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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7/ 그녀를 찾아 나서다(1)


BY 盧哥而 2005-09-19

 

그녀를 찾아 나서다 (1)




그날 아침에도 나는 거실의 소파에서 잠이 깼다.

벽시계의 바늘들이 아직 6시에 가 닿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빠개지는 듯 아팠고 심한 갈증으로 입안이 메말라 목구멍까지 부은 듯 뻑뻑했다.

나는 겨우 일어나 냉장고에서 식수통을 꺼내 컵에 따르지도 않고 마개만 딴 채 통째로 입 안에 들이부었다.

두어 컵은 충분히 될 만큼의 냉수를 마시고서야 정신이 좀 드는 듯 했다.

나는 민주가 행방을 감춘 날부터 매일 술을 마셨고, 아니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고 그 바람에 나의 잠자리는 그 며칠 당연히 거실 소파에서였다.

나는 담요를 들추고 다시 소파 위에 누워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마 30분 후 정도면 찬희의 아침준비를 해주려 아내가 깨어날 것이다. 그전에 서둘러 출근을 해버릴까 말까하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


아내의 나에 대한 태도가 뭔지 모르게 냉냉하다고 느껴진 건 열흘 전 쯤 아내가 베이커리 본사에서 실시한다는 2박 3일 간의 마케팅 연수교육을 다녀오기 전후였다고 생각된다. 그때 내가 얼핏 듣기로 그 연수교육은 맏언니가 다녀오는 것으로 이미 결정해 놓고 있었던 것인데 출발일 하루 전엔가 아내가 갑자기 나서 자기가 다녀오는 것으로 하자고 부랴부랴 계획을 바꾼 것으로 기억된다. 어차피 이번 여름엔 가족끼리 피서여행이 없으니 자기가 피서여행 삼아 다녀오겠다고 우기며...

사실 그렇게 변덕스러운 행동은 평소 아내답지 않은 일인데 나는 민주에게 정신을 팔고 있느라 미처 아내의 그런 엉뚱한 행동과 표정에 나타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간 아내가 내게 갑자기 냉냉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게 그 무렵부터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아내와 단 한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 민주의 집으로 매일 점심을 먹으러 다니면서부터니까 얼추 2개월여가 가까운 그 기간동안...

그동안 아내가 보약을 지어줘 그걸 먹는 동안, 그 한달 정도의 금지기간을 제외해도 우리 부부가 그 만큼의 긴 기간동안 섹스를 하지 않았던 때는 아직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그런 일 때문에 아내가 삐쳐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내가 아는 한 그런 정도로 단순한 여자는 아니었다.

아내는 분명 내 신상에 뭔가 달라진 일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여자였고 또 우리들의 부부생활이 그동안 서로에게 숨길 것이 없는, 설사 아닌 것처럼 숨기려 해도 막말로 한 까풀만 벗겨보면 서로의 속내가 엑스레이에 찍힌 듯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그런 사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민주와 그예 일을 벌이고 민주와의 이중생활을 대담하게 시작한 것은  오히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빠져나갈 틈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결혼 후 아직 단 한번도 여자문제로 아내에게 신경 쓰이게 한 일이 없는 내 전력을 최대한 활용할 셈이었던 것이다.

민주와 내가 같이 있는 현장을 잡히거나 하는 최악의 경우가 아니고 단지 아내가 본능적으로 그 어떤 막연한 낌새를 알아챈다거나 나의 어떤 조그만 실수로 약간의 꼬투리가 잡히는 상황 정도라면 나는 그동안 아내의 나에 대한 믿음을 이용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민주가 행방을 감추는 일만 아니었으면 아내의 뭔가 내게 냉냉해진 심사가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곧 대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였었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겠지만 나는 그만큼 아내의 나에 대한 믿음에 자신이 있었고 최근 들어 아내의 냉냉한 태도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우려까지는 하지 않고 있었던 셈이었다.

