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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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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는 여자들


BY 정자 2010-05-02


 

" 아니 우덜이 언제 여행가자구 보챈적두 없는 디 뚱딴지 같이 왠 여행을 가자고 그러는 겨?"


한 참 장사에 신나게 맛이 들은 멀대 아줌니가 시큰둥하니 툴툴 대셨다.

한 번도 정식으로 어디를 가고 돌아 다닌 적 없었던 우리들은 더욱 막막했었다.

말이 그렇지 어느 곳에 가던 몇 번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 그도 저도 되든 안되든 많은 시간을 들여 재볼 것 다 해도 여행이 혼자 흘쩍 떴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런 것은 모르더라도  막자언니는 지금 당장 가자는 것이다. 나보고 기차역을 같이 나가야 한다고 얼른 옷 갈아 입으라고 한다. 설레벌레 문앞에 금일휴업도 아니고 몇 칠 사정이 생겨 장사 못한다고 자세하게 길게 쓰란다. 매출장부 맨 뒷장을 북 찢어서 굵은 사인펜으로 얼른 쓰란다. 급하게 쓰니  글자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알아 볼까 걱정도 된다.

 

놀러 간다고 식당휴업이라고 쓰면 난리날테고, 여행이나 놀러가는 거랑 별 차이는 없는건데
그걸 간단하게 쓰라니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하려면 그냥  부친상을 당해서 몇 칠 영업 못함! 이렇게 쓰자고 했더니 멀대 아줌니 그러시네.
 
" 야 야  울 아부지 돌아가신 지 십년이 넘었는디 누구네 초상났냐고 나중에 물어보면 워쩔려구?"
" 아이 난 물러! 울 아부지는 지금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는디?"
옆에서 송화가 한 마디 더 한다.
막자언니가 한 마디로 정리를 해서 그냥 " 내부 수리중! 몇 칠 걸림!' 이렇게 부르는대로 받아 써서 두 장을 만들어 현관문에 한 장 붙이고, 들어오는 대문은 없지만 이정표처럼 판자대기 간판에 한 장 단단하게 테이프로 붙였다.  


 
막자언니가 이 거 해라 저 거 해라 계속 재촉하시니 우리는 저절로 양말을 신고 떠벌이 아줌니는 거울 보고 빗을 찾아 다니고 멀대 아줌니는 옷을 뭘 입고 가야 하냐구 비키니 옷장에 아예  얼굴을 넣어 버렸다. 기차표도 모두 다 같이 역에 가서 예약을 하자고 하니 누구하나 그게 갈 사람 명 수대로 얼굴 디밀고 끊어야 서울 가는 줄 알았었나 아무도 반대 하지 않았다.


 
식당이 있는 사거리에 버스가  들어 올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다고 했더니 막자언니는 무조건 나오란다. 도로가에서 그래도 제일 젊은 새댁처럼 보이는 송화가 손을 막 흔들란다. 지나가는 차가 트럭이던 승용차이던 무슨 차이던 간에 차별하지말고 흔들란다.


 
" 아니 언니! 지금 우리 막 나가자는 거여? 가출하는거여? 엉? 누가 막자 언니 아니라고 할 까 봐 그러는 겨?"


멀대 아줌니가 지나가는 차에 마구 손을 흔들라는 말에 막자언니 이름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막 떠나냐구 하니 모두 우하하하 한 바탕 웃었다. 시골은 승용차보다 트럭보다 경운기가 더 잘다니는 도로인데. 어쩌다가 버스나 트럭이나 다니는 길에 멀리서 두다다다 경운기가 한 대 느리게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경운기는 그냥 보내자고 했더니 막자언니가 무슨 상관이냐고 세우란다.
 
한 참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철이니 어디 모판을 던져놓고 돌아오는 길인지 경운기가 흙먼지로 뒤덥혔다. 우리가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셨나 천천히 서신다.
 
" 저기유..시내 사거리 버스타는 데까지 우덜 좀 태워줘유?" 막자언니가 그렇게 말하니 경운기 운전사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타란다.
서울 간다고 기차표 예약을 하러 경운기에 여자 다섯명이 타니 나는 경운기 뒤에서 꼿꼿하게 등받이를 꽉 잡고 송화랑 서서 가고 턱걸이 하듯이 엉덩이를 걸친 떠벌이 아줌니는 엉덩이 튕겨 나간다고 엄살이시다. 얼굴에 부는 봄바람이 더욱 간지러우신가 살살 가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경운기 엔진소리에 묻혔다.
 
