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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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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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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이의 사랑


BY 에스더짱 2004-11-27

내 삶의 이야기.. 그것은 진실이 아니길 빌었다.

꿈이 었으면 제발 꿈이기를 간절히 원했던 어제도 지나갔다.

꼬리표...

성적처럼 따라다닐 나의 인생등수..

열등감에 쓰라리지만 이내 인정이란 친구가 등을 두드려 위로한다.

1999년 늦 가을.

탁...탁...탁탁탁..타 닥...탁탁탁.....

음~~ '그랬군요'. 탁타닥..타닥...

나름대론 빠른 타자 솜씨였다.

그렇다 할 친구도 이렇다 할 무엇도 없던 나는 늘 외로움에 굶주린 듯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바라는 실로 자신감없는 여우였다.

아우!~~~~~어디선가 늑대들은 잘 도 나타나 주위의 많은 여우들을 감싸고 안더만,

아무리 찾아도 아무리 둘러 봐도 없던 나에겐 그 명성높던 자존심은 온대 없고 그저 희망의 한 줄기 풀 뿌리 잡 듯 누군가 날 위하여....이렇게 외치고 있던거였다.

26살 한 해 도 이렇게 여전히 외롭게 가야하다니..

크리스마스를 함께 지낸 적도, 그 쓰디 쓴 커피를 행복의 맛이라고 음미 할 만 한 그럴싸한 추억도 없고..

어릴 적 부터 있던 자신감 결여에 대한 나의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선배이면서 한 동네 자매같았던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나의 외로움을 이겨 낼 비책이라도 알려 줄 듯 비장한 목소리.

"나온나~~"

마음은 별론 데 였지만 몸은 그 곳을 향했다.

집에 있어봐야 별로 이득 될 게 없으니..

컴퓨터 관련 학과를 졸업한 언니는 컴이 자신의 친구인양 즐기기를 원했다.

우리 두 사람 다 컴퓨터가 집에 없는 이유로 외출이 허가되는 특별함도 있었다.

 

만남.

 

가끔 있던 자유 중 하나 피시(pc)방. 우리 놀이터이기도 했다.

" 언니야 어딜 들어 갈꼬?"

"어 내가 가는 방에 들어 온나. 내가 방장아이가~"

언제나 그랬 듯 난 누군가 업고 가는 걸 좋아했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으니 실패 할 확률도 적은 방법을 선택하는 나의 나름대로 최선이었다.

혼자서 삽질 아닌 삽질만 해대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귓속말을 보냈다.

'뭐하세요?'

보통은 나이나 이름..뭐 그런 걸 물을텐데.

'그냥 있는데요.'

' 남들 하는 거 구경하고 있어요'

'그럼. 저랑 대화 하실래요?'

'........................................?'

어떻게 해야하나 망설이다가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 처럼 곧 허락하며 대화한다.

왜 그런거 있잖은가. "안 되요..되요.되요가 되요가 되는..."

재미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이 되어 줄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미친 듯 가까와 지려고 발버둥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도 전에.........

 

미혹

 

물살이 거칠다.

그렇지만 행복하다.

왜일까??

가만히 들여다 보면 혼자서 큭큭 웃음을 웃고 만다.

실 없는 사람이기 보다 바보에 가까운.

난 분변함을 잃은 채 빨려 들어가 남들이 싫다는 시골남자를 만났다.

지금 생각 해 보면 나의 어리석음이지만 그 때는 모든 것이 속임수 같은 것이었다.

난 외로움이라는 올무에 진짜를 바라보지 못하는 미혹에 유혹되고 만 것이다.

 

임신

 

무엇이 급했을까,지난날 나의 모습은 지성인이기 보다는 누군가 날 잡아먹길 바라는 토끼같은 온순함 속 여우였다고 할까?

그 것 보다는 흔히들 말하는 섹스가 어떤 것인지가 더 궁금했을 지도 모른다.

별로 맘에 들지도 않는 남자와의 관계라니.

내가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어리석음을 누군가 빨리 깨우쳐 주었더라면,아니

꿈처럼 확~고 깨는 순간만 있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여기에 없었겠지.

