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그녀가 행복해 하다 (1)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매일 민주의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특별히 꼭 그 시간에 점심을 같이 해야 할 사업상의 약속이 없는 한...
그 바람에 나의 점심시간은 매일 평균 세 시간여의 여유를 필요로 했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제일 먼저 그날의 일정을 훑어보고 가능한 한 점심 시간 전후의 세 시간 정도를 내가 굳이 사무실에 있지 않아도 되게끔 스케쥴을 짰다.
그리고 그런 나의 변화를 사무실의 직원들, 특히 내 비서역할까지 맡아하는 영미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였다.
내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 중, 학벌에 비해 또래의 아가씨들보다 상당히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여상(女商)출신의 스물여섯 살짜리 영미는 아내와 사적인 일로도 가끔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아내와는 아주 친숙한 사이이기도 해서 내겐 특히 조심스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점심시간 후 한 두 시간 정도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핑계를 갑자기 대고 일부러 영미에게 사무실 근처 헬스클럽들을 알아보게 시킨 후, 그중 적당한 곳을 골라 아예 그녀가 직접 내 명의의 회원등록을 하게 만들어 나는 점심시간 전후의 3시간여의 공백에 대한 알리바이까지 치밀하게 준비해 두었다.
물론 아내에게도, 아무래도 이제 건강관리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슬쩍 흘려두고...
그렇게 나름대로 알리바이까지 확실히 만들어 두고 나는 매일 민주의 집으로 가, 그 시간 동안 민주가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먹었고 또 거의 매일 그녀와의 섹스에 탐닉했다.
그 몇 해 동안 나와 아내와의 섹스는 한 달에 한두 번을 넘지 못했었다.
그러나 아내나 나나 그 정도 회수의 섹스에 특별한 불만족은 없었다. 나도 그랬지만 아내 역시 섹스에 탐닉할 정도로 특별히 성적인 면에서 발달(?)이 되지 못해서였을까?...아내는
아무래도 자신이 자란 유난한 집안 분위기도 탓도 있었을 터였고 나는 나대로 섹스에 탐닉할 만한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거의 가져보지 못하고 이제껏 살아 온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부부지간이라는 게 섹스 말고도 서로의 정을 도탑게 할일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랬던 내게 민주와의 거의 매일의 섹스, 그것도 아내와의 섹스 때와는 달리 매번 그 농도와 체력의 소모가 훨씬 진하고 클 수밖에 없는 혼신을 다한 그 행위는 이미 오십 줄에 든 내 건강에 무리가 아닌가 싶어 은근히 걱정도 되었지만, 난 그녀와 같이 있는 동안 끓어오르는 육정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했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라는 설에 합당한 것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매일 민주와 섹스를 탐닉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 몸 속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을 그때서야 찾아낸 듯 끓어오르는 육정만큼 솟아오르는 어떤 힘을 느꼈다.
민주는 매번의 섹스 때마다, 여전히 어색해하고 또 나이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풍만한 육체로, 끓어오르는 내 육정과 솟구쳐 터지는 에너지를 남김없이 빨아들였고 또 그 만큼을 내게 감히 ‘황홀감의 극치’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선물로 되돌려주었다.
나는 민주와의 섹스 때마다 매일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듯한, 아니 매일 매일 나는 그녀와 처음으로 섹스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내게 익숙한 느낌을 주지 않는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그 나이에 걸맞은 충분한 성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까지 내게 일부러 숨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기 몸에 닿는 내 손길을, 내 눈길을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했지 절정에 올라 거의 정신을 놓을 지경에 이르는 자신의 몸에서의 반응까지를 억지로 숨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반응이 매번 다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남자와 처음 관계를 맺는 여자를 대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번번이 내게 새로운 여자로 느껴졌다.
그녀는 또 내 손길이나 내 눈길을 어색해 하는 만큼이나 새로운 체위에 대해서도 아주 거북해 했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정상위 체위 하나만으로 진행되는 섹스였건만 나는 그녀에게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고 그래서 매번 새로운 그녀와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그동안 아내 이외의 여자를 너무 몰라서였던 것일까? 하여간 민주와의 섹스는 번번이 내 온몸의 피를 들끓게 했고 체력이 다했다고 생각될 만큼의 격렬한 섹스를 치룬 후,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채 한 시간도 안돼 다시 그녀에 대한 육정이 주체할 수 없이 솟구쳐 스스로 난감해 질 정도였었다.
