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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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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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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인


BY 한상군 2005-12-16

                                                           

 

 

 

  

   [어디 가?]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여동생인 연희였다.
  
   [네 형부 좀 만나려고.]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구?]
   [무슨 말이든.]

 

   연희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언니는 참 바보야.  처음 반포에서 형부를 발견했을 때 내가 경찰관이라도 대동하고 쳐들어가라고 했었잖아.  그랬으면 지금쯤 형부 쪽에서 먼저 용서해달라고 애걸복걸했을 거 아냐.  그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나서 이제 뭘 어쩌려고 그래?]
   [.....]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아 수희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사실 연희는 제 형부가 바람 피웠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일간신문사 사회부 기자답게 일단 그의 부정행위를 밝힐 수 있는 물증부터 확보하라고 충고했었다.  그래야만 합의이혼을 하든 다시 원만한 부부관계를 회복하든 좋은 조건에서 흥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성이 영악하지 못했던 수희는 여동생의 그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형부가 집에 발길을 끊은 지 얼마나 돼?]
   [두 달쯤 될 거야.]

   수희는 마치 남의 얘기 하듯 대답했다.

   [시집에서 현이도 데려갔다면서?  그래서 지금 그 먼 평창동에서 강남까지 통학시킨다면서?]
   [그래.]

 

   연희는 다시 말을 끊었다.  치밀어오르는 노여움을 억제하는 듯했다.  잠시 후 연희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언니, 그냥 차 돌려.  그리고 집에 가서 얌전히 기다리라구.  내 생각엔 언니가 지금 형부를 만나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을 거 같아.  이건 시간 싸움이야.  먼저 지치는 쪽이 패배하는 거라구.  그 사람들은 언니가 제풀에 지치길 바라는 지도 몰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하나만 물어볼게.  만일 언니, 언니가 형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그러면 어떡할 거야?]  
   [글쎄.]

 

   수희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하자 연희는 더 이상 힐난하지 않았다.  그녀도 자기 언니의 성격이 순수하고 깨끗한 반면에, 어떤 인간관계든 한 번 어긋나면 자잘한 이해를 떠나 칼로 두부 모 자르 듯하는 무서운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잘 생각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현명한 처신을 하길 바래.]

 

   여동생과의 통화는 곧 끝났다.  수희는 휴대폰을 접자마자 다시 차를 출발시켜 명동에 있는 남편의 회사로 찾아갔다.

 

 

   두 달 넘어 남편을 다시 만난 곳은 명동의 한 일식집이었다.  남성균은 다다미 방에 좌정하고 앉자마자 뒤 따라온 여종업원에게 모듬회 한 접시와 정종 한 병을 주문했다.  그는 한눈에도 혈색이 좋아 보였다.  수희는 심사가 튀틀리기 시작했다. 

 

   [잘 있었어?]

 

   여종업원이 사라지고 난 뒤 수희와 단 둘이 남게 되자 남편은 침묵이 어색한 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자기 아내를 똑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수희는 아무 말 없이 담배 피우는 그의 모습을 원망스런 눈길로 바라보기만 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지만 말고.]
   [무슨 말을 할까요?]

 

   어느새 수희의 두 눈은 젖어 있었다.  그렁그렁 고인 눈물은 이내 두 빰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는데. 눈물이나 질질 짜려고 남편을 불러낸 것은 아니었는데.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수희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여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올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식탁 위에 정종이 놓여지자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켰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넥타이마저 느슨하게 풀어놓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안해.]

 

   탁, 하고 테이블 위에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그가 탄식조로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그까짓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로 그 동안 아내가 겪어온 절망감과 괴로움을 모두 보상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남편은 긴 나무젓가락으로 회 몇 점을 집어 입안에 넣고선 우물우물 씹었다.  수희는 그 모습이 한없이 밉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무슨 얘기야?]
   [나도 지쳤어요. 이젠 당신이 원하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싶어요. 당신은 내가 이혼해주기를 바라는 건가요?]

