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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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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마...당신 아들이 짝사랑하는 여자라고 했으니깐...


BY 데미안 2006-05-08

 

참...마음이 편하다.

함께 있으면 왠지 웃음이 번진다...

 

그것은 수빈이 원우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들이었다.

30년 생을 살면서,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면서,

수빈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에 대한 느낌이 점점 좋아지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원우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

 

[그런데 당신 이미지랑 수빈이랑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거 알고 있소?

차가운 듯 하면서도 따스하고 우아한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가끔 내가 당신의 수행 비서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소.

우습지 않소?

그래..당신 이름 누가 지었소?]

[... ...아버지가요]

[아버님께서 당신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어. 실제로도 그렇겠지?]

 

수빈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쓴웃음을 지으며 차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따라서 원우는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려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웃었다.

 

[오늘 날씨가 무척 좋소. 나에겐 아주 귀한 시간인데...뭘하며 보내면 좋을까?]

[무엇이든요. 사실 나도 이렇게 시외로 나와 보는게 얼마만인지... 좋군요...]

 

원우는 한참을 달려 숲속 레스토랑에서 차를 세웠다.

점심을 먹고 우아하고 진하게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드라마속에 자주 등장하는 숲길을 걸었다. 깊 옆으로 푸르디 푸른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구쳐 있었고 햇살 또한 눈부시게 쏟아져 내려왔다.

고요하면서도 잔잔한 자연의 소리가 들리고 간간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또한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당신을 무척 보고 싶어 한다는 거 알고 있소?]

[부모님께...내 얘기를 했나요?]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 가자 원우는 피식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의 손은 따스했다. 그 따스함이 그녀에겐 짜릿함으로 전해져 왔다.

[경계하지마. 당신 아들이 짝사랑하고 있는 여자라고 했으니깐...내 매력엔 끄떡도 않는 무서운 여자라고...!]

 

그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짝사랑?...날... 사랑한다는 소리...?........

 

[그러니깐 더 궁금해 합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원영이 때문이오. 그애의 그런 밝고 활기찬 모습이 부모님께 얼마만인지....그거 하나를 보더라도 당신은 우리 부모님께는 은인이 되고 있소. 나더러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을 놓치지 말랍디다]

 

그가 웃으며 그녀를 지긋이 내려다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원우에겐 그 모습이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마음 같아선 그녀를 끌어안고 마구 키스를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영인 입만 열었다 하면 당신 얘기뿐이오. 그리고 당신이 상대하는 사람들...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그애한테 그런 수다스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아졌소.  모두들 그애한테 놀라고 있고 부모님은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입장이시지]

[내가 보기에도 원영씨는 밝아요. 사람 기피증이 있다고 했는데, 전혀 믿기지 않아요.  도대체 원영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잠시 침묵이 있었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쉬더니 그녀를 끌어당겨 그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얘기해 주고 싶지만...원영이가 싫어할 것 갈소. 언젠가....언젠가 자연스레 그애가 당신한테 얘기하지 않을까 싶은데...그때까지 참아주지 않겠소?]

 

 

원영 또한 요즘 자신의 변해가는 모습에 적지않게 놀라고 있었다.

처음, 수빈의 가게에 찾아왔을 때 자신이 과연 며칠을 견딜수 있을까...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제 원영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안녕?]

문이 열리고 은영 언니가 들어왔다.

반갑게 원영이 인사를 했다.

 

[그래. 이제 원영씨에게 가게를 맡기고 본격적으로 두 사람이 데이트를 시작 했단 말이지?]

 

의자에 앉으며 은영이 실실 웃었다. 원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은영과 원영은  두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점심 드셨어요? 오빠가 초밥을 많이 사다 주고 갔는데.....]

 

많이 밝아지기는 했으나 원영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조심스러웠다.

그것을 은영이 모를리 없었다.

 

[당연히 점심 전이지요.  같이 먹어 볼까요?]

 

두 사람은 정답게 초밥을 먹기 시작했을때 문이 열리고 덩치 큰 남자가 들어섰다.

 

[야, 이 원영!]

 

덩치가 산 만한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원영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덥썩 쥐고 흔들었다.

겁먹은 원영이 손을 얼른 빼고는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나야 나, 임마. 원우 친구 재철이. 호프집 하는 정 재철. 설마 원우 그 놈이 내 얘기를 전혀 안 한 건 아니겠지?]

[아!]

 

그제야 원영의 얼굴이 펴졌다.

고등학교때 보고 처음보는, 오빠의 가장 친한 친구 정 재철.

그런데 원영은 그가 이렇게 큰 사람인줄은 몰랐다.

 

[안,안녕하세요?]

[야, 그 꼬맹이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네? 밖에서  만났으면 모르고 지나갔겠는걸?

어? 점심 먹고 있었어?  너 점심 굶을까봐 ....나도 초밥 사 가지고 왔는데..]

 

재철의 눈에 그제사 은영이 들어왔다. 꾸벅 인사를 한다.

 

[저기..수빈 언니랑 젤 친한 분이세요]

[어이구! 실례했습니다. 정 재철이라고 합니다. 원우의 친구지요]

[덩치 한번 끝내주네요?  점심 전이죠? 같이 합시다]

[어, 좋죠. 감사합니다]

 

넉살도 좋았다.

먹기도 많이 먹었다.

은영과 원영은 재철의 먹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재철과 은영은 죽이 맞았다.

말투도 그렇고 생각하는 스타일도 비슷했다.

재철이 명함을 하나 주었다.

 

[제 가겝니다. 언제 한번, 원영이랑 수빈씨랑 같이 오십시요. 제가 공짜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진짜요? 우린 그러면 진짜 가는데?]

[아, 그럼요!  꼭 오십시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원영아.  일 있음 언제든 전화해. 연애한다고 정신없는 원우 놈보다 내가 더 요긴할거다. 다음에 또 보자. 오빠 간다]

 

그가 가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쑥 빠져 나간 느낌이었다.

 

[거참. 재밌는 사람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