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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3/ 그녀가 행복해 하다 (3)


BY 盧哥而 2005-09-12

 

그녀가 행복해 하다 (3)




마치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들떠있는 민주를 옆자리에 태우고 달리는 아침의 서해안고속도로는 상쾌했다.

평일에다 아직 아이들 방학 시즌 전인 고속도로는 제 속도를 충분히 낼 만큼 한가로웠다.

챙이 큰 썬캡에 옅은 갈색의 선글라스까지 챙겨 쓴 민주는 평소와 아주 다른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민주는 어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캠핑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었다고 했다.

나는 텐트를 비롯한 캠핑 장비는 내가 다 챙길 테니 서너 끼 정도 밥 해먹을 쌀과 몇 가지 밑반찬 그리고 기본양념 준비만 해두라고 일렀었는데 민주는 내가 어제 저녁에 사다 준 그래도 꽤 큰 야외용 아이스박스에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밑반찬들과 양념한 고기들 그리고 여러 가지 야채와 과일들까지 이것저것 많이도 준비를 한 것이었다.

나는 집에 있는 승용차나 사무실에 있는 지프를 쓰는 게 아무래도 꺼림칙해 승용차를 한대 따로 렌트해 쓰기로 했고, 아이들 때문에 벌써 오래 전부터 준비해두고 사용해 온 자잘한 용구까지 일습으로 돼 있는 텐트를 비롯한 완벽한 캠핑 장비가 있었지만 출장을 간다는 핑계를 댄 마당에 그걸 끄집어 내 올 수도 없는 입장이라 어제 저녁 퇴근하면서 바로 남대문 시장에 들러 캠핑장비 일습을 새로 장만해 민주의 집에 미리 갖다 두었었다.


나는 아침에 아내가 준비해 준 양말과 속옷가지들을 얇게 접어 노트북 컴퓨터와 그 부속 장비들과 함께 조금 큰 서류가방에 챙겨 넣고 가벼운 캐주얼 차림으로 평소의 출근시간에 맞춰 집을 나왔다.

그동안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사무실의 일 때문에 지방으로 2, 3일 씩 출장을 다닌 전례가 있어 아내는 전혀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고 저녁에 혹시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많이 마시지 말고 전화 한번씩은 꼭 해주라는 당부만 했을 뿐이었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고 했던가? 나는 집을 나오면서 민주를 만난 이후 아내에게 하는 거짓말이 점점 더 천연덕스러워진다는 것에 또 한번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사무실엔 어제 저녁 퇴근하기 전 영미를 비롯한 업무별 담당자마다에게 내가 없는 3일 동안의 상세한 업무지시를 내려둔 터라 나는 바로 렌트카 업소에 들러 예약해 두었던 차를 받아 민주의 집으로 곧장 갔다.


나는 또 아침에 내가 입고 나갈 옷을 고르면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었다.

그동안 내가 민주를 만날 때는 내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대와 장소였지만 이번 2박 3일 동안 민주와의 캠핑에서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와 내가 15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삼 의식되면서 남들의 눈에 혹시라도 ‘불륜’의 커플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에게 눈치를 채이지 않게 조심하며 나는 옷장에서 그런대로 좀 젊어 보일 수 있는 옷을 고르느라 뒤적여 봤지만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 골라 입은 게 아내가 사둔 지는 벌써 몇 년이 지났으나 바탕색이 원색계열이라 입기 쑥스러워 그동안 거의 안 입었던 티셔츠와 주머니가 여러 개 있고 이런 저런 장식이 많이 달려 애들 옷 같은 걸 사왔다고 아내에게 핀잔까지 주었던, 역시 잘 안 입던 점퍼를 꺼내 입었다.

그렇게 차려 입은 나를 본 아내는 내게 오히려 반색을 했다.

‘역시 내가 옷 고르는 안목이 있어. 진작 좀 그렇게 입고 다니지. 봐, 당신 한 십년은 젊어 보인다. 안 그래?’

아내는 옷장 문짝을 다시 열어 거기 붙은 큰 거울에 나를 앞뒤로 돌려 세워 비춰 보여주며 자기 일처럼 흡족해 했다.

그때 내 마음 속은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가득 차있을 수밖에 없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어색한 쓴웃음으로 일그러져 있었건만 아내는 내가 평소 안 입던 옷을 입어 어색해 하는 줄만 알고 천진하게 웃으며

‘괜찮아.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 멋있기만 한데 왜 그래...’

하고 나를 얼러 추듯 말해 주었다.