나는 일주일에 4, 5일 어떤 때는 토요일까지, 일요일을 뺀 나머지 6일 모두를 민주네 집에서 점심을 먹고 그녀와의 섹스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나는 민주에게 술집 ‘칸타타’를 정리하고 다른 가게를 해보도록 권유했다. 여자 혼자 할 수 있는 좀 깔끔한 어떤 가게, 이를테면 양품점이나 조그만 선물가게 등 그녀의 이미지와 맞을 듯한 그런 가게를 말이다. 내가 어느 정도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의사도 비추면서...
그러나 민주는 선뜻 내키지 않아했다. 그동안 술집 생활이 하도 싫어 여러 번 이런 저런 가게를 해보았다가 번번이 밑천까지 다 까먹고 고생했던 기억이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지 않는 듯해 보였다.
거기다 내게 금전적 도움을 받는 게 자기로서는 꺼림칙하다는 말도 그녀는 했다. 왠지 내게 돈을 받고 자신을 파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그런 민주를 겨우 설득한 것은 내가 그녀의 집에 드나든 지 얼추 한달여가 넘는 시점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칸타타’의 문을 열고 6개월 가까이 되는 동안 그녀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도저히 승산이 없는 장사라는 판단을 내리고만 시점이기도 했다.
그녀의 말로, 술손님은 그런대로 있는 편이었으나 외상 때문에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특히 일부러 상당한 액수의 외상을 달아놓고 낮에 다른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는 소위 ‘진상을 죽이는 손님’들 때문에 더 힘이 든다고 했다.
나로서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미모에 흑심을 품을 남자들이 적지 않았을 듯싶고 개중에는 그런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들도 하나 둘이 아닐 듯싶었다.
어쨌든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녀가 술장사를 하며 뭇 사내들에게 하찮게 비춰지고 이런 저런 시달림을 받는 걸 상상할 때마다 나는 피가 역류하는 듯 고통스러웠었기 때문이었다.
민주는 마침, 오래 전 호스티스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뻘 되는 여자가 어느 정도 가격만 맞춰주면 자기가 인수하겠노라고 했다며 좀 손해를 보고서라도 가게를 넘기겠다고 했다.
결국 민주로서는 이번에도 밑지는 장사를 하고 만 것이었다. 그 동생뻘 된다는 여자가 제시한 액수는 민주가 가게를 처음 인수할 때 돈이 모자라 남의 돈을 빌린 액수를 조금 넘을까 말까한 액수이다 보니 따지고 보면 또 고생만 실컷 하고 자신의 알량한 밑천만 홀랑 까먹고 만 결과였으니 말이다.
민주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는 지지리 복도 운도 없는 여자라고 씁쓸히 웃었다.
그러나 내게는 이제야 민주에게 그럴듯한, 정말 그녀에게 어울리는 가게를 하나 차려 줄 기회가 온듯해 기쁘기만 했다.
나는 기왕 그렇게 결심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그 술집 ‘칸타타’를 넘겨버리고 다른 마땅한, 장삿거리를 그녀에게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지원해줄 수 있는 한도의 액수도 슬그머니 비쳤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자 혼자 운영할 수 있는 조그만 양품점이나 선물가게 정도는 충분히 차릴 수 있는 액수로...
그러나 민주는 내게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게 못내 껄끄럽게 생각되는지 가게를 넘긴 다음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겠노라고 하며 오히려 내게 너무 보채지 말라고, 평소에 나를 그렇게도 어렵게 대하는 태도와는 달리 마치 내게 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솔직히 뿌듯한 자부심까지 들었다. 내 친구나 주위의 아는 사람들 중에 아내 몰래 애인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거개가 돈으로 여자를 묶어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주는 그때까지 내게 스스로 돈을 원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내가 주마고 하는 돈까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민주의 그런, 남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태도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이후 그녀의 집을 거의 매일같이 드나들면서 서로 섹스에 탐닉하는 동안 내내
알게 모르게 내 아내에게 죄스러워하는 말이나 행동에서도 엿보였었다.
그녀는 가끔 지나가듯이 슬쩍 내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 물었다. 그런 물음이 내게도 괴로울 수밖에 없는 질문임을 충분히 아는 듯...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뜨끔해 얼렁뚱땅 넘기고 했지만 민주는 한 여자의 지아비, 두 아이들의 아빠를 자신이 일부분이나마 뺐어가지고 있는 게 몹시 불안하면서도 죄스러운 일로 느껴지는 듯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벌써 여러 번이나 언제든지 내가 자기를 떠나도 좋다고, 그런데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 그녀의 표정은 말할 수 없이 슬퍼보였고, 자신의 그런 팔자에 자포자기한 듯해 보이는 그녀의 쓸쓸한 모습에 나는 애잔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뒤늦게 매몰된 ‘사랑의 기쁨’은 그녀에 대한 애잔함 못지않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아이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동반된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었다. 언제든지 내게 비수로 꽂힐 수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