그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범위에 사람이었다.

예컨데 버스도 잘 안다니는 시골이 집이라던가, 나보다 키가 훨 작다던가,남자답다라기 보다는 컴플렉스때문에 배려없는 무질서적 행동파라던가,내 눈에 비친 그는 알 면 알 수록 환경적 미성숙대표주자 같았다.

 

약혼

 

축복은 이미 세월따라 건너간 만날 수 없는 하늘과 땅 같았다.

눈물뿐인 약혼식을 올렸고 교육이 미치지 못한 시댁과의 갈등은 나 자신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린 어울리지 않는 모습과 일그러진 얼굴로 약혼식의 사진을 찍었다.

하얀 드레스가 낯선 내 모습에 입덧아닌 오심을 일으키고 있었다.

 

선택

 

시댁에 들어가 하루 하루 곤욕을 치르며 살았다.

임신 탓인지 잠이 쏟아져 아무 일을 할 수 없어도 시아버님의 성격은 이런 날 더 힘들게 했다.

그리고 지쳤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눈물때문에 이를 악물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 한다던 말..누가 했는가!

거부 할 수 없는 운명의 오점이 되었다.

여기서 무너질 순 없다.

 

갈등

 

남편과 지내기는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다정다감함이 없다는 것.

늦은 귀가에 서로 어색하다는 것.

귀가 즉시 티브이를 보면서 늦은 잠을 청한다는 것.

서로 별로 대화가 없다는 것 아니 관심이 없다는 것.

사랑하려고 잘 해 볼려고 노력하지만 좀 처럼 쉽지 않다는 것.

아내인 나보다는 남편의 가족이 우선이라는 것.

언제나 내게 아낌없는 돌을 던진다는 것.

운전만 하면 헐크가 되어 어디선가 오는 계시를 받은 듯 임무를 완수 하고 만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던 터였다.

나처럼 쉬운 여자는 아무하고도 잘 수 있는 뭐 ' 거시기'한 여자라고 해야 한다나?

날 무시하는 이유가 바로 남편이 말하는 믿을 수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남자들이 말하는 순결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지 않는 것인지.

당시는 믿고 좋아라 하면서도 살면서 깨어지는 건 진짜도 가짜란 말인가?

어이없는 실수가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만들었다.

어둠은 오고 시골의 아침은 이르다.

 

제왕절개

 

정상분만을 할 수 없단다.

산모의 키로수는 늘어도 아기는 여전히 너무 작단다.

2.4킬로그램이라나?

미안해지지만 두렵지만 수술대위로 올라갔다.

추웠다. 떨렸다.

두렵고 외로웠다.

모성애가 숨쉬고 있었다.

눈을 뜨니 남편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가락하나가 보이지 않던 초음파 때문일까?

손가락이 다있냐고 묻는 내 물음에 남편은 또 돌 던지기 놀이를 한다.

"난 하나도 안 닮고 너만 닮았어"." 넌 혈액형이 뭐냐?"

"O형이던데. 나도 O형이거든? 너 O형 맞냐?"

눈을 감고 뜨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기를 간절히 원했다.

곧 잠이 들었다.

 

병실

 

이인실이었다.

두 번째 출산한 산모와 같은 한 방이었다.

그 집 남편은 휴가를 일주일 청했단다.

아이를 놓은 뒤 흔적을 해결할 방법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늦은 퇴근을 하는 남편을 기다린다는 건 차라리 혼자 해결하는 것보다 쓸쓸하다.

첫 가스가 나오고 배고픔을 느껴도 먹을 수 없다.

아무도 날 위해 기본 수저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친정이 가까웠더라면 이렇게 까지 힘들지 않았을텐데.

난 요즘여자이기 보다 한 때 과거에서나 보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었다.

이틀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산모가 놀라워 했지만 젊어서 그런 것 인  양 과시 하 듯 오버했다.

남편이 왔을 때 뭘 해서 힘들었는지 입술이 부르터있었다.

한 숨만 나온다.

 

첫만남

 

아기를 처음으로 안았다.

