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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5/ 그녀가 사라지다 (2)


BY 盧哥而 2005-09-15

 

그녀가 사라지다 (2)




숨이 턱턱 막히게 무더웠던 여름도 끝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엔 우리 가족끼리의 피서여행이 없었다.

다문 하루 이틀 만이라도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한번도 걸러 본 적이 없이 다녀왔던 피서여행이었는데 올해엔 이상하게 서로의 스케쥴이 맞지 않았다.

찬우 녀석은 어학연수를 한답시고 방학기간을 거의 호주에 가 있다 바로 엊그제 돌아왔고  고3 수험생인 찬희는 방학 동안 내내 학교 보충수업이네 학원특강이네 해서 거의 쉬는 날이 없다시피 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마트의 베이커리 매장을 비울 틈이 없다가 지난 주 겨우 3일간 쉴 수 있는 기회를  베이커리 본사에서 실시하는 2박3일 간의 마케팅 연수교육에 참가하고 온다며 경기도 어느 유명한 산에 있는 콘도의 교육장을 다녀 온 것으로 휴가를 때웠다.

그 바람에, 우리 사무실 직원들에겐 돌아가며 각자 4일간의 휴가를 쓰게 했지만 나는 굳이 휴가를 쓸 일이 없어 한 여름 내내 매일 출근을 했다.

하긴, 나는 휴가철 직전에 이미 민주와 달콤한 캠핑을 2박3일간 다녀왔으니 달리 억울할 일도 아닌 셈이었다.


민주는 매일 나와 점심과 섹스를 맛있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나누곤 오후와 저녁시간엔 양품점에 나가 장사요령을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즈음 나의 하루하루는 뜨거운 날씨만 빼고는 매일 즐겁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나날이었다.

처음엔 자신이 그 양품점 장사를 잘할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을 하는듯했던 민주가 매일 양품점에 나가 그 주인여자로부터 장사요령을 전수받으며 점점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는 듯 표정이 하루가 다르게 생기 있게 바뀌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적잖은 즐거움이었고 또 그런 자신감에 비례하는 듯 조금씩이나마 점차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섹스에 대한 태도를 온몸으로 감지하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특히 내가 체위를 조금이라도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하면 금세 열기를 식히며 어색한 듯 거북해했던 그녀가 이젠 자신이 내 위에 올라타 주도적으로 섹스를 이끌어야 하는 기마자세까지도 과히 마다하지 않고 내 뜻에 따라줄 때, 나는 묘한 성취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것은 아마 모든 남자들이 여자에게 갖는 정복욕구 중 아주 중요한 한가지였을 것이다. 이를테면 여자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길들인 다는 차원의...


양품점을 인수할 날이 일주일 쯤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민주를 통해 물품대금으로 치러야 할 최종금액을 확인했고 사무실의 운영자금에서 빼내 충당하려고 했던 금액을 미리 뽑아 내 예금계좌에 합쳐두었다.

양품점에는 계약금으로 5백만 원을 걸어두었고 인계인수 기간이 한달 남짓 짧은 관계로 중도금 없이 가게를 인수하는 날 나머지 4천만 원이 좀 넘는 금액을 모두 잔금으로 치루는 것으로 해두었었다.

그날, 그러니까 내 개인 예금으로 부족한 부분의 금액을 사무실의 운영자금 중에서 빼내 내 예금 계좌에 이체시켜두고 점심시간에 맞춰 민주의 집으로 간 나는 좀 뜻밖의 일을 만났다.

민주의 집에 도착해 출입문의 벨을 여러 번 눌렀는데도 안에서 기척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민주가 잠깐 외출이라도 했나 싶어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려고 내 핸드폰을 꺼내들다 출입문 틈에 끼워진,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아주 작게 접힌 메모지를 발견했다.

나는 그 메모지를 문틈에서 빼냈다.

메모지는 작은 수첩에서 한 장을 찢어낸 것이었고 거기 급하게 쓴 민주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갑자기 일이 좀 생겼어요. 며칠 걸릴 거 에요. 핸드폰 안 될 지도 몰라요. 제가 연락드릴 때까지 집에 오지 마세요...민주’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길래 내게 전화연락도 미리 못할 정도로 급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잠시 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추리를 해보아도 나로서는 좀체 무슨 일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아마 강릉의 어머니나 동생네 집에 뭔가 급한 일이 생겼을 거라는 추측을 결론으로 내리고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민주의 집을 드나들면서 그동안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는 일이 거의 없었던 나는 과히 시장기도 느껴지지 않아 점심을 거른 채 내가 늘 비웠던 시간만큼을 사무실 근처에 있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보냈다.

아니, 겉으로는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으나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 민주에 대한 생각들로 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강릉의 동생네 집에서 일어난 급한 일이라면, 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거나 갑자기 무슨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핸드폰이 통화가 안 될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메모 글 중의 한 구절... 그러니까 나와 전화통화하기에 뭔가 곤란한 그런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추측 때문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생각난, 민주의 가게에서 행패를 부렸던 그 남자가 느닷없이 다시 나타나 어떤 해꼬지를 하려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어 나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늘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혹시나 싶어 내게 온 전화가 없었느냐고 영미에게 물었다.

특별한 전화는 없었노라고 영미는 무심히 대답했다.

그날 오후 내내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시간을 때웠다.

퇴근하면서 다시 민주의 집엘 들러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아무래도 실없는 짓 같아 나는 그냥 집으로 가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찬호 녀석도 아직 귀가 전이었고 왠지 집안이 썰렁한 게 붙어있고 싶지 않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내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아파트 단지 내의 손바닥만한 공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도저히 마음이 안정이 안돼 근처 상가의 호프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호프집의 텅 빈 홀 안에 나 혼자 손님으로 앉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핸드폰을 아예 탁자 위에 올려놓고 혹시나 싶어 민주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핸드폰은 그저 무심한 채 그 자리에 얌전히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맥주를 몇 잔이나 비우고서야 날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3천 시시의 맥주를 마셨는데도 취기는 전혀 오르지 않은 채 배만 불렀다. 나는 심부름하는 여자애에게 맥주 한잔을 더 주문하며 따로 소주 한 병을 청했다.

맥주를 반쯤 남긴 잔에 소주를 부어 넣어 마시는, 몸에 축이 덜 가게하면서 빨리 취하고 싶을 때 쓰는 내 나름의 음주 방법이었다.

그렇게 해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셔 그제야 취기가 얼큰히 오른다고 느낄 즈음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번개같이 핸드폰을 들어 밝게 불이 들어 온 창에 뜬 번호를 보았다. 아내의 핸드폰 번호였다.

나는 실망해서 한참이나 신호가 더 울린 다음 마지못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에요? 집 전화 안받던데...’

아내의 음성이 평소 같지 않게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들렸다.

‘아파트 근처...’

나 역시 딱딱하게 대꾸했다.

‘술 마셔요?’

아내가 다시 딱딱하게 물었다.

‘응.’

‘알았어요.’

하고 아내는 화난 듯 딸깍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날 점심도 거른 채의 빈속에 변변한 안주 없이 아니, 몇 천 시시의 맥주를 안주삼아 소주를 두병이나 마시고 몇 시쯤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 채 집에 돌아 와 술 취하면 늘 그렇게 하듯 거실 소파에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땐 벌써 열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아내는 그날따라 일찍 매장에 나갔는지 집엔 아무도 없었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시려고 소파에서 일어나다 보니 탁자에 아내가 남겨둔 메모지 하나가 썰렁하게 놓여져 있었다.

‘냉장고에서 알아서 챙겨 들어요.’라고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