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앞까지 데려다 주고 그는 갔다.
그녀 수빈은 33평형 아파트에 혼자 산다.
그것은 그녀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혹시나....혹시나 먼후일 수빈에게 일이 생겨 돈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큰 아파트를 팔고 작은 아파트로 옮긴 후 남은 돈을 요긴하게 쓰라는 의미로 그녀 어머니는 일부러 큼직한 아파트를 그녀에게 사 준 것이다.
9층.
엘리베이트 문이 열리고 현관 앞에 멈추어 선 수빈은 한쪽에 조심스레 놓여 있는 쇼핑백 두개를 발견했다.
의아해하지도 않으며 그녀는 문을 열었다.
큼직한 쇼핑백을 베란다 한 쪽에 방치해 두었다.
안방에는 옷장과 침대, 작은 화장대가 놓여 있고
마주보는 방은 서재로 꾸며 놓았다.
또 다른 방은 그냥 비워 놓았다.
거실엔 소파가 있고 장식장 위에는 평면 티브이와 오디오. 그리고 그녀가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그녀의 집에는 화분이 많았다.
대부분이 산세베리아와 테이블야자수, 아이비였다.
베란다에는 작은 화분에 장미가 심어져 있었는데
형형색색의 장미꽃이 탐스럽게도 피어 있었다.
옷을 갈아 입고 수빈은 샌드위치 한쪽과 따듯하게 데운 우유를 들고 거실로 왔다.
티브이를 켰다.
영화 채널로 맞추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녹차를 타서 다시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러다 간혹 그녀는 그렇게 잠들기도 한다.
쇼핑할 기회가 잘 없는 그녀는 패션 잡지를 보고 대부분 옷이나 필요한 것들을 주문한다.
오늘도 그녀는 그렇게 소파에서 잠이 든다.
아침 8시에.
그녀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아침을 짓는다.
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이고 계란베이컨 말이를 만들고 시금치를 조무리고 김을 내놓는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한다.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걸레로 손수,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는다.
그리고 씻고...
대충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다.
현관벨이 울렸다.
은영 언니다.
원우를 수빈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녀가 몇동 몇층에 사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분명 그녀가 경계를 할 것은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그녀가 나오면 잠깐 얼굴이나 보고 싶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솔직히 그가 여자한테 그렇게 애절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학창시절에도 여자들이 좋다고 따라다닌 경험은 있으나 그 자신이 여자를 마음에 둬 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채 수빈... 그녀.
그녀의 무엇이 그를 사로잡는지 설명할수는 없지만 분명...
그녀에겐 무언가 있었다.
그녀가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언가 가득든 비닐 봉투를 양손에 들고 말이다...
뒤를 이어 은영 또한 박스 하나를 들고 나왔다.
어디론가 간다.
그의 눈이 쫓았다.
옆으로 가더니 주차장을 가로질러 노인정 안으로 사라졌다.
오래지않아 그들은 빈손으로 나왔다.
수빈은 은영과 무언가 몇마디 주고받더니 아파트 밖으로 사라지고
은영은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원우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앞 경비실로 다가갔다.
[오늘 노인정에 무슨 행사 있습니까?]
[행사요? 그런 얘기는 못들었는....?!... 아!]
수위는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웃었다.
[아! 채양과 부회장님을 보셨구나. 채양과 부회장님이 한달에 두번꼴로 노인정에 음료수와 과일을 가져다 줍니다. 그게 한 1년 넘게 계속 됐을껄요? 요즘 그런 아가씨 없습니다]
[아, 예.....]
원우는 차로 돌아왔다.
시동을 거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볼수록 괜찮은 여자군... 내가 보는 눈은 있는 건가?]
책방 문을 열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전화벨이 울렸다.
[네에. 도깨비 책방입니다]
-나다....-
순간 그녀의 인상이 차갑게 굳었다.
-물건을 잘 받았어?-
그녀의 아버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전활 않으면 니 목소리 듣기도 힘들구나. 그래, 밥은 잘 챙겨 먹지?-
[네. 걱정마세요]
-그래... 내가 반갑지 않다는 거 안다....일주일 뒤, 엄마 기일인 건 알지?-
[... ...!]
-그때 보자구나... 끊으마-
전화가 끊겨도 수빈은 한참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