나는 민주와의 만남 이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스러움을 느낄 때마다 혼자 속으로 탄식하며 하는 말이 된 ‘내가 죽일 놈이지...!’를 그때 역시 입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민주의 집에서 출발한지 불과 두 시간 반 남짓 만에 도착한 곳은 한 3년 전 쯤 사무실 직원들 모두와 1박2일로 놀러 왔었던 대천 해수욕장 근처의 이름도 없는 조그만 해수욕장이었다.

텐트를 치기 좋은 소나무 숲이 있지만 모래사장이 작아 겨우 1, 2백 명 정도면 아마 꽉 차 보일 듯한 작고 아담한 그런 해변이 있는 곳이었다.

그때 직원들 중 누군가가 언젠가 가봤었다고 하며 피서객들이 적어 번잡하지 않아 우리 직원들끼리 오붓하게 놀기에 딱 좋은 곳이라며 길잡이를 했었는데, 그때가 한창 피서철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과연 한적하고 우리 직원들 10여 명이 정말 오붓하게 놀기 좋은 곳이었었다.

내가 민주와 캠핑장소로 그곳을 택한 것은 번잡한 곳이 아니라는 점도 있었지만 직원들과 놀러 왔을 때 저녁에 보았던 낙조가 특히 아름다웠다고 느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 해변에서 보이는 바다는 긴 수평선을 가진 일반적인 해수욕장의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작은 바위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평선과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풍경이었는데, 지는 해가 그 바위섬들의 틈으로 떨어지다 수평선 아래로 넘어가는 한 시간 가까운 동안의 그 낙조의 아름다움이 그때 내겐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이었다.


그 해수욕장을 찾아들어가는 협소한 마을길의 곳곳엔 이미 해수욕장의 개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지만 막상 도착한 해수욕장엔 내 생각대로 그나마 몇 개 안되는 상점 중 아직 구멍가게 수준의 가게 두어 개만 달랑 문을 열고 있을 뿐이었고 좀 빠른 종강을 한 대학생들인 듯해 보이는 몇 그룹의 젊은애들이 뚝뚝 떨어져 텐트를 쳐놓고 있는 정도였다.

우리도 역시 다른 텐트들과 상당한 이격 거리를 두고 큰 소나무 아래 차를 파킹시키고 그 옆으로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는 나를 도와주는 민주의 얼굴엔 몹시 흥분해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민주는 텐트의 각 부분 명칭과 쓰임새를 잘 몰라 나를 도와주는 동안 얼떨떨해 하면서도 나를 잘 도와줬고 텐트 치기가 끝난 다음 취사를 할 수 있게 버너 설치 등 이런 저런 준비를 내가 대강 해주자 그녀는 이제 자기가 알아서 식사 준비를 할 테니 나보고 텐트 안에 들어가 쉬고 있으라며 등을 떠밀었다.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부지런히 밥과 찌개를 끓이고 찬을 준비하는 민주의 얼굴엔 행복감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텐트 안에서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텐트 밖의 민주를 내다보며 그녀와 같이 이 곳으로 캠핑을 오자고 한 게 참으로 잘한 일이지 싶었다.

오후부터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하늘이 우중충해져 내가 민주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그 해변에서의 낙조를 그날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는 서해바다 특유의 짠 내음을 숨을 여러 번 씩이나 깊이 들이마시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했고, 천천히 밀려들어왔다 나갔다 하기를 반복하는 잔파도의 모래톱 위를 맨발을 적시며 내 팔에 매달려 걷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해가 진 뒤 텐트 문의 쟈크를 이중으로 꽁꽁 걸어 잠그고 혹시라도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평상시보다 더 조심스런 숨죽인 신음을 내며 나와 섹스를 마친 후에도 민주는 정말 행복에 겨운 듯 내 품에 꼭 안기며 더 깊이 파고들어오려 애를 썼다.


어쩔 수 없는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에 마음 한켠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민주와 2박3일 간의 캠핑은 꿀맛처럼 달콤한 시간이었다.

둘째 날 저녁엔 전에 내가 보았던 그 낙조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멋진 일몰의 장관을 민주와 함께 볼 수 있었고, 그 낙조를 배경으로 잔파도가 밀려오는 모래톱에 그녀를 안고 서서 오래도록 아주 긴 입맞춤을 나누기도 했다.

민주는 그때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그 커다랗고 아름다운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 그것이 민주와 내가 누린 행복의 피크였을 줄이야!

운명의 신(神)은 결코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