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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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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왔었다


BY 데미안 2006-04-12

 

늦잠을 자든 잠을 꼬박 세든, 수빈은 책방 문을 늦게 연 적은 없었다.

항상 정시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수빈이 문을 채 다 열기도 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원영이 불쑥 인사말을 건넸다.

 

[어머, 원영씨!]

[제가...너무 일찍 왔...죠?]

 

그녀의 자신없는 목소리에 수빈은 웃었다.

 

[아뇨 아뇨. 그런건 아니고...이렇게 일찍 오시면 내가 미안해서... 일단 들어가요]

[저기...이왕 갈거면 오빠가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해서...그래서 일찍 왔어요]

[그럼 밖에서 한참을 기다린 거 아니에요?]

 

원영이 웃었다.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내가 전화번호 가르쳐 줄테니 전화해요. 아니, 그럴 필요없이 내가 열쇠를 따로 하나 줄게요. 원영씨가 일찍오면 먼저 문을 열어요. 그렇게 할래요?]

 

원영은 웃으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땐 스물 아홉이 아니라 영락없는 아홉살 꼬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수빈은 원영과 같이 청소를 하고

원영과 같이 책정리를 하고

원영과 같이 커피를 만들었다.

수빈은 원영의 눈썰미에 놀라고 있었다.

무엇하나 놓치는 법이 없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바로 받아들이고 수빈 자신보다 더 섬세하고 야무졌다.

그래서 수빈은 원영이 좋았다.

비록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원영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걸 알수 있었다.

 

[원영씨. 몇 시간동안만 혼자 가게 볼래요?]

[어디 가실려구요?]

[네에. 오늘 갈 곳이 있어서요. 원영씨라면 안심하고 맡겨도 될 것 같은데...

내가 은영 언니에게도 따로 전화를 넣어 놓을테지만 혼자서 한번 해 볼래요?]

[제...가요? 혼자서?]

[네. 틀려도 괜찮아요. 편안한 맘으로 한번 해봐요.  오후 1시전에는 올게요. 그래줄래요?]

[함...해볼까요?]

[고마워요...]

 

수빈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줄리엣을 꺼냈다.

오랜만에 사동을 건다.

 

40여분을 달려 수빈이 간 곳은 납골당이었다.

산이 있고 들이 있고 들꽃들이 어우려져 있는 아름다운 그 곳에서 수빈은 차를 멈추었다.

드러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 곳에서 수빈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녀 엄마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엄마 안녕?  올 거란 건...알고 있었죠?  오늘 날씨가 아주 좋아요]

 

수빈은 들고온 장미를 영정앞에 놓았다.

그녀 엄마는 장미를 좋아했다.

수빈은 오랜 시간 그 곳에 서서 그동안의 일들을 대화하듯 말했다.

마치 그녀 엄마가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녀는 울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미소를  보이고 돌아선다.

 

[또 올게. .. 참.  보희가 곧 애기를 낳을 것 같애. 그리고...나 좋다고 해주는 남자가 있는데...... 그 얘기는 좀더 있다가...나중에 해줄게요.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갈게요... 안녕, 엄마....]

 

수빈은 밖으로 나왔다.

입구에 이르러 수빈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 아버지가 있었다.

말끔한 차림새로...서글한 눈빛을 하고 서 있었다.

알고 있다는 듯 그녀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말없이 두사람은 벤치에 앉았다.

바람의 향기가 상쾌하게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희미한 꽃내음도 있었다.

 

[어제도...왔었다. 네가 오지 않길래 오늘은 올 것 같았지...]

[... ...]

[얼굴이 좀...상했구나...잠을 자지 않은거냐? 몸이...전에 봤을때보다 더 야윈 것 같어.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다는 증거겠지...]

[전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었요. 마음 편히요...제 걱정 하시는 거...원치 않으니깐 신경쓰지 마세요]

[...세월이 많이 지났다...아직도 이 애비랑 대화할 마음이 없는게냐?]

[대화가 필요하세요? 무슨 대화요? 변명요? 아니오...그런 대화라면 전 사양할래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용서가 안되는 것이 있어요.

어쩌면...이해는 할 수 있어도 용서라면...그걸 바라신다면...

그렇다면 아빠가 절 잘못 보신거에요.

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전 ...그 여자를 새엄마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고 ...그 애도...동생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아빠가 저를 그냥 포기 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수빈아...]

 

그녀는 일어섰다.

 

[먼저 가 볼게요...]

 

수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삐 그곳을 벗어났다.

엄마의 사진 앞에서도 이제는 울지 않는 그녀인데

그 순간 왜 눈물이 나는지...

수빈은 그 이해할수 없는 감정이 견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