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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후 일지3


BY 47521 2005-09-01

1998.3.xx일.전기요금 고지서 송달원

약 5개월 동안 다니던 봉제공장을 그만 둔 것은 H전력에 이력서를 넣고 발령만 기다리면 되었기 때문 이었다. 남편은 사업을 한답시고 전화통에 매달려 있었는데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자꾸 싸움만 하게 되서 심심풀이 땅콩으로 근처의 보험회사에  교육을 받으러 한동안 다녔다. 처음에 보험 설계사 교육을 받고 난 뒤 자격시험을 치루게 하는데 문제는 자격시험에 통과하면 설계사로 등록이 되고 그 다음에 보험을 모집할 수 있다고 보호 규정에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시험에 통과돼도 보험 모집을 일정량 해야 만이 설계사로 등록 된다는 것이었다.순진한 주부들이 친인척을 상대로 세일을 하는 방문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즈음,나는 세일이 얼마니 무서운 함정이라는 것을 예의 보험회사 교육을 받고 치를 떨었다.

처음 H전력의 용역회사인 S산업에 입사했을 때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막연히 전화교환원 같은 일이겠지,라고 추정했었다. 실제로 주부사원들이 그 곳에서 전화교환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며칠이 지나서야 나는 내가 외근직으로 전기요금 고지서 송달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첫날, 고지서가 든 가방을 등에 매면서 나는 남편을 원망했다.지적도를 보면서 송달을 했지만 번지수가 고지서와 맞지 않는 것이 많아서 나는 처음 얼마 동안은 얼마나 헤매었는지 모른다.송달도 한 달쯤 하니까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데 이번에는 수용가 집을 방문해 자동이체 납부를 받아 오라고 시켰다.자동이체를 못해오면 집에 가서 아이나 보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곤 했다. 놀란 사실은 검침원,송달원,단전원으로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S산업은 공개 모집이 아닌 추천제로 사람을 고용 하는데 부부가 같은 사무실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사둔의 팔촌 까지도 같은 사무실에 있는것이 비일비재였다. 자동이체가 끝나고 나니까 J소장은 이번에는 송달 하면서 중간 검침을 해 오라고 지시했다. 남자 검침원들이 전기요금 누진제로 수요자들과 삥땅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였다.

그럭저럭 근무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봄비가 주룩주룩내리는 궂은 날씨인 어느 날,폐지 예고서(두 달 이상 전기요금을 안내는 수요자에게 단전을 전하는 예고 통지서)를 전달 하려고 보니 고지서가 없었다.아마도 사무실에 고지서를 두고 왔나 보다고 무심히 넘겼고, 그 지역은 내일이나 모레 고지서를 돌려도 지장이 없었다.

그 다음날,출근해서 여자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는 중에 주부 사원 하나가_언니,큰일났어.소장님 한테 빨리 가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날벼락이 내 머리에 떨어진 지도 모르고

-별일이야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어자영씨, 이리 좀 오세요. 이 고지서가 구로 성당에 있는걸 성당 관리인이 주워 가지고 본사 영업부장에게 맡겼답니다.어떻게 된 겁니까?

J소장이 나를 다그치기 시작 하는 바람에 그제서야 어제 내가 기도 드리러 성당에 들어가서 모르고 고지서를 성당안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지서가 아주 없어지지 않고 찾았는데도 불구 하고 J소장은 막무가내로 나의 사직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기 친척 하나넣어 줄 절호의 기호라고 판단을 한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나는 매달렸지만 J소장은 요지부동이었다. 도대체가 이해가 안되는 것은 고지서를 돌리다가 설령 잃어 버렸다 해도 재발행해서 고객에게 갖다 주면 되지 J소장이 은근히 나를 협박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3개월 마다 주민등록 등본을 띄어 가는 계약직 사원에서 보기 좋게 퇴짜를 당했다.나는 또 어떻게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