사실, 그즈음 민주와 매일 치루는 섹스에서도 나는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그동안 민주만 보면 끓어오르는 육정을 참지 못해 마치 며칠을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들 듯이 민주의 육체를 탐했던 나는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제 어느 정도 나와 보조를 맞출  수도 있게 된 민주와 차츰 양보다 질을 염두에 둔 섹스로 넘어가는 단계에 도달해가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이제야 민주에게 조금 익숙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가 양품점을 완전히 인수하여 장사를 시작하게 되면 일단 한시름 놓고 그때부터 민주와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한편 그 만큼 아내에게 부족했던 신경을 더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갑자기 민주가 행방불명되는, 그야말로 돌발 상황이 터지는 바람에 나의 그런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아내에게 ‘이 사람 뭔가 확실히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분명하게 주고 있다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강구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래선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밤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민주의 그 말 못할 사정과 알 수 없는 행방에 대해서만 모든 신경을 칼날같이 세우고 고통스럽게 집중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결국 아내와 얼굴을 맞대는 것을 피하기로 하고 지금 바로 일어나 출근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도저히 아내의 얼굴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그때의 내 심정이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덮었던 담요를 소파 위에 개어두고 대강 세면을 한 다음 최대한 소리를 적게 내 현관문을 열고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사무실로 가는 택시 안에서, 달리는 차창 밖으로 아직 휑하니 비어있는 새벽의 거리 풍경을 넋 없이 바라보다 내가 자꾸 한심해져 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이러다 민주도 놓치고 아내와 아이들, 결국 가정마저 다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상상을 나도 모르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아니야.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아. 지금 잠깐 고비를 맞은 거야. 무슨 일에나 거기 합당한 댓가는 치루는 게 세상의 이치잖아. 나는 민주라는 보배를 얻기 위해 지금 좀 더 힘든 댓가를 치루는 것일 뿐...곧 다 잘 풀릴 거야...’ 하고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시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오후에 민주에게 인수시키려 한 양품점의 주인 여자와 전화통화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민주의 가게 ‘칸타타’를 넘겨받은 동생뻘 된다는 여자를 찾아봐야겠다고 머릿속으로 그날의 일정을 짜고 있었다.

양품점의 주인여자를 직접 찾아가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 한 쪽이 켕기는 일이라 그냥 전화만으로, 혹시라도 민주가 찾아왔었다든 지하여 가게 인수계약의 파기에 관한 어떤 언질이 있었는가에 대해 알아본 후 사정이 생겨 가게를 인수하지 못한다고 알려야 했다. 그럴 경우 나는 당연히 계약금으로 걸어두었던 5백만 원을 포기하는 입장이 돼야 했고...

또한 ‘칸타타’를 인수했다는 여자에게서는 민주에 대한, 내가 아직 모르는 민주의 이야기들을 물어 민주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조그만 단서라도 찾게 되지 않을 까싶은 희망이 있어서였다.


나는 택시를 사무실 근처 사우나 앞에 세우게 했다.

아무도 출근해 있지 않을 그 시간에 사무실에 혼자 처량하게 있는 것도 그렇고 요즘 연속으로 과음하고 있는 내 몸의 컨디션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워 뜨거운 물에 한참동안 몸을 담그고 있고 싶어서였다.

사우나에서 두어 시간 남짓 몸을 추스른 다음 해장국으로 아침까지 든든히 해결하고 사무실로 출근하니 그런대로 기력도 좀 회복되는 것 같고 머리 속도 한결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정리가 드는 느낌이었다.

그날 오전은 며칠 만에 사무실 일을 제대로 챙겨보았다.

내가 사무실을 비우거나 딴 생각에 몰두해 있는 동안에도 업무는 별다른 차질이 없이 잘 진행 돼가고 있었다.

단지 아내 못지않게 내 일거수일투족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영미가 요 며칠간의 내 태도에 좀 석연찮아 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릴 뿐...

나는 업무를 보는 동안 문득, ‘칸타타’를 인수받은 그 여자에게서 어쩌면 전의 그 남자, 민주의 가게를 찾아 와 행패를 부렸던 그 남자에 대해 뭔가 정보가 될만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일 그 여자가 그 남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입장이라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게 좋을까 하는 궁리도 필요했다. 그녀로서는 내가 생소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오전 일과가 끝난 다음 나는 사무실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가 좀 한적한 식당을 찾아 방이 따로 있는 일식집을 찾아 들어갔다.

점심을 때운 후, 어쩌면 좀 길어질지도 모를 양품점 주인여자와 전화통화를 의식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