너무 작고 이뻤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봇 물 처럼 쏟아졌다.

서러웠다.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으니 얼마나 서운했겠냐만은 난 손가락 모두 열 개 인 것이 그저 감사했다.

아기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한 가족이 되었다.

또다른 행복이 날 찾아왔다.

그에대한 불만이 많은 남편이었다.

아기 밖에 모른다면서 내게 돌을 던진다.

돌을 맞아도 좋았다. 함께 할 누군가 있다는 건 나의 빈 자리를 채워 주기에 충분했으므로.

우린 이렇게 이어졌다.

모녀란 세상이 만든 이름으로.

한 나무 한가지 열매로.

 

존재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난 아무 곳 도 갈 수 없는 엄마가 되었다.

시장을 가려고 차를 타기라도 하면 시어머니 전화에 놀라서 갈 길을 돌아 온다.

마음은 타는 듯 하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엄청 자지러지게 울면서도 (곧 경기할 것 처럼) 넘어가진 않고 새 파래진 얼굴로 도움을 청한다.

아이를 셋 키운 시어머니께서도 감당이 안 되나보다.

그렇게 우는 아기를 달려가 금새 안으면 내가 엄마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그치고 평온해진 얼굴로 잠을 잔다.

신기하다고 해야하나? 어이없다고 해야하나?

다들 몇 번씩 당하고 나니 화장실도 혼자서 못 가게 한다.

아기의 존재가 불안함 보다는 날 인정해주는 유일한 증인처럼 특별하다.

 

이혼

 

친정부모님의 적극적 요구로 이혼을 했다.

내가 원했던 일이었지만 가슴은 아팠다.

꿈이기를 간절히 꿈이었으면 꿈일 꺼라고 현실이 아름답길 바라고 바랬다.

재판의 길을 멀고 험했다.

결국 승소를 했고 아기의 몫도 고스란히 내 것이다.

나의 짧고도 긴 여정은 첫아이를 가지면서 많은 것이 변하고 잃었다.

하지만 소중한 깨달음은 영원히 삶의 모티브며 베이스가 됐다.

반쪽짜리 날개.

아이가 달고 다니는 어깨죽지 보드라운 사랑이다.

아버지의 자리도 몫도 해 줄 수 없지만 그런 아이가 내게 소중한 인격으로 형성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옴 마~~"혀 짧은 소리로 처음 날  불렀을 때도. 지금도..

4월 1일 처음 뒤집었을 때도. 10월 1일 처음 발을 디디며 걸었을 때도.

난 행복하다.

지금은 고집이 센 미운 다섯살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도 엄마고 무서운 사람도 엄마란다.

참 아이러니 하지..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함께 한다는 것. 내 마음의 가훈은 너로 인해 행복하고 너이기에 사랑해이다.

가끔은 아빠를 찾아서 내내 미안함으로 가슴이 미어지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려 주었다.

우리 아기가 오늘 출근을 해야 하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저녁에 나랑 대화 좀 하자. 날마다 난 춥거든? 그러니까 따뜻하게 안아줘."

"사랑해~~ 하고 말해봐. 그럼 나도 사랑해 할께. 추우니까 옷은 따뜻하게 입고 나가"

삐걱거리는 반쪽떨어진 날개를 스스로 고쳐 보기라도 하는 듯 날 위로한다.

아빠 없는 자신이 불쌍한 게 아니라 남편없는 내가 안쓰러운 듯..

세상엔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다는 현실과 원하지 않는데도 받아야 하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스스로의 선택적 값과 몫 인 것이다.

그러나 고통뒤에 뜻이 있는 분명함을 보았다.

내게 첫아이는 반쪽 짜리 날개로 운명이 되어버린 가슴아픔이 있지만 그 보이는 날개를 고쳐 보려는 아이의 순수한 사랑도 함께 성장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아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면서 해 맑은 얼굴을 가슴에 묻는다.

오늘도 내 딸 희야는 고집을 부린다.

그 고집속에는 딸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있다.

내게 원하는 것들이..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엄마 때문에 내가 속상하잖아, 주먹 쥐고 아자! 하자'하고 사랑을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