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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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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사랑한 사람은...니 엄마와 니 뿐이다...


BY 데미안 2006-10-26

 

가을 단풍이 지고 겨울의 차가움이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상가 건물은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을 했다.

놀이방도 생기고 동네 아줌마들이 염원하던  휴게실도 생겼다.

은영 언니는 그것이 수빈 덕분이라며 좋아라 했다.

돈 많은(?) 아버지 덕분에 수빈은 가게를 넓혔다.

그녀가 가게안을 둘러 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면서 그녀의 아버지가 들어섰다.

인사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수빈은 깔끔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버지는 동네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돈 많겠다. 미남이겠다, 홀애비겠다...

침 흘리는 여자가 더러 있다는 소리를 은영 언니한테서 반 농담처럼 들은 적 있다.

그녀는 궁금했다.

그 여자와 왜 헤어졌는지...

그 여자가 그렇게 순순히 헤어져 줬다는 것도....

그러나 그녀는 묻지 않았다.

그녀 아버지가 앞 동으로 이사를 와도 그녀는 들리지 않았다.

가끔 원우가 그녀 아버지 집으로 찾아가 술동무가 되어 주었지만 수빈은 그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어떠냐, 마음에 드냐?]

[...굳이...이렇게 하시지 않아도 됐을텐데.....]

[어차피 니 건물이 될텐데 네가 마음에 들어야하지 않겠느냐]

[... ...!]

 

그녀는 대꾸가 없었다.

 

[이 형사... 정말 좋은 사람이더구나...이 애빈 안심이 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렸다.

 

[왜!]

아버지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 여자와 헤어졌어요?]

생각보다 말이 앞섰다.

주워담을 수 없었다.

그녀 아버지가 몸을 돌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영영...묻지 않으면 어쩔까...걱정이 되던 참이었는데...]

 

말을 하며 그녀 아버지는 근처 의자를 찾아 앉았다.

 

[앉거라...]

 

아버지와 딸은 멀찌기 떨어져 앉았다.

 

[너와 네 엄마가 받은 상처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 여자와 사는 그 세월이 내게도 지옥같았다고 하면 ...그래, 믿지는 않겠지.

내가 저지른 실수...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한번의 실수가  나를 비롯,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나락으로 떨어뜨린거지.

니 엄마의 죽음으로 난...모든 걸 포기했다.

그러나 아무 잘못도 없는 그 애한테한큼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하며 살았어.

근데..우연하게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던 자리에서 옆 방에서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술집에서 일하던 계집애 하나가 기둥 서방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를 낳고싶은 마음에  일을 꾸몄다는거야.

애비노릇해줄 돈많은 남자를 물색한다는...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 얘기인 것 같더구나.

그때부터 의심을 했다.  그러다보니 앞뒤 맞지 않는 일들이 그제야 떠오르더군...

내가 조금만 정신차렸더라면 금방 알수 있었던 일을...!]

[무슨...말씀이세요?]

[내가 그 여자의 올가미에 걸려 들었다는 얘기다.

그 아이도 결국...내 아이가 아니었다는 얘기지]

[설마!...]

 

수빈은 턱 하니 놀랐다.

 

[설마...! 그럴리가요...지금 저한테 그 얘기를 믿으라는 소리는..!]

[친자확인을 했다.  그 애의 진짜 애비도 만났다. 나와 많이 닮았더구나]

 수빈은 맥이 풀렸다. 심장이 쿵쾅 거렸다.

 

[그들이 몰래 만나는 현장을 내가 잡았다.

극구 부인을 했지만 내가 증거를 내밀고 겁을 주자 남자가 실토를 하더구나.

그 여자는 이제와서 헤어질 수 없다며 난리를 쳤지만  법정까지 가봤자 덕댈게 없다는 걸 알자 위자료를 요구하더군.

주었다.

그 아이를 위해서...

함께 산 세월동안 그래도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던 아이였다.

그 아이앞으로 유산을 남겼다.

그 여자가 너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지만 않았다면 그 여자에게도 재산을 줄 생각이었는데....

그 문제는...내가 너에게 사과를 해야겠구나]

 

수빈은 굳어버린 사람처럼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진다해도 이렇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살아 돌아온다해도 이렇게 충격적이지 않을 것이다.

허망하고 허탈하고 억울하고 황당하고.....

 

[그동안 너에게 애비노릇 한 번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너 편한대로... 너 하고자 하는대로 그냥 지켜만 보는 게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내 나름대로의 애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네가 싫다고 해도 난 네 옆에서 네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겠다.

그래야 훗날...내가 저 세상에 가도 니 엄마한테 할 말이 있지 않겠니?]

 

그는 일어섰다.

 

[아빠 대접 받고자 하는 건 아니다.

이제와서 무슨 염치로 내가 너에게 그걸 바라겠는냐마는 이 애비가 네 옆에 있는 것은  물리치지 말아다오.

내 평생 사랑한 사람은 니 엄마와 너 뿐이다.]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한결 가벼워보이는 어깨였다.

아버지가 가고 나자 수빈은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웃기는 일도 있는가 싶었다.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연속극도 아니고...

이런 해괴망측한 사연도 다 있구나 싶었다.

수빈은 그 자리에서 일어설줄도 모른 채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수빈은 흐느적거리며 침대위에 몸을 던졌다.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눈을 감자 신기하게도 금방 잠이 쏟아져 왔다.

 원우가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도 몇 날 며칠을 잠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원우가 수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걱정스런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괜찮아?]

수빈은 말없이 멀거니 원우를 바라보았다.

낯설어 보였다.

 

[장인어른이...전화하셨어.  당신 괜찮은지 물으셨어.얘길...들었어?]

그의 말투에서 수빈은 원우가 이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음...전에 장인 어른이 말씀하셨어. 그리고 당신한테는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 당신이 먼저 묻기 전에는... 당신, 괜찮아?]

 

수빈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자고 싶어요.....]

[알았어. 그래...푹 자고 나면 세상이 또 달리 보일거야.  자면서 그 동안의 일들은 다 잊어버리는거야, 알았지? 그리고 이젠 앞만 보고 가면 돼... 내가 옆에 있을테니깐...]

 

수빈은 그렇게 하루를 잤다.

깨면 자고 깨면 다시 자고.....

원우의 말대로 한번씩 깨어날때 수빈은 지난 과거를 하나씩 망각의 강에 놓고 왔다.

마지막 잠에서 깰 때 수빈은 그녀의 엄마가 꽃밭에서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꿈을 꾸었다.

 

 

상가 전체 개업식이 열렸다.

동네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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