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과 은영 언니는 10층, 전망좋은 창가에 자리하고 앉았다.
[오늘같은 날 비가 와야 분위기가 사는데... 안그래?]
우울한 건가... 무언가 외로운건가...아니면 아저씨랑 싸운건가?...
은영 언니의 표정을 보면서 수빈은 혼자 생각을 해 본다.
레스토랑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오늘...다른 때완 분위기가 다른데... 무슨 일 있으세요?]
수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은영 언니의 한숨이 이어졌다.
[꼭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 기분이 요즘 영 꿀꿀이네]
[그래도 무언가 원인 제공이 있을 것 아니에요?]
[뭐...원인을 찾자면 치과일이겠지. 산다는 게 쉬운 거 같으면서도 어려운 거 같어.
특히 남녀가 붙어 사는 경우는 말이야. 자긴 아직 미혼이라 그런 고민은 없지?
난 한번씩 해.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나한테 아이는 어떤 존재고 남편은 어떤 존잰지...
가끔 내가 아주 외톨이라는 생각을 할때도 있어. 외롭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고...]
[언니도 참...외로움은 누구나 타잖아요. 저도 외로움은 많이 타요]
[그건 자기가 지금 혼자 사니깐 당연한 것이고... 난 남편이나 애들이 옆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니깐.
남편을 다 아는 것 같은데도 낯선 타인처럼 보일때도 있고....
남편 또한 나를 다 아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니거든...
남자들은 말이지...여자들 마음은 잘 알면서 정작 자기 마누라의 기분은 헤아릴줄 모르더라는 거지. 마누라도 여자라는 걸 남편들은 잊고 사는 경우가 많은 거 같어. 돌아보면 마누라가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 ...!]
[바람피는 것도 그래. 지들만 바람 피는 줄 알지. 지들만 바람 피울줄 알고 마누라는 안 그런줄 알거든. 근데 의외로 남편 몰래 바람 피는 마누라도 많다는 거야.
남자들은 좀 지나면 들통나지만 여편네들은 완벽하게 바람 피고 다녀.
근데, 남자와 여자의 외도 차이가 뭔지 알어?]
[글쎄요....]
[남자는 순간적인 쾌락때문에 눈이 뒤집히지만 여자는 아니거든.
여자는 외로움이야. 다른 남자는 나를 여자로 봐주기 때문에, 외로움을 알아 주기에,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 주기 때문에 여자는 바람이 나. 알아 들어?]
[글쎄요... 솔직히 이해가 가지는 않아요. 결혼은 남녀가 만나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믿음이 중요하다고 봐요. 제 남편이 제 아내가 바람 핀다고 생각하면...
전 아마 돌아버릴 것 같은데...?]
[그래. 처음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스테이크가 나왔다.
은영 언니의 표정이 조금은 환해졌다.
듬직하게 고기를 썰어 입안에 넣고 부드럽게 씹는 은영 언니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알고 있어?]
[네에...]
수빈은 웃었다.
[한 10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하다보니 바람 피는 사람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더라.
잘하는 짓이란 소리는 아니고...그래, 그럴수도 있겠지...하는 생각.
하지만 그게 단순한, 지나가는 바람으로 끝나는 것이기를 바라지.
그렇다고 내가 치과 원장을 두둔하는 건 아니야. 그 남자는 절대 동정을 안 해.
왜냐, 그 남자는 자기 아내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잖아.
둘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모님을 보면서 얼마나 고소해 했겠냐고.
내가 생각해도 치가 떨리고 분한데 사모님은 오죽할까...]
[그렇군요...]
[한 집안의 기둥은 남자라고 하는데 그건 틀린 소리야.
여자야. 아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그 가정은 화목해.
남자가 잘못되어도 그 집안은 솔직히 별 탈없이 굴러가지만 아내가 잘못되어봐,
그 집안 개판 5분전이지. 가정은 남자가 지키는 게 아니라 여자가 지키는 거야.
남자들이 나가서 다른 여자에게 한 번 웃어주고 농담 한 번 던지는 대신 지 마누라 엉덩이 한 번 쳐줘봐, 그 느낌으로 여자는 일년을 버틴다구]
[......]
[남자들, 다른 여자들 이쁜 건 알면서 지 마누라 소중한 줄은 잘 몰라. 꼭 일이 터지면 귀한 줄 알지. 그러면 뭐해. 그 땐 이미 늦은 걸. 그러니깐 있을 때 잘 하라는 소리가 나오는거야.
여자들도 그렇고. 여자의 문제점은 남편보다 자식이 우선이라는데 있어.
근데 그건 틀렸어. 남편이 우선시 되면 자식들은 절로 따라오게 되는데 말이야.]
은영 언니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면서도 그 입으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