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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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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2/ 그녀가 매달리다 (2)


BY 盧哥而 2005-08-26

 

그녀가 매달리다 (2)




느닷없는 그 남자의 질문에 나는 순간 쇠망치로라도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한동안 멍하니 그 남자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내가 충격을 받은 게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힐끗 보더니 주머니에서 담배 갑을 꺼내 한대 뽑아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내게 한 대 권했다.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지불식간에 그 담배를 하나 뽑아 물었다.

그 남자가 라이터의 불을 켜, 내 입에 물린 담배에 먼저 붙이고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빡,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빨아 당겼다 후우 내뿜으면서 그 남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뭐하시는 분인지 대강 압니다. 문사장님, 좋으신 분이더군요.’

나는 하마터면 사래가 된통 들어 큰 기침을 하고 괴로워 할 뻔 했다.

그 남자에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입 안의 담배연기를 몽땅 다 한꺼번에 허파 깊숙이 밀어 넣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기도 깊숙이에서 부터 쓰라려 오는 통증을 바튼 기침 두어 번으로 간신히 다스렸다.

그 바람에 눈에 눈물이 다 찔끔 고일 정도였다.

‘...저 여자 불쌍한 여잡니다. 문사장님이 잘 거둬주세요.’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담배연기를 길게 후우 뿜어냈다.

뭔가, 자기로서는 속이 시원하다는 듯...

나는 그때까지도 지금의 사태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이미 나의 호칭을 알고 있는 이 남자가 나를 대강 안다는 뜻은 무엇이며 그녀가 불쌍하다는 것과 잘 거둬달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게 분명해져 보였던지 그 남자가 부연 설명을 하듯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여자를 안 지 십년도 더 됩니다. 한 때 미치게 좋아하기도 했었구요. 아니 지금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저 여자에게 맞는 짝은 아니지요. 저도 잘 알아요.’

그는 다시 한번 담배를 깊숙이 빨았다가 길게 내뿜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 저는 오늘로서 저 여자에게 손을 뗄 겁니다. 저도 이제 지쳤구요. 다행히 문사장님같이 좋은 분이 나타난 걸 보고 안심도 되니까요...’

나는 도무지 그가 말하는 내용에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마 그의 눈에는 내가 눈을 똥그랗게 뜬 채 얼이 빠져있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 자세한 건 저 여자에게 들으세요. 아무나 속여먹으려 드는 막된 여자는 아닙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면서 그의 눈동자가 출입문 쪽으로 슬쩍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따라서 돌아보니 금방 들어 온 듯한 민주가 출입문 옆에 비켜서고 있었다.

그 남자는 민주 쪽을 보며

‘미안하다. 끝까지 이런 모습 보여서... 내가 너한테 부린 마지막 질투쯤으로 생각해 둬. 여기 문사장님 좋은 분 같은데 잘되기를 빌어 줄께...’

하고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만 원 권 지폐 한 다발, 백만 원까지는 다 안돼도 7, 80만원 정도는 충분히 됨직한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이 돈 가지고 모자라겠지만... 내가 지난번하고 오늘 부숴버린 것들 새로 장만해.’

하고는 글라스에 새로 따라 두었던 맥주를 한숨에 다 들이켜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선 채

‘문사장님, 실례였다면 용서하시고... 저는 이만 자리를 뜨겠습니다. 가능하면 다시 문사장님과 뵙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며 깍듯이 머리를 숙여 보이고 성큼성큼 출입문 쪽으로 갔다.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채 그를 따라 시선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민주 앞에 잠깐 서 무언가 못 다한 말이 많은 사람처럼 한숨을 길게 내쉬며 그녀를 보다가 그녀의 어깨를 한번 잡아주고 이내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밀고 나간 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쾅 닫히자 민주는 쓰러지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까 밖에서처럼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었다. 그리곤 이내 어깨를 거세게 들먹였다.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느라 안간힘쓰는 소리가 꺼억, 꺼억 하고 내게까지 들렸다.

나로선 정말 도깨비에 홀린 듯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전에 들은 그녀의 말로 그 남자는 자기 혼자 좋아서 같이 살자고 몇 년을 따라다닌 귀찮은 사람이었다고 했는데 막상 그 남자가 이제 다시는 안 나타나겠다고 하고 사라진 마당에 저렇게 섧게 우는 그녀의 심리는 또 무엇인가?!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

민주, 그녀는 도대체 어떤 여자란 말인가?

그 남자는 나에 대해 뭘 어떻게 대강 알고 있다는 것일까?

그 남자와 민주와의 사이는 도대체 어떤 사이란 말인가?

..........

머리 속이 엉킨 거미줄처럼 도무지 어디서부터 갈래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얼핏 홀의 벽시계가 눈에 들어 왔다.

시간은 이미 9시를 넘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창에 뜬 번호를 보니 아내의 핸드폰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늦네...지금 어디에요?’

하고 아내의 구김 없이 밝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으 음, 나 지금 손님들 좀 만나고 있는데...’

하고 얼버무렸다.

‘말소리 들어보니 술 마시는 건 아니네. 언제쯤 들어올래요?’

‘금방 끝나. 바로 출발할거야.’

나는 또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럼, 나 매장에서 기다릴께 매장으로 바로 와요.’

하고 아내는 바로 핸드폰을 껐다.

마트 안 그녀의 베이커리 매장은 대개 밤 9시 전후에 영업을 끝내는데 일일 결산이며 이것저것 뒤처리를 하고 마감을 하면 얼추 10시는 지나야 아내나 맏처형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닫아 주머니에 넣으며 잠깐 잊고 있었던 민주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직 그 자리에 그렇게 무릎에 머리를 묻은 채 있었다.

내 전화 때문에 긴장을 했던 듯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어깨도 더 이상 들먹거리고 있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내 머리 속이 엉킨 것은 엉킨 것이고 일단 가게에서의 사태는 끝난 셈이니 그만 집에 들어가 보라고 할 셈이었다.

어차피 가게를 수리하고 손을 보자면 내일 밝을 때나 해야 될 테니 말이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잡았다.

‘오늘은 일단 집으로 들어가요.’

하며 내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자 그녀는 바로 따라 일어섰다.

여전히 그녀의 눈에는 흥건한 눈물이 고여 있었고 얼굴은 눈물에 얼룩진 채였다.

‘난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해서...’

하고 내가 돌아서 출입문의 손잡이를 잡자

‘죄송해요. 이런 꼴 또 보여서...’

하고 어눌한 말투로 정말 미안해하면서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차마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출입문을 조금 연 상태에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물 가득한 커다란 눈이 내 시야에 확 쏟아져 들어 왔다.

그것은 전에 밤새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을 때 꾼 그녀의 꿈에서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며 내게 호소하던 바로 그 눈 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왈칵 끌어안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고 눈물에 얼룩진 얼굴을 그 손으로 쓸어주며 닦아주었다.

그녀는 속눈섭 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발그스럼하게 투명해 보이는 그 입술에 내 입술을 가만히 가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