 

   잠깐이었지만 남성균은 정색을 하고 수희의 표정을 살폈다.  진지했다.  하지만 그는 곧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수희야, 넌 내 아내야.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단지 시간을 좀 달라는 것 뿐이야.  내겐 지금 시간이 필요해.]

 

   어쩌면 남편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얘기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고독과 초조감에 떨며 불확실한 내일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수희는 두 여자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는 남편이 뻔뻔스럽게만 느껴졌다.

 

   [우리 이혼해요.]

 

   과연 이게 수희의 입에서 나온 말일까.  하지만 분명 그녀의 입에서 나온 얘기였다.  많은 여자들은 남편 때문에 속을 썩게 됐을 때 종종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이혼하자고.  당신과는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으니 우리 깨끗이 갈라서자.  하지만 그런 최후의 통첩을 보내는 아내들 중에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진심이야?]
   [그래요. 진심이에요. 우리 이혼해요.]
  
   남성균은 그러나 쉽사리 수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수희는 상대가 반신반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곧 자기가 내뱉은 말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대신 현이는 내가 키울 거에요.]

 

   무심코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려던 남편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현이는 당신 아들이 분명하지만 또한 제 아들이기도 해요.  내가 돌보고 내 손으로 키워야 할 내 자식이란 말에요.  엄마가 두 눈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째서 내 아이를 평창동에서 데려간 거죠?]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애는 우리 집안의 삼 대 독자야. 자손 귀한 집안에서 할아버지가 손자놈 데려다가 잠시 돌보는 것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분명 잠시 뿐인가요?]

 

   그 순간 남성균은 답변을 못했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수희는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한 가닥 믿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가 송두리채 빠져달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허, 나 원.....당신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왜 매사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는 거요?]
   [그 애는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에요.  가까운 집을 놔두고 왜 그 먼 곳에서 통학을 하는 지 난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내가 알기로는 현이가 학교 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두 분이 자상하게 신경을 쓰고 계신 것 같던데.....]

 

   시부모댁에는 자가용이 두 대나 있었다.  모두 독일산 S클래스의 최고급 승용차였다.  시어머니는 그 무렵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으로 현이를 매일 강남으로 통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수희는 남편이 평창동에 아들을 맡긴 채 그냥 방치해두고 있는 그 저의가 무엇인지 따지고 싶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아예 처음부터 이혼을 전제로 모자지간의 정을 끊어놓기 위해 어린 아들을 데려간 게 아니냐고 힐난하고 싶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아 이 얼마나 저열한 작태란 말인가.

 

   [한 가지 분명히 해두겠는데, 현이만큼은 내 마음대로할 수가 없어.]

 

   남편은 잔 하나 가득 넘치던 술을 입안에 털어넣더니 탄식하듯 말했다. 

 

   [설사 우리가 헤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현이를 당신에게 줄 수가 없단 말이야. 내 말 알겠어? 나도 현이가 엄마를 찾을 때면 가슴이 아프지. 그래서 현이 곁에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현이를 놓아주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그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단 말이야.]

 

   갑자기 수희는 남편의 교묘한 언행이 악랄하게 느껴졌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자기 가슴 속을 마구 저며놓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 마주앉아 있던 남편의 혈색 좋은 얼굴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나쁜 놈!]

 

   다시 한 번 수희가 오른손을 치켜들었을 때 남편은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꽉 틀어쥐며 말했다.
 
   [함부로 손바닥 휘두르지 말아. 당신에겐 죽도록 미운 사람일지 몰라도, 또 다른 여자에겐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말야.]

 

   그리고 남성균은 수희의 손목을 확 뿌리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술병이 쓰러져 테이블 위를 구르다가 방바닥에 뚝 떨어졌다.  남편이 먹다 남긴 술은 그녀가 신고 있던 스타킹을 펑 적시고 베이지색 원피스 자락에도 흉한 얼룩을 남겨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