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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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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BY 데미안 2006-05-19

 

그렇게 큰 사건없이,

모두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여름이 덤벼들었다.

 

보희는 예쁜 딸을 낳았다.

신랑을 꼭 닮았다고 신랑이 벌써부터 쭉쭉 빨고 난리도 아니라면서 행복한 푸념에 빠져 매일 전화를 했다.

 

수빈은 원영덕분에 여가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원우와의 데이트도 잦아졌다.

그렇다고 큰 진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사이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수빈이 원우를 보며 웃는 일이 많아졌고 원우의 수빈에 대한 가벼운 스킨쉽도 많아졌다.

 

굳이 무언가 달라진 걸 꼽으라면 치과 원장이었다.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원장은  요즘들어 자주 순정 만화를 찾고 연애 소설에 빠져 지낸다.

그리고 은영 언니를 따라 봉사 활동도 다니고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얼마전에는 은영 언니가 주기적으로 가는 노인정에 가서 무료로 어르신들의 입안을 봐주기도 했다.

 

 

[날씨가 흐린게 꼭 비라도 내릴 것 같지 않아요, 원영씨?]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수빈이 말했다.

 

[밤부터 비온다는 소리는 하든데... 정말 금방이라도 퍼부을 것 같아요]

[에구. 비라도 내리면 더위가 좀 덜 하겠죠?  한 며칠 너무 더웠어요]

[맞아요.]

[ 비 내리기 전에 원영씨 먼저 집에 가요. 오늘은 내가 정리하고 갈테니...]

 

그러자 원영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럴수가 없겠는걸요?]

 

수빈은 원영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고는 피식 웃었다.

원우가 도로를 건너오고 있었다.

 

[비 올것 같은데?]

그가 들어서면서 말했다.

[원영이 너 우산 가지고 왔어?]

[오빤...보물단지가 코앞에 있는데 왠 우산?]

 

원영은 눈으로 밖에 주차해 있는 차를 가리켰다.

수빈이 타고 다니라고 준 차다.

원우는 잊었다는 듯 웃었다.

 

[그건 그렇고...원영아. 미안하지만 오늘도 수빈과 갈 곳이 있는데...]

[어딜요?  아까 전화로도 그런 소리는 없었잖아요?]

 

수빈이 물었다.

 

[응... 나야 괜찮지만...?]

[그래. 고맙다]

 

그는 동생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다짜고짜 수빈의 손을 잡았다.

 

[어디 가는 거예요?]

[가면서 얘기하리다]

 

수빈은 가방을 챙겨 들기가 바빴다.

 

[원영씨. 비 오기 전에 일찌감치 끝내고 가요. 알았죠?]

 

원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도로를 건너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오빠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고  그래서 자신이 그 뒤로 밀려 났다고 하면...

가끔 심술도 나고 질투도 난다고 하든데....

원영은 오빠와 수빈의 다정한 모습을 볼때면 자신이 마치 누나가 된 듯,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원영은 오빠 원우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었다.

 

 

[어딜 가요?]

[오늘 친구 녀석이 결혼을 했소. 간다고 했는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참석못했소.  피로연에도 나타나지 않으면 우정이고 뭐고 없다길래 지금 거기 가는 길이오]

[그런 거면 나한테 먼저 물어봐야죠]

[당신은 가자고 하면 거절할 게 뻔하잖소. 그래서 이렇게 납치하는거요]

[당신은 가끔...아주 이기적이라는 거 알아요?]

[당신한테만...!]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제일 약하게 만드는...

수빈은 혀를 차며 새삼 자신의 옷차림새를 한번 보았다.

청바지에 꽃무늬 시폰의 소매없는 블라우를 입고 있었다.

 

[완벽하니깐 걱정말아요]

 

그가 손끝으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순간 짜릿한 전율이 그녀를 휘감고 지나갔다.

 

[예뻐...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여자 보는 눈이 그렇게 낮아요?]

[천만에!  여자 보는 내 눈이 최상급이란 걸 당신은 아직 모르는군?]

 

그가 소리내어 웃었고 그녀도 따라 웃고 말았다.

복잡한 중앙로를 뚫고 그가 주차를 한 곳은 한 호텔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은 만원이었고 호텔 로비에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지하 2층...지하 1층...1층...

어느새 엘리베이트안은 사람들도 꽉 찼고 수빈과 원우는 밀리고 밀려 제일 안쪽, 구석진 곳까지 갔다.

원우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에게로 꼭 끌어당겨 안았다.

사람들에 밀려 그녀는 본의 아니게 그에게 안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녀 만큼이나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그의 눈이 곧장 그녀에게로 내려왔다.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다 자신의 심장위에 올려 놓았다.

 

'당신 때문이오...'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랫배에 묵직하게 와닿는 또다른 느낌!

그녀가 놀라 몸을 빼려고 했으나 그의 팔은 오히려 그녀를 더 꽉 조여 안았다.

얼굴이 발개진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심장은 그의 심장보다 배로 더...무섭게 뛰고 있었다.

 

꽉 찬 사람들의 물결도 엘리베이트가 멈출때마다 조금씩 빠져 나갔다.

그들이 제일 마지막까지 남았다.

수빈은 옆으로 비켜섰다.

그 좁아보이던 엘리베이트가 갑자기 한없이 넓어보이는 순간 이었다.

어색하기도 하고 무언가 갈증이 나기도 했다.

수빈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때,

원우가 그녀를 잡아당겨 가슴에 안았다.

불같이 뜨거운 입술이 수빈의 입술에 닿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멀어졌다.

 

[당신을 사랑해..]

 

곧바로 뜨거운 고백이 귓가에 맴돌았다.

잘못들은게 아닌가 싶을때

징.....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트 문이 열렸고

수빈은 멍한 상태에서 그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