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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밀회


BY 애니 2005-07-25

-아름다운 밀회


어두운 창 밖으로 멀리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들어왔다.? 불빛들은 촘촘히 박힌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고 도시의 오른쪽에서 바다 건너 또 다른 육지를 잇는 금문교가 길게 이어져 빛을 내고 있었다.
?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요.”
은하는 블라인드가 젖혀진 창문을 내다 보며 감탄하듯 태식에게 말했다.
“아, 네… 작년에 버클리 대학에 교환 교수로 나왔던 후배가 얻어 살던 원룸이에요.? 제가 이곳으로 나오면서 그대로 물려 받았어요.? 여기 소파, TV, 테이블 까지…”
태식이 손으로 방 안의 물건들을 이것 저것 가리켰다.
? ? “커피 하실래요?
? “네, 한 잔 주실래요?”
? ? 좁은 공간 안에 마주한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듯 은하가 미소짓는 얼굴로 태식의 눈을 맞추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 “카페인이 있는 건데…? 밤에 마셔도 ?찮겠어요?”
? ? “저요?… 오늘 같은 날은 ?찮아요. 분위기 관리상 마셔 줄께요.? 잠 안오면…? 음…? 뭐할까…”?
은하는 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 말을 이었다.
? ? “한국에다 전화하죠, 뭐.? 여기가 밤이면 거긴 낮일 테니까.”
? ? 나이 답지 않게 생긋 웃음 짓는 그녀의 곱고 단아한 얼굴을 작은 웃음으로 응수한 뒤 태식은 주방 쪽으로 걸어가 주전자에 생수병을 따르고 가스불을 켰다.?? 머그 찾잔이니 프림이니 등을 준비 하는 듯한 태식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은하는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의외로 편안하고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 ? 여자로선 꽤 큰 키에 속하는 은하 보다 조금 더 큰, 그리 크지 않은 적당한 키에 뒤로 넘겨 잘 정리해 놓은 살짝은 곱슬기 있는 머리, 햇빛에 그을러 옅은 갈색으로 보이는 목선과 두툼해 보이는 어깨선, 곤색 가로 줄 무늬가 진 반팔 폴로 셔츠를 깔끔하게 넣어 입은 미색 캐주얼 면 바지, 그리고 검은색 허리 벨트…
? ? “여기 그 책…”
“아, 네…”
태식은 주방 옆에 있는 작은 식탁 위에 쌓아 둔 책 중에서 한 권을 골라 내 은하에게 로 와 건냈다.? ‘골프 길라잡이’ 라고 쓴 표지의 초록색 글씨가 눈에 띄는.
“잘 볼께요, 저.”
? ? ? ??
? ? 미니 주전자가 이내 김을 뿜으며 물 끓는 휘슬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태식은 다시 주방쪽으로 가다 은하를 돌아다 보며 물었다.?
? ? “프림 설탕 하시나요?’
? ? “어쩌죠?… 프림만 접수 하는데요.”
? ? 은하가 애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하하하”
? ? 은하의 장난끼 발동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마주 보며 웃었다.
? ? “그럼 그 쪽은 둘 다 접수하시나 보죠?”
? ? 이 말에 다시 “허허허” 웃던 그는 각기 다른 색 머그잔 둘에 물을 부어 들고 은하 쪽으로 와 소파에 앉았다.? 머그잔에는 서울 Y대의 로고가 찍혀 있었다.
? ? “드세요.” 하며 잔을 건네 주는 태식의 큰 손과 팔이 은하의 눈에 들어왔다.? 힘줄이 돋아 나와 있는 남자의 팔에 잠시 눈길을 주던 그녀는 머그잔을 받아 들며 커피향을 맡아 보았다.
머그잔을 받을 때 살짝 스치던 그의 손길을 느끼며.
? ? “음―맛있을 것 같아요.”
? ? “그래요?”
? ? “한국 자판기 커피맛이 나요.”
? ? 은하가 한 모금 마시며 태식을 보았다.
? ? “그건 칭찬으로 받아 들여도 되는 건가요?”
? ? “네, 자판기 커피 뽑아 먹어 본지도 오래 되었거든요.? 여긴 이런 맛 나는 자판기는 없잖아요.? 그죠?”
살짝 웃음 지으며 은하가 태식을 볼 때 전화 벨 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그는 한 쪽 켠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수화기를 들었다.?
“헬로우.”
“…”
“응, 나야…”
“…”
“잘 지내고 있어.”
“…”
“응, 골프 나갔었어… 아이들은 다 잘 있지?”
“…”
“… 음, 먹었어… 일식집에서…”
“…”
서울에 있는 그의 집에서 걸려온 국제 전화인 것 같았다.? 딸 아이도 혼자 있을텐데 이제 그만 집에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은하는 벽난로 위에 걸린 해바라기 모양의 벽시계를 보았다.

여덟시 사십분.

돌아 서서 전화 하고 있는 그를 잠시 보다 그녀는 일어나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어두운 하늘 위로 나와 걸려 있었고 희미하지만? 별빛도 몇 개 떠 있었다.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 너머…??
까맣게 보이는 저 바다를 건너 가면 한국인데…
태평양… 저 바다 건너 태식의 아내와 두 아들이 있고 은하의 남편도 있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한 언덕 위에 은하와 태식이 함께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