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박 동석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퇴근 시간이 다 된 시각이었다.
“민주, 민주가 죽었어요!”
핸드폰의 뚜껑을 열고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미처 귀에 그 핸드폰을 가져다 대기도 전에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코딱지만한 핸드폰의 수화기 구멍으로 어떻게 그런 큰 소리가 날까싶게 찢어질 듯 날카롭고 큰 소리였다.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퇴근 준비를 하던 사무실의 직원 서넛의 동작이 일시에 멈칫 정지하는 게 순간적으로 내 시야에 잡혔다. 핸드폰에서의 박 동석의 고함이 그들의 귀에까지 들리고도 남았을 터였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귀에 바짝 밀착시켰다.
“... 그, 그저께 저녁부터 티브이 뉴스에 여러 번 나왔었죠? 시, 신사동에서 칼 맞아 죽은 여자... 그, 그 여자가 미, 민주에요!”
나는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져버리는 듯한 느낌과 온몸이 마치 감각이 없는 석고처럼 순식간에 굳어지는 느낌을 동시에 받으며 아뜩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의자에 털퍼덕 주저앉은 채 겨우 정신을 차린 건 여직원 둘이 황급히 덤벼들어 내 목덜미와 팔을 주무르고 냉수를 떠다 마시게 하는 등의 어설픈 응급조치를 받고서였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 주위에 둘러서서 멀뚱멀뚱 나를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에게 별일 아니니 어서들 퇴근하라고 지시한 후 그들이 미적거리며 사무실을 다 나간 다음에야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져 있는 핸드폰을 다시 주워들었다. 아까 내가 깜박 정신을 놓을 때 바닥으로 떨어뜨렸던 것을 아마 어느 직원이 주워 올려 놔둔 듯한 핸드폰의 귀퉁이엔 찌그러져 흠집이 난 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혹시 고장은 나지 않았을까 조금 걱정하며 핸드폰의 뚜껑을 열었지만 다행히 폴더 창이 바로 밝아지며 초기 안내문자들이 떴다.
나는 금방 수신됐던 박 동석의 핸드폰 번호로 재 통화 연결을 했다.
박 동석은 첫 신호가 가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 전화임을 확인하자마자 아까처럼 또 격앙된 억양으로 외쳐대곤 이내 울음까지 터뜨렸다.
“... 주, 죽은 그, 그 여자가 미, 민주에요. 어, 흑흑...”
민주의 장례는 그 사흘 후에 쓸쓸하게 치러졌다. 그녀가 죽은 날, 아니 살해당한 날로부터 엿새가 지난 후였다.
그녀의 살해 당일, 그땐 무심히 흘려듣고 보았던 티브이의 뉴스에선 그녀가 치정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도가 됐었다. 수년 전에 잠시 사귀었던 한참이나 어린 연하의 남자에 의한 원한살인으로... 티브이의 뉴스는 사건 당일과 다음 날 몇 번 쯤 그런 식으로 짤막하게 보도됐을 뿐 언제나 넘쳐나는 뉴스거리에 밀려 그녀의 피살 사건은 이내 묻혀버렸었다.
박 동석은 민주의 신원과 주변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 증인을 자청,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면서 그 며칠 동안 내게 계속 전화를 해 수사 진행상황을 그때그때 알려왔고 어젯밤엔 장례에 관한 상황까지를 전해주었다.
경찰에서는 살인사건의 관례대로 그녀의 시신부검과 당시 범행현장에서 바로 검거된 범인과의 이런 저런 관련 조사를 대강 마친 연후인 어제 늦은 저녁 때 쯤에서야 그녀의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도했다.
강릉에 살고 있다던 그녀의 가족들(그래봐야 늙은 모친과 남동생 한 사람뿐인)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이 빠진 채 서울에 도착해 경찰에서 시신을 인도받고 변두리의 허름한 장례식장에 급하게 빈소를 차릴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박 동석이 자기 일처럼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 때문이었다.
그녀의 시신은 그날 밤으로 장례식장에서 급히 염습을 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찍 화장터로 향했다.
서른 여섯... 그 길지 않은 인생을 불행하게만 살다 기어코 어두운 골목길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한 때는 그녀를 사랑했었을 한 남자에게 피범벅으로 온몸을 난자당한 채 쓰러져 불귀의 객이 돼버린 그녀는 변변한 장례식도 없이, 이제 한줌 재로 변한 것이다.
어제 밤늦게 그녀의 빈소가 변두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직후 박 동석에게서 그리 오지 않겠느냐는 전화 연락을 받았지만 그때 나는 솔직히 그녀의 빈소를 찾을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었다.
그녀의 빈소를 찾아야할까 말아야 할까를 놓고 몇 시간을 주저하고 고민했던 나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겨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박 동석이 전화로 상세하게 알려 준 그 장례식장까지는 내 숙소에서 차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장례식장이란 곳이 늘 조문객들로 붐비기 마련이었지만 내가 도착한 새벽 2시경의 그곳 정경은 시간상으로도 그랬었겠지만 그날따라 한적하다 못해 작은 인기척 하나 없이 쓸쓸하고 적막해 보였다.
그 느낌은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1년여 전 어느 날 밤, 그녀가 장사를 했던 술집 ‘칸타타’엘 우연히 들렀다가 돌아 나올 때 보았던 그 어둑하고 적막한 거리에 썰렁한 간판불빛 하나만으로 흡사 망망대해에 떠있는 외딴 섬처럼 홀로 외롭고 쓸쓸해 보였던 그 술집의 정경과 너무도 같아 보였다.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장례식장 입구 쪽의 주차장을 피해 좀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을 골라 차를 세운 나는 차에서 내려 그 자리에서 담배를 하나 피워 물고 잠시 서성댔다.
