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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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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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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외출


BY 니르바나 2005-04-23

1


 


 


 

아내가 집을 비운 것은 오후 2시쯤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땐, 아내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화장대에는 아내가 사용한 향수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다.
언젠가 내가 아내의 생일 선물로 사 주었던 향수다.


 

나와 외출할 때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침대에는 아내가 벗어 던지고 간 옷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침대 위로 무거운 몸을 실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아내의 체취가느껴졌다.
누군가 그랬지, 부부는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관계라고.
나 역시도 그런 길들여짐에 익숙진 것이 아닐까.


 


갑자기 아내가 그리워졌다.
그녀는 누구를 만나러 간 것일까?


 


아내가 집을 비운 것은 오후 2시쯤이었다.


 


 


 


 

2


 


 

시장기를 느껴서 슈퍼에 다녀왔다.
컵라면과 캔 맥주, 그리고 담배 한갑을 사가지고 왔다.
가스렌지에 불을 켜 놓고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담배를 하나 물었다.


 

꼭 피기 위해서 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게 된다.


 

습관, 그러고 보니 나에겐 오래된 습관들이 많은 것 같다.


 


때로는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하나의 길들여진 습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다시 아내 생각이 났다.
아무런 메모도 없다.


 

아마도 그렇게 먼 곳은 가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면, 향수는???
아니다. 아내를 의심하지 말자.


 


 

'삐익…….'


 


주전자의 물이 끓었다.


 


 


 


3


 


 


후우, 후우
뜨거운 물을 부운 컵라면에선 김이 올라왔다.
아, 무언가 빠진 기분이다.
그래 맞아.


 

냉장고를 뒤져서 신김치를 꺼냈다.
아무래도 김치 없이 라면을 먹는 건 허전한 일이다.

허전함, 무언가 빈 느낌.


 

슈퍼에서 사온 캔 맥주의 뚜껑을 땄다.
시원한 맥주가 식도를 타고 뱃속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빈 느낌을 메우기 위해.


 


 

포만감.
공복을 충족시킨 만족감이 몸 전체에 전해졌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침대에 기어 올라가 몸을 뉘었다.
그녀의 향기가 코끝에 전해졌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찾아와
자장가를 들려준다.


 


그리고…….

 

 

 

 

4


 


 

내가 집을 나선 것은 오후 2시쯤이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망설였었다.
그를 만나는 일, 잘 하는 것일까?


 


 

거울을 보았다.
4년, 4년이란 시간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도 그럴까?
아니면, 나는 어떤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내 손은 화장대의 루즈를 집어들고 있었다.
화장대 옆에 놓여진 남편과 찍은 결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눈으로 쳐다 보지 말아요…….


 


 



 

5


 



 

그는 여전히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을 선호했다.
예전에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했는데.
지금은 내게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귀에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그가 유난히도 좋아하던 배우, 오드리 햅번이 주연을 했고
그녀가 직접 불렀던 영화의 주제가.


 


 

내가 너무 서두른 탓일까?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다.


 

늘 정시에 나타나는 그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나 보다.
아직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초조감, 입술이 마른다.
그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늘따라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느껴진다.


 


 


 


 

6


 


 


세련된 감색 정장을 입은 그가 물었다.


 

오래 기다렸어?


 


 

그는 변한 것이 없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지나간 세월 속에 변한 것은 나뿐이었다.


 

왜 이리 어색할까?


 

그에 대한 기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마주 하고 있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이제 내게는 너무 먼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7


 



 

오빠는 여전하네요.


 


난 아직 그를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엔 시간의 경과가 있음에도.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만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수줍게 웃는다.


 


그랬었지.
내가 한때 이 사람을 좋아했던 이유…….


 

저 순수해보이는 웃음이 좋아서였다.


 


 

식사 시켜야지, 뭘 먹을까?
먹고 싶은 걸로 시켜. 오늘은 내가 한턱 낸다.


 


메뉴판을 봤다.
나의 시선은 요리의 이름을 보기 보다는
그 요리의 가격으로 먼저 갔다.


 


처녀 시절에는 안 그랬는데,
불과 몇 년전에는.
이런 것이 아줌마 티를 낸다는 건가.


 

내가 망설이자, 그가 내 것까지 주문을 했다.


 


 

너, 이거 좋아했지? 우리 이걸로 하자.


 


 


 


8

 


 


자꾸만 나의 시선은 시계를 향한다.
집에 혼자 있을 남편 때문일까?


 

그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갸기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 여보, 설겆이는 내가 도와줄까?


 


불현듯, 남편의 목소리가 내 안으로 튀어 들어왔다.


 


달그락


 


순간, 포크를 놓치고 말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가 날 본다.


 


어색함.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 곳이 아닌데.


 


 

입에 맞지 않니? 다른 걸로 시켜줄까?


 


왜 일까? 순간, 그의 미소가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난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아, 아니요. 입맛이 별로 없네요.


 


그. 랬. 다.
스테이크가 입에 맞질 않았다.
된장찌개, 김장 김치, 흰 쌀밥……
이젠 그런 음식들에 길들여져 버렸다.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는 내가 좋아하던 요리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9


여전히 아내에게선 연락이 없다.

졸음을 쫓기위해 무언가 소일꺼리를 찾았다.
씽크대 옆에 빈 우유팩이 보였다.
가위를 가져 와 우유팩을 잘랐다.

서걱 서걱.

종이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린다.
종이팩을 잘 접어서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아내는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걸까?

세탁기에는 탈수가 끝나지 않는 빨래들이 있었다.
탈수 시간을 조정하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윙- 윙-

세탁기가 돌아간다.
세탁물과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빙글 빙글, 돈다.
나도 따라 돈다.

