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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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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그녀를 만난 건 숙명(宿命)이었을까?...9


BY 盧哥而 2006-02-09

 


그녀에게 빠져들다 (3)




나는 한동안 민주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

처음엔 그저 아름답고 선량해 보이기만 했던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이 이젠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 처연하게 아름다운 눈으로 내 가슴에 점점 더 깊이 들어 와 박혔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음을 타며 어색한 표정과 낯설어하는 동작으로 내게 부딪쳐왔던 그녀의 풍만한 나신은 그동안 내게 잠들어 있었던 육정(肉情)을 스멀스멀 일깨웠다.


나는 그녀의 나신을 보고서야 정말 실감나게 여자의 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처음 깨달았다. 나이가 50줄에 접어든 그때서야...!

사실, 중학교 시절 처음 성에 눈을 뜰 때에도 내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던 여체는 그 당시 각종 주간지나 달력의 화보들을 통해 뿌려졌던 여배우들의 늘씬한 반라의 몸매보다는 미술교과서에 실린 르느와르나 로트렉의 누드화에 있는 풍만한 여체들이었다.

그때, 어떤 경로를 통해 겨우 밥술이나 먹던 농사꾼의 집안인 우리 집에 그런 훌륭한 책이 있게 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우리 집엔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좀 낡은 서양화 화집이 한권 있었다. 여러 권이 시리즈로 돼 있는 책이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유독 그 한권만이 우리 집까지 흘러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 화집엔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이 가득 실려 있었는데 그중 내가 좋아한 것은 고흐의 강렬한 색깔과 미친 듯한 붓 터치의 그림들이었고 여체에 관심을 가지면서 좋아한 그림들은 로트렉과 르느와르의 그림들이었다.

로트렉의 여체 그림들은 누드화라기보다는 이런저런 그 당시의 파리의 풍속을 그리는 한 방편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배치해 넣은 것 같았는데 상당히 선정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여체가 참 리얼하고도 아름답게 그려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르느와르의 누드화는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내게 깊은 인상을 주며 달려들었다. 면과 면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의 부드러운 터치와 파스텔화 느낌의 화려하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색상...그중 실제보다 상당히 과장하여 표현된 여체의 풍만함은 내게 묘한 성적충동과 그와 또 다른, 뭔가 말로는 표현은 안 되었지만 매번 넋을 빼고 바라보게 하는 강한 흡인력이 있었다.

내가 성에 처음 눈뜨고 사춘기를 다 보낸 고향집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아마 수백 수천 번도 더 떠들쳐봤을 그 화집 속 르느와르의 누드화들 때문이었는지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자는 체격이 좀 크고 적당히 살이 붙은 그런 풍만한 여자가 항상 좋아보였었다. 실제 그 정반대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 했으면서도...

민주의 나신은 그런 내 이상형에 대한 기준에 딱 맞는 체형이었다.

거기다 수동적이다 못해 내 손길을, 내 시선을 부끄러워하고 낯설어하는 그녀의 수줍은 표정과 어색한 몸동작들은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내 외에 만났던 그동안의 다른 모든 여자들과 그녀를 구분지어 생각케 했다.


그렇게 불안한... 나로서는 정말 불안한 날들이 흘러갔다. 민주를 보고 싶다는, 그 처연하게 아름다운 눈을 들여다보며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아니 그녀의 마음까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나를 존재시키고 싶다는 욕망과 그보다 더 생생하게 솟구치는 육정까지를 억누르며...

그녀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혀의 느낌과 입맞춤을 하다 잠깐씩 내 입술을 떼어낼 때 그녀의 뜨겁게 달은 몸이 그녀의 입을 통해 토해내던 그 단내...

끌어안아도, 끌어안아도 내 품에 다 담아지지 않을 듯 풍만한 그녀의 육체와 맨살에 닿아 마치 죽어가던 세포라도 다시 되살릴 듯 내 온몸의 피부에 전율을 일으키는 희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며 뜨겁고 보드랍게 휩싸들던 그녀의 속살들...

나는 그런 그녀에 대한 모든 생각과 생생한 맨살의 기억을 떨쳐버리느라 이를 앙다물었고 억지로 일에 몰두했다.


술에 취하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갈 것만 같아 처음부터 아예 술자리를 만들지 않았고 퇴근하는 대로 바로 귀가를 해, 생전 하지 않던 아들 녀석 찬우의 대학입시 준비의 근황을 챙겨도 보고 아직 고1인 딸 찬희의 공부 상태도 점검했다.

벌써 내 키를 한 뼘 가까이 훌쩍 넘겨 커버린 찬우는 새삼스러운 나의 태도에

‘아빠, 회사 일 또 어려워요?’

하고 지난 날 자기가 중학 1,2학년 시절, 특히 사업이 어려웠었던 때였던 내가 뭔가 밖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괜히 아들인 자기에게 갑자기 더 신경을 쓰는 듯이 이것저것 참견하며 잔소리를 해댔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못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아빠, 힘내세요. 이젠 우리도 옛날 같지 않잖아요. 엄마 부업도 든든하고 ...’

녀석의 짧은 생각에도 수억을 호가하는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아파트와 부업치고는 제법 규모도 있고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는 엄마의 베이커리 매장 사업만으로도 집안의 경제기반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이 되는 것 같았다.

아들 녀석의 그런 말을 들으며 ‘모르는 사이에 참 많이 컸구나.’ 하는 대견스러운 생각과 함께 한편 이런 아들을 두고 애비인 내가 여자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창피스러운 생각까지도 들었다.

딸 찬희 역시 생전 자신의 공부에 이런 저런 참견을 않던 아빠가 갑자기 자기에게 신경을 써주는 게 싫지만은 않은 듯 요즘 들어 부쩍 더 올라간 학과 성적에 관한 자랑이며 학교생활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딸 찬희는 아무래도 잔소리를 많이 늘어놓게 마련인 엄마보다는 그래도 가끔 잊지 않고 특별 용돈도 엄마 모르게 슬쩍 쥐어주곤 하는 나를 더 좋아했다.

아내도 갑자기 음주회수가 줄어들며 귀가시간이 빨라진 나를 싫어하진 않았다.

해가 서쪽에서 솟겠다는 둥 비아냥을 하면서도 아내는 아직 아이들이 귀가하지 않은 시간엔 나 혼자라도 저녁을 차려 먹을 수 있게 매장에 나가기 전 이것저것 챙겨 두었고, 나는 이삼일에 한번 꼴로 아내의 매장에 들러 거기서 시간을 보내다 매장이 끝나면 그녀를 에스코트해 집으로 돌아오는 서비스도 했다.


그러나 민주에 대한 생각...아니 그때 이미 이젠 ‘그리움’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내 속에서 발효되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그녀에 대한 생각은 그리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먼저 어떤 액션을 취하는 것을 간신히 제어하고 있는 상태였을 뿐이지 만일 민주 그녀가 내게 어떤 액션을 걸어온다면 나는 단숨에 허물어지고 흐트러질 것이 뻔한 상태에 있었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의 억지 평온은 역시 길게 가지 못했다.

그녀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건 그녀와 불같은 섹스를 치루고 헤어져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말자고 결심한 날로부터 불과 20여일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