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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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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절대 당신을 울리지 말라고......


BY 데미안 2006-09-22

 

수빈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저녁을 지었다.

정시에 원우가 들어섰다.

그가 싱크대 앞에 있는 그녀 등뒤로 다가와 가만히 끌어안았다.

수빈은 그가 자신을 안아줄때의 그 느낌이 좋았다.

섹스를 하지 않아도  따스한 그의 숨결은 그녀를 만족시켰다.

 

[정말 좋다... 난 당신 냄새가 나는 이 집이 좋아]

[아부]

수빈은 피식 웃으며 농담조로 답했다. 그가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댔다.

 

[손 씻어요, 밥 먹게]

그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원우에게 커피를 한잔 주고 난 뒤 수빈은 저녁밥을 챙겨 가게로 나갔다.

원영은 저녁을 먹고 약속때문에 좀 일찍 가게를 나섰고 수빈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11시였다.

원우는 청소를 하고 잠자리를 봐 놓은뒤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와인 한 잔 하고 잘까?]

[음...좋아요]

[그럼 얼른 씻고와. 준비는 내가 할테니]

그가 그녀의 엉덩이를 툭 쳤고 수빈은 그런 그를 한번 곱게 째려보고는 욕실로 향했다.

 

은은한 조명아래 두 사람은 와인잔을 기울였다.

[당신과 있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뭔지 아세요? 이렇게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거...]

[음...밥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차 마시는 것도 그렇고 산책하는 것도 그렇고 웃는 것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혼자 보다 둘이 좋지?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거야]

 

그의 말에 그녀는 웃었다.  전적으로 옳다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원우는 수빈의 손을 잡고 자신을 보게끔 했다.

 

[우리가 비록 결혼식은 않고 살지만 당신과 함께 살기 시작한 순간 당신은 내 아내야. 내겐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런  하나뿐인 내 아내...]

[원우씨...왜 그래요?....]

[그래서 난 당신과 나 사이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봐]

[원우씨...!]

[오늘 당신이 장인어른-당신이 싫어해도 난 당신 아버지를 장인어른이라 보를거요- 장인 어른과 만난걸 가지고 이런 소리 하는 건 아니오.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기 때문이야]

[무슨... ...?]

[그 전에, 당신이 흥분하지 말고 내 얘기를 끝까지 듣겠다고 약속해. 어서]

[.....?  좋...아요]

[이 집에 들어온 다음 날, 사실은 당신 아버지를 만났어]

[아,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 말이에요? 왜요?]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물었다.

[당신이 아버지를 왜 만나요? 아버지가 당신에게 보자고 하던가요?]

[아니. 내가 먼저 전화 했어. 당신은 내 전부야.  가볍게 만나 가볍게 끝낼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그런 당신을 세상에 있게 한 분이잖소.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소.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 ]

 

수빈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표정만 굳히고 있었다.

 

[내 존재를 알리고 당신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자 ..]

[당신을 때렸어요?]

[아니야...그 정도는 아니셨어. 처음엔 멱살을 잡으셨지. 그러나 이내 놓으시더니...괴로운 표정을 지으시더군. 그리고... 우셨어]

 

원우의 말에 수빈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보이시더군...장인어른 탓이라면서 우셨어.  장인어른으로 인해 당신이 결혼대신 동거를 택했다면서...죽어서도...당신 어머니, 그러니깐 장모님을 뵐 면목이 없다고 하시더군]

 

원우는 수빈이 가볍게 몸을 떠는 걸 보았다.

그녀 부모님의 얘기가 그녀에겐 얼마나 민감한 부분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묵인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수빈아...!]

 

그녀는 갑자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는 그녀를 원우는 두 팔로 꼭 안아 주었다.

얼마만인지 모른다.

그렇게 목놓아 울어 본 지가 얼마만인지....

또  얼마나 그렇게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엄마를 묻으면서도 그렇게 울어보지 못했다.

무섭고 두렵고 ...울면 그대로 모든게 무너져 내릴까봐 마음껏 울어 보지도 못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이제서야, 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원우 품에 안겨 소리내어 울 수 있었다.

원우는 그녀가 잠잠해질때까지 등을 쓸어주며 진정시켜 주었다.

 

[이젠...내게 얘기해 줄 수 있겠지?]

 

수빈은 부모님의 일,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가장 친한 친구 보희에게 조차 다 털어놓지 못한 것들도 다 털어놓았다.

 

[부모님에게 부모님의 삶이 있듯이 당신에겐 당신만의 삶이 있어.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이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이해는 해 보라고 말하고 싶소.

어찌되었건 당신에겐 아버지잖소. 평생을 안 보고 살 수는 없어]

[가게 건물을 사들인 사람이 아버지래요. 그 얘기도 하던가요?]

 

수빈은 원우의 말을 무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원우는 수빈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니. 당신을 끝까지 책임지라고 하시더군. 절대 ... 절대 울리지 말라고... 더 이상 상처주지 말라고... 난 그러겠다고 맹세했어. 그리고 가끔 술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냐고 하시길래  그러겠다고 대답했어... 내가 잘못한건 아니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토닥여 주었다.

 

[장인어른...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어]

 

그녀는 또 말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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