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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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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BY 한상군 2005-12-25

                                                  

 

 


  
   수희가 꽃집을 개업한 것은 남편과 헤어진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였다. 그녀는 허구헌날 집안에 틀어박혀 슬픔을 반추하며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이제 생활을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혼 후 수희는 꼬박 한 달 가량을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지냈다.  그 무렵 친구들이 기분전환이라도 시켜줄테니 밖으로 나오라고 해도 수희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녀는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쌀이며 반찬거리마저도 구입하는 게 귀찮아 그냥 라면 부스러기를 삶아 먹으며 되는대로 지냈다. 그런 수희를 여동생인 연희가 자주 들여다보았고, 친구들도 틈 나는대로 찾아와 먹을 것을 챙겨주곤 했다.  
   버림 받은 여자는 괴로운 법이었다.  더구나 아무 잘못도 없이, 변덕스런 애가 갖고놀던 손때 묻은 인형처럼 어느날 갑자기 집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여자는 더욱 고통스럽기 마련이었다.
   수희는 전남편을 원망했다. 시부모도 저주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속이 후련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전남편을 원망하고 시집식구들을 저주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피해의식이 가중돼 그녀는 매번 괴로운 번민 속으로 빠져들곤 했던 것이다.
   때로는 끓어오르는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충동에 부들부들 몸을 떤 적도 있었다.  아마도 독한 여자라면 비수를 한 자루 품고 그 살의를 실행에 옮겼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희는 그 비수를 거꾸로 쥐고 자신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으로 돌리고,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수희는 천성적으로 마음이 모질지를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악한 마음을 먹고 누구를 해치려 구체적으로 모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혼 할 당시 아들의 양육과 자신의 위자료 문제로 시집 식구들과 까탈스럽게 다투지 않은 것도 모두 그녀의 착한 성품 탓이었다.
   그런 실의의 생활이 한 달쯤 경과했을 때 수희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먼저 바다가 보고 싶었다.  일망무제로 탁 트인 바다를 보면 그 동안 쌓인 시름과 온갖 괴로움이 시원하게 싹 가셔질 것만 같았다. 그해의 6월 마지막 날, 그래서 수희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곧장 속초로 갔다.

   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잊혀진 추억처럼 푸른 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속초에 도착해 어느 한적한 해변에서 바다를 보게 되었을 때, 그러나 수희는 까닭없이 눈물이 솟구쳐 모랫벌에 쓰러져 흐느껴울었다.
   바다는, 하염없이 밀려왔다가 흰 포말을 남기며 물러나는 파도는 왠지 쓸쓸하고 적적해서 마치 텅 빈 극장에서 혼자 추억 어린 옛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서럽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날은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녀는 여고시절에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속초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전남편을 처음 만나서 데이트 할 때 그와 더불어 수 차례 놀러온 적도 있었다.  불과 재작년 여름에만 하드래도 귀여운 아들을 데리고 피서차 그곳을 찾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젠 혼자인 것이다. 곁에 아무도 없고, 오로지 그녀 홀로 지난 날의 그 바닷가, 그 모랫벌에 외롭게 쓰러져 있는 것이다.
   수희는 속초에 도착한 뒤 정처없이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속초에서 동해로, 동해에서 삼척으로 계속 바다를 낀 채 아래로 내려갔다.  낯선 어촌을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면 모텔에 투숙해 잠을 청했고, 또 다시 날이 밝으면 툭툭 털고 일어나 바닷가를 헤매돌아다녔다.
   바다는 그녀에게 위안을 주었다. 드넓은 대자연은 인간을 티끌처럼 왜소하게 만들어,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하찮게 묵살해버렸다.
   수희는 바다가 되고자 했다.  장엄한 대자연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 일부분으로 용해되었으면 싶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무수히 명멸하는 별을 보게 되면 그 별들 중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시원한 해풍이 불어와 온몸을 애무하면 또 그 바람이 돼 무심히 살고 싶었다.
   뒤를 돌아보지 말자. 그저 앞만 내다보며 살자. 슬프고 괴로울 때면 아예 무의식 속으로 빠져버리자. 모든 슬픔과 번뇌가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할 순 없는 일이니, 그저 바보처럼 하루 세 끼 주린 배를 채우는 데 충실하다보면 어언 세월은 흘러 그 슬프고 괴롭던 일들은 모두 다 아득한 옛일로 잊혀지리니.....
   수희는 해안도로를 따라 포항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울산과 부산을 거쳐 서울로 되돌아왔다. 집을 떠난 지 꼬박 일주일 째 되는 날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수희는 직장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일간신문과 생활정보지를 뒤적거리고, 하다못해 길바닥에 널린 직업소개소도 용기있게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여자가 정직하게 땀 흘려 할 만한 일은 파출부나 식당의 찬모 정도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모두 사기성이 농후한 직업이거나 여자를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는 일들 뿐이었다. 
   어떤 소개소에선 수희에게 룸싸롱 마담 자리를 적극 권하기도 했는데, 그녀 정도의 용모라면 강남의 최고급 룸싸롱에 아주 좋은 조건으로 취직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희는 절망했다. 무자비한 현실 앞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값싸게 취급되는가를 피부로 절감했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이 세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너무나 두려워서 갑자기 이 험악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런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무렵 연희가 넌즈시 조언을 건넸다.

   [언니, 차라리 장사나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장사라고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여러 날 고심 끝에 수희는 동생 말대로 장사를 해보리라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위자료 중에서 아파트를 한 채 얻고 난 나머지 돈으로 꽃집을 하나 차렸다.  그게 <로즈가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