들을 자꾸 힐금 거렸다.


우리는 그 중에 빈 테이블에 둥그렇게  앉아서 정면을 보니 호랑이 같기도 하고 고양이보다 좀 큰 게 푸른 대나무 숲에서 나를 쬐려 보고 있는 그림을 보고 깔깔대고 웃었다.


어느 이발소에서 빌려 온 것 같은 그림 같은데.

" 니 아침에 울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 난데?" 떠벌이 아줌니가 살짝 내 귀에 대고 수근 대었다.

" 에이,,그짓말두 잘 하셔? 아줌니는..." 아까와는 또 다른 전혀 분위기였다.


환경은 참 중요하다. 내가 아무리 뭘 어떻게 해 보려고 해도 그 환경에 걸맞지 않으면 소용  없는 짓일 거다. 멀대 아줌니는 아예 식당주인에게 말을 붙였다.


" 저거 혹시 삸 아니유?"

" 예? 삸이라뇨? 주인 아줌마도 처음 듣는 동물이름 인가보다.


“ 아! 거 있잖아유..밤에 몰래 닭장에 들어가 잡아먹는 삸괭이 저 호랭이는 사촌인가? 싶네”

알아들었다는 웃음으로 주인 아줌마는 그 그림의 출생지를 애기했다.


사실은 누가 버린 건데..길거리에 세워진 것을 그냥 벽 가리개로 걸어 놓은 거란다. 벽가리개로 걸려진 호랑이 사촌은 눈빛은 부리부리했다. 민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은 사실은 뜻이 따로 있을 것인데.


우거지국밥은 맛이 있었다. 대충 끓여 낸 국물 맛이 아니었다. 막자언니가 국물을 더 달라고 하신다. 어지간 해서는 과식을 하지 않는 데. 우리도 아예 한 그릇 더 말아서 나눠 먹자고 했다. 어디를 가든 속이 든든해야 가도 잘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