빙글 빙글
빙글 빙글


 


 


 


 

10


초인종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누구일까?
혹시, 아내가 돌아온 것일까?
서둘러 현관으로 갔다.

당신이야?

실망.
아내가 아니다.
반장 아줌마였다.
그녀의 손에는 인주와 고지서 뭉치가 들려져 있었다.

에구, 오늘은 아저씨가 계셨네?

적십자 회비를 받으러 온 것이다.
돈을 받는 동안,
시종 내 모습을 훔쳐보는 그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안. 녕. 히. 계. 세. 요.

그녀가 돌아갔다.
무언가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다.

5시,
그녀가 집을 비운지 벌써 3시간이 지났다.


 


 


 


 

11


채칵. 채칵. 채칵.

집안 청소와 설겆이, 그리고 빨래를 모두 끝냈을 때,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익숙치 않은 가사 노동에 지쳐 버린 것이다.
그녀는 이 많은 일들을 매일같이 하고 있었구나.


생각해보니,
그녀의 손이 예전과 달리 많이 거칠어 진 것 같다.
하얀 캔버스 위로 그림을 그려넣는 연필을 쥐고 있던 손이
이제는 걸레를 잡고 방 바닥을 훔치고 있다.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재능도 있었고.
대학도 미대를 나왔다.
지금도 가끔, 연습장에 스케치하는 그녀를 볼 수 있다.

아마,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4년, 4년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시간의 흐름이란 그렇게 빠른 것이다.


 


 


 


 

12


우산…… 우산이 없으세요?

내가 그녀에게 처음 꺼낸 말이었다.
봄이 끝나가는 5월,
마지막 주 화요일인가 비가 몹시도 내렸었다.

우리는 같은 건물에 있었다.
그녀는 3층 화실에서.
나는 1층, 옥외광고를 맡아서 하는 가게에서.

아내는 촛점없는 시선을 뿌연 하늘에 던진 채 망연히 서 있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나는 가게를 뒤져서
제법 여성스런 분위기의 우산을 찾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핑크색 자동 우산을.

우산…… 우산이 없으세요?

그녀가 나를 봤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까만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다.
마치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 다음에 할 말을 잊은 체,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우산, 제게 빌려 주실 건가요?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럼요, 빌려주고 말고요. 그럼요…….

시간이 멈췄다.

 

 

 

13


꼬르르륵.

오늘따라 유난히 식탐을 하는 것 같다.
아내도 없는 빈 집에서 입맛이 있을 리가 없는데,
위장에선 계속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배 고파요? 조금만 참아요. 금방 밥 차릴께요.

아내가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너무 익어버린 신김치, 참치캔, 멸치볶음……
있는대로 꺼내서 식탁에 올려놨다.
그리고, 아침에 먹고 남은 된장찌개를 데워서 저녁을 해결했다.

특별히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닌데
밥통에 남아있던 밥을 다 먹어치워 버렸다.

- 당신, 다이어트 좀 해요. 배 좀 봐봐,, 임산부 같아..

아내가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
다이어트, 불룩한 배, 임산부…….
임산부…… 임산부…….

우리에겐 아직 애가 없다.
집을 살때까지 애를 갖지 말자고 한 것은 아내의 생각이다.
물론 나도 동의를 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참았던 졸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점점, 점점…….



14


그와 레스토랑을 나섰을 땐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거리가 우리를 맞았다.

집을 나선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다른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저기…….

그가 나를 부른다.
망설이는 표정,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의 박동 소리가 빨라진다.
그가 다가온다, 가까이…… 가까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하얀 봉투. 디자인이 예쁘다.
봉투를 내게 준다.

나, 다음달에 결혼해.
와 주겠니?

다리가 풀렸다.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다행이다. 다행?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그가 청첩장을 내게 주며 다시 수줍게 웃었다.
왠지 그의 웃음이 어색하다.
나도 따라 웃는다.

그럴께요. 축하해요, 오빠.
자꾸 웃음이 나온다.



15


그가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지만,
끝내 사양하고 지하철을 탔다.

덜커덩 덜커덩.

열차가 흔들린다.
창 밖으로 보이는 불빛들도 따라 흔들린다.
그 모습은 마치…….
그래, 날 비웃는 것 같다.
비웃음이다, 비웃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3류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가
내게도 찾아 올리가 없는데.
하하, 정말 그런 것을 기대한 것일까?

아니야. 아니야…….




16


아주 잠시 동안 비웠을 뿐인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낯설다.
매일같이 보는 거리, 건물, 골목들인데.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슈퍼에서 나오던 옆집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 오시나봐요?

네.

그의 장바구니에서 고등어가 보였다.
남편도 무척 좋아하는 건데…….

아줌마, 고등어 얼마씩 해요





17


딸그락. 딸그락.

꿈결속에 듣는 소리같았다.
눈을 떴다.

딸그락. 딸그락.

아내가 돌아왔다.
설겆이를 하고 있다.
테이블 위,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가 보인다.


몸을 일으켜 아내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천천히.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그리운 향기가 나를 포근하게 만든다.

당신 왔어.

저리가요, 옷 젖는단 말이에요.

싫은 내색은 아니다.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 안았다.

저녁 먹었어요? 기다려요, 내가 당신 좋아하는 고등어 사왔어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돌아왔다는 사실이니까.

그녀의 외출은 이렇게 끝났다.






18


남편은 나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 것도…….

그는 내가 차려준 저녁상을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상을 치우며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애 하나 낳을까요?

남편이 웃었다.
수줍은 그의 웃음과는 다른,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깨달았다.
이 웃음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나의 외출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오늘이 지나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