막상 장례식장까지 오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박 동석의 말로, 그녀의 모친과 남동생은 비명횡사한 그녀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화장을 시켜 그녀가 나고 자란 고향의 뒷동산에 재를 뿌려버리는 것으로 장례를 대신하겠다고 한 마당에 그들과는 생면부지인 내가 그녀의 빈소에 불쑥 나타난다는 것이 내겐 도무지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박 동석은 민주가 생전에 가게를 할 때 일 관계로 잘 알았던 사람이라고 적당히 둘러대 줄 테니 그냥 자연스럽게 와서 분향하고 그녀가 마지막 가는 길에 명복이나 빌어주라고 했지만 나는 막상 그녀의 모친과 남동생이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영정 앞에서 자연스러움을 가장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영정 앞에 서면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통곡을 쏟아낼 것만 같아서...
그렇게 차 옆에 기대서서 담배 한대를 다 피우고 나서야 나는 장례식장의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 핸드폰으로 박 동석을 불러낼 참이었다. 박 동석을 통해 빈소 안의 상황을 파악해보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장례식장의 커다란 유리문 입구에 거의 다 다가갔을 즈음 시야가 확 밝아졌다. 입구 근처, 나와 반대편 쪽에 서 있던 한 고급승용차가 헤드라이트를 갑자기 밝히고 스르르 굴러오는 게 보였고 동시에 입구에서 키가 훌쩍 크고 건장한 체격의 한 중년신사와 그 뒤에 한걸음 쯤 떨어져 뒤따라 나오는 박 동석이 순간 시야에 잡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옆에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 뒤로 몸을 슬쩍 숨겼다.
박 동석의 배웅을 받으며 나온 그 중년신사는 승용차 기사가 급히 내려 열어준 차 뒷문 안으로 그 육중해 보이는 체격의 몸을 이내 실었다.
잠깐 사이였지만 나는 그가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저 치가 여기 어떻게...?!’
나는 나도 모르게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여기, 민주의 빈소에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원외(院外)로 밀려나 있지만 2선의 국회의원 경력에 굵직한 국영기업체 사장을 역임한, 지금도 가끔씩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한때 정치계의 중진 인사였고 민주가 스물 대여섯 무렵부터 수 삼년간 그녀를 정부(情婦)로 거느렸던 김 두수였다. 물론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그가 유명인사이다 보니 나는 그를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가 탄 차는 이내 스르르 방향을 바꿔 굴러가 장례식장을 벗어나 사라져 갔다.
마치 자신의 상사에게라도 하듯 차가 떠날 때 허리를 넙죽 굽혀 극진한 예를 표했던 박 동석은 그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입구 앞에 서서 그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 치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하고 내가 나무 뒤에 숨겼던 몸을 드러내고 나서며 박 동석을 향해 툭 말을 던졌다.
“아, 오셨군요.”
박 동석은 금방 나를 알아보고 걸어오는 내게 마주 다가왔다.
“아까 그 분도 민주를 꽤나 사랑했었던 분 아닙니까... 제가 아까 저녁에 연락을 드렸어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하고 미처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는 마치 자기가 상주(喪主)나 된 것처럼 두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맞잡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 흑흑...민주 그년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을 줄이야...흐흐흑!”
나는 격하게 흐느끼며 들먹거리는 그의 어깨를 어정쩡하게 감싸 안아 줄 수밖에 없었고 그의 황당한 이런 행동에 잠시 어이가 없어졌다.
그러나 이내 이 사람, 박 동석이야말로 민주를 진정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10년여가 넘게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오매불망 사랑을 호소했지만 막상 그녀에겐 제대로 된 사랑의 눈길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그가 종내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고 그녀를 사랑했던 다른 남자들을 불러 모아준다는 게 말이다.
어찌 보면 해괴하기까지 한 그 상황에 솔직히 나는 상당히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민주’ - 지난 1년 여간 나를 미치게 했고 20여년 가까운 내 결혼생활을 파경으로, 내 인생 전부를 엉망으로 흩으려 놓은 여자... 그녀는 세상을 뜨면서까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내가 그녀로 인해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질곡은 그녀를 사랑했던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다.
나이 40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 아직 결혼도 안한 채 그녀의 주변을 하염없이 맴돌며 인생을 망가뜨려 온 박 동석은 물론이려니와 그녀를 사랑했던 탓으로 그녀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살인범이 되어 아마도 나머지 인생의 대부분을 차가운 감방 안에 갇혀 죄수의 몸으로 살아야 할 아직 서른한 살 창창한 나이의 정 명호...
그리고 내게서 갑자기 행방을 감춘 그녀를 찾는 과정 중에 일본에 까지 가서 만났던 ‘코바야시’라는 70 노인의 그녀로 인한 파국과 절망... 거기다 그녀와의 스캔들로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입어 벌써 수년 째 원외에 머물러 있는 정치인 김 두수까지...!
나는 결국 그날 밤 그녀의 빈소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장례식장에 주차시킨 차 안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화장터로 떠나는 운구차를 박 동석을 내 차에 태우고 따라가 그녀가 파란 많은 이승의 생을 접고 한줌 재로 화하는 자리를 눈물을 감추며 지켜봤다.
그날 처음 본 환갑이 좀 넘은 그녀의 모친과 30대 중반의 남동생에게는 끝내 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녀보다 원래 열세 살이나 많았던 데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로 인해 겪은 격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그나마 본 나이보다도 몇 년은 훨씬 더 늙어 보일 추레한 모습으로 ‘내가 당신 딸, 당신 누나를 사랑했던 사람이오.’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