" 뭐 둘리가 그리 겁나게 보고 싶다고 우덜 기껏 경운기 태워 갔고 가는 겨..아자씨 천천히 가유..엉덩이 겁나게 땡겨유?"
뒤에서 아무리 소리 질러도 경운기 엔진돌아가는 소리에 다 먹혀 바렸다. 그러면 그럴 수록 신나게 더 달리시는 데. 겨우 사거리 버스정류장에 네리니 정신이 나갔는지 부는 바람에 머리가 다 한 쪽으로 쏠려 미친년 하나 둘이 아닌 떼거리로 몰려 다닌다고 오해 받기 쉽상이었다.  


 
사거리엔 치킨집이 신장개업한지 얼마 안되었나 행운목이 나보가 키가 더 크게 분홍색 리본을 달고 늠름하게 서있고. 그 옆 가게 정육점에선  붉은 형광등아래서 파란 파리채를 들고 졸고 있는 주인 아줌니가 고개가 자꾸 왼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바닥까지 쏠리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모습에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주인이 조는 사이 정육점 유리창으로 우리들 얼굴도 보고 머리결도 다시 정상으로 손가락으로 대충 빗질하고도 느린  오후는 너무 나른하다. 햇빛도 느러지게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오 가는 사람도 걷는 사람도 모두 그늘로 피신갔을 것이고. 더위에 헐떡 거리던 순대국집에서 키우는 개 한마리가 우리를 유심히 보고 한 번 컹하고 짖더니 금새 말아버린다. 보나 마나 버스타고 금방 갈 나그네들 어디 한 두번 본 눈치가 아니다. 
 
교차로엔 아직 신호등도 없고 겨우 노란 중앙선만 폼나게 그린 그 길 옆에 굵은 느티나무아래 다 섯명인 우리들이 앉아있으니 콱 찬 평상 같았다. 이정표라도 제대로 있는 버스노선도 없고 아마 하루에 오는 버스는 딱 한 대요. 시간만 잘 지켜주면 고마운 시골 시외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꼴도 아니고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갔나보다 하던 때였다. 어쩌다가 울타리붉은 장미가 금방 송화가루 휘날리던 소나무등을 타고 업혀서 하마터면 시퍼런 소나무도 시뻘건 꽃을 피우는 줄 알았다. 그 옆엔 부추밭이 한뙈기 만한게 꼭 내 손바닥만큼 보다 조금 더 큰데 어린 고양이가 거기서 오수를 늘어지게 즐기고 있으니. 개 팔자는 들어 봤지만 잠 잘 자는 고양이 팔자는 처음 본다.
 
한 삼십여 분 지났나보다.
경운기는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그렇다치고 시외버스는 푸른색 바탕에 먼지를 뒤집어써서 원래먼지색인지 낡은 것도 새 것도 전혀 눈치를 못 채게 했엇다. 덜덜 엔진이 떨어서 경운기에 뚜껑 달린 거라고 생각하면 별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하긴 이런 곳에 온전한 버스가 다니면 이상한 것일테고.
 
라디오에선 이미자의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밤을 지새워 멍이 들었다나 뭐 그런 노래가 술술 흘러나오고 오월의 초입은 더운여름을 예고하듯이 시골 버스 안은 후덥지근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보니 그제야 떠벌이 아줌니가
 " 아고고 이를 어쩌냐? 양말이 짝짝이여?"
 그러고 보니 오른쪽 양말은 누르팅팅한 거고 왼쪽 양말은 더 샛노란 양말이다. 아니 얼마나 설쳐서 내가 양말 바꿔 신은 것도 모르게 난리를 친 거냐고 그러고 보니 갈아 입을 옷도 여행이라고 폼나게 가방을 들지도 못하게 이런 게 뭐 서울행이냐고 또 궁시렁대니. 멀대 아줌니도 막자언니 옆에서 혹시 내 양말도 바뀐 거 아닐까 그제야 확인하고 나도 그 말 듣고 혹시 나도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나 확인 했다. 다행히 떠벌이 아줌니만 양말이 짝짝이다. 이런 게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기차가 완행열차가 따로 있었듯이 시외버스는 서울직행이 아닌 이상 구석구석 설 데 다서고 머무를 데 다 머무는 통에 한 두어 시간만 가면 금방 갈 서울을 한 나절이 아니라 하루가 걸리니 기차가 있는 동네에 내려서 기차표끊고 잘하면 저녁도 사 먹어야 했다.
 
