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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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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당신을...수빈이라 부르고 싶은데...허락하겠소?


BY 데미안 2006-04-28

 

한잔 두잔 들어가자 여자들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은영 언니와 치과 원장은 아예 언니 동생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고

수빈은 저절로 정화씨와 술친구가 되어 버렸다.

술 좋아하기로 소문난 정화씨의 주량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조차 그녀보다 먼저 취해서 뻗어버리니 오죽하랴.

 

[나는 ... 나같이 사는게 잘사는 건줄 알았어...]

 

어느정도 술이 들어가자 치과 원장도 말이 많았다.

아니, 쏟아내고픈 사연이 많은 것 같았다.

 

[대학 2년때 복학한 전남편을 만나 정말 한 눈 한번 안팔고 그 남자만 보며 살았고

치과 전문의도 내가 먼저 딴게 미안해 그 남자한테 정말 잘해줬어.

그 남자가 포기하고 여러 직장 전전하며 적응못해도 아무소리 없이 살았고...

집안살림 걱정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라고 내가 떠밀다시피해서 공부시켰고...

그래서 전문의 땄을때 누구보다 기뻐했는데...

그럭저럭 살만하니깐...내가 애기를 못낳네.

가졌다하면 유산하고 가졌다싶음 유산이고...

그러다보니 그 남자랑 사이도 소원해지고 부부관계도 자꾸 피하게 되고....]

 

원장은 두서없이, 대학때부터 이혼했을때까지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뱉아냈다.

거기에 은영 언니는 물만난 고기마냥 장단은 얼마나 잘 맞춰주는지...

그렇게 두어시간은 훌쩍 지나고 원장의 주선하에 2차로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에선 정화씨와 원장님이 죽이 맞았다.

둘이 마이크를 놓으려고 하질 않았다.

 

그렇게 집에 오니 2시였다.

적당히 취한 상태라 수빈 또한 그냥 소파에 널부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 10시가 넘어 수빈은 후다닥 책방으로 나왔다.'

문이 열려 있었다.

원영은 벌써 청소를 끝내고 혼자서 이리저리 책을 꽂고 있었다.

 

[혼자 했어요? 기다렸다 같이 해도 되는데...]

 

수빈은 미안한 마음에 웃었다.

원영이 따라 웃었다.

 

[신경쓰지 마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 일이 좋아요]

 

함께 차를 마시면서 원영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언니한테 감사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날 조건없이 그냥 받아줘서...]

[월급은 내가 주나요, 뭐. ..  오히려 좋은 아가씨 보내줘서 오빠한테 내가 감사해야죠.

반대로 내가 오빠한테 월급줘야 하는 거 아닌가?...]

 

농담하는 수빈의 말에 원영이 나즈막히 웃었다.

 

[참...오빠가  12시전에 온다고 했는데...?]

[그래요?...미안해서 어떡해요?  오늘도 원영씨 혼자 가게 봐야 하는데...]

[그건 괜찮아요. 난 재미있어요. 그리고 언니 만난후로 우리 오빠도 행복해 보여서 좋아요...]

 

문이 열렸다.

원우가 종이 가방을 하나 들고 들어섰다.

그의 모습에 순간, 수빈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녀 자신도 예상못한 일이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달랑 걸친 그가 들어섰는데 가슴이 뛰다니...!

저 미소때문이야. 이 집 남매의, 사람을 묘하게 만드는 저 미소때문이야......!

 

[자, 원영이 점심]

 

그가 들고온 종이가방을 원영앞에 놓았다.

원영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초밥이랑 샐러드네?.....그런데 나혼자 먹는데 왜 이렇게 많이 샀어?  서너명은 먹어도 되겠는데?]

[여기가 아줌마의 천국이라며?  아줌마들 오면 잘 보이라고 내가 많이 샀어.

그리고...수빈씨만 쏙 빼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가 아이처럼 씨익 웃었다.

 

[원영씨. 저녁시간 전에는 올께요. 미안해요]

[원영이 너, 내 친구 재철이 알지?...점심 먹고 잠시 와 보라고 했으니깐 필요한게 있으면 그 놈한테 얘기하구. 알았지? ....오빠 간다. 수고해라]

 

원영의 배웅을 받으며 그들은 차에 올랐다.

 

[어디...목적지는 있는 거예요? ]

[없소. 일단...난 시내를 벗어나고 싶은데 수빈씨 생각은 어때요?]

[그것도...괜찮기는 하군요. 너무 먼 곳이 아니라면...]

 

그가 씨익 웃었다.

 

[그 전에 제안 하나 합시다]

[뭘요?]

[그냥 당신을...수빈이라 부르고 싶은데, 수빈씨가 아니라.... 허락해 주겠소?]

[그러면...달라지는 거라도 있나요?]

[당신을 더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겠소?...싫다면......?]

[뭐...마음대로 하세요]

 

수빈 또한 은근히 싫지 않았다.

가슴의 맥박이 빨라진 걸 그가 알아채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가 소래내어 웃었다. 기쁨의 웃음소리다.

 

[그럼...산이 좋겠소, 바다가 좋겠소? 당신이 정해요]

[음...지금은...아무래도 산이나 수풀이 우거진 곳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오케이! 좋소. 산으로 갑시다]

 

원우는 고속도로로 차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