막자언니는 오랫만에 장거리로 차를 타니 멀미하는 사람은 멀미약을 사 먹어야 한다고 한 사람 한 사람 누가 멀미 하냐고 묻는다. 나도 아직 괜찮고 다른 아줌니들은 모두 그런 거는 아무 상관이 없듯이 하더니 혹시 소화제나 사 두란다. 왜그러냐고 하니 물갈이 하면 영낙없이 배탈 난다는 송화가 젤 걱정이라는 데.
 
털털 기차역이 있는 읍에 내리고 우린 또 역을 향해 걸어 갔다. 기차역을 향해서 걸어가는 도중에 전봇대 사이에 축축 쳐진 전깃줄에 저녁태양이 까맣게 반토막을 금 긋고 걸쳐져 유난히 크게 보였다. 생전 태양을 그렇게 만만히 가까히 본 적도 없었지만. 대책 없는 것은 붉은 울타리장미가 녹슨 철대문을 가리우고 피워대는 향기에 멈추고 또 보고 했었다. 낡은 양은 쓰레기통이 더욱 구부러져 허리가 한 쪽이 누군가의 발길에 움푹 패여 찌그러진 그 모퉁이에 하얀 민들레가 옹기종기 서로 입사귀를 겹쳐서 피워내는 홀씨솜틀이 너풀 너풀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도시에도 민들레가 한 자리 제대로 잡아 노점을 하듯이 피워 대고 피워내는 그 꽃들이 행인에게 밟혀도 또 일어나고 꺽여도 솜틀어 홀씨로 풀풀 날아다니는 곳을 우연히 본 것이다.
 
비록 사람이 북적북적 대는 곳인데도 오월의 장미만큼 가장 정열적으로 크는 통에 차 지나가는 소리에 흘끗 우리 일행을 쳐다보는 다른 행인의 눈빛도 싫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먹고 사느라 기차 타는 법도 잊어 버린 것 같은 착각을 잠깐 했었다. 그 동안 우리가 뭐하고 사느라 여기에 낯설게 걸어 가고 있었던 것인지 서로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기차역 매표소까지 도착했다.
 
" 서울로 갈 건디 언제 표가 있어유?"
" 언제 갈 건 데유?"
" 오늘이요?"
" 에휴..금방 막차가 지나갔어유..갈려면 내일 첫 차를 타셔야 합니다."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기차가 첫 차도 있고. 막 차가 있다는 것을. 역시 촌뜨기는 다르다. 처음 아는 것이나 그동안 모르고 살아 다시 기억나는 것도 참 많았다. 그나저나 우리들은 이제 어쩌나 저녁을 우선 먹고 생각 해보자고 했다.
 
" 아니 그러니까 내일 것을 예약하고 오늘은 집에서 자고 내일 택시타고 나오면 될 것을 ..우덜 모두 올 필요가 없는 디 이게 뭔 고생이여? 떼거리로 어디 훈련하러 가는거여? 시방?"
시방이라는 말을 자주 애용하는 멀대 아줌니가 제일 키가 크다고 했는데, 시내에 나와보니 키 큰 여자들 참 많았다. 우리들은 하나 멀대 지나간다.  또 두번 째 멀대 지나간다.. 또 나오네 이런 식으로 역전앞에 우두커니 앉아서 지나치는 행인들을 보니 이것도 꽤 재미있었다. 날씬하고 이쁜 아가씨들이 간혹 보이는데 꼭 손에 보자기를 들고   다방에서 나온다.
 
나 어렸을 때 좀 이쁘면 모두 다 거기가야 하나보다 했었다.하긴 나는 스물 한 살까지 주민증을 들고 가야 하는 곳이 다방인 줄 알았다. 내가 너무 어리게 보이는 동안이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만 가면 주민증을 내 놓으란다. 그래서 못 갔다. 칠칠맞지 못해서 주민등록증을 만들면 항상 어디에 잘 두었긴 했는데 늘 찾느라 바뻤다. 이런 촌뜨기가 진짜 촌에서 몇 년 살다보니 진짜배기 촌년이 다 되어버린 것이다. 눈치도 전혀 익히지 않았으니까. 남이사 뭔 상관이야 했었다.
 
사실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행인들이 우리를 슬쩍슬쩍 쳐다 본것인데. 우리는 또 그렇게 누가 다리를 저나..누가 키가 크나. 무슨 옷을 입고 다니나..기타등등 각자 다른 시선으로 힐끔 힐끔살폈다.
 
" 아! 어쩔 것이여? 우덜 이렇게 길거리에서 밤 샐겨? "
멀대 아줌니가 또 재촉하니 그제야 어떻게 할까
궁리를 시작했다. 막자언니는 둘리아줌니가 무지 보고싶다고 했다. 하루빨리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