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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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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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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의 추억 ( 2 )


BY 비우기 2004-11-25

혼인의 추억 ( 2 )

********

사실 이 결혼은 나 같은 고수가 작전을 펴야 할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 당사자인 내가 작전의 고수이니 어쩔 수 없이 고수가

작전을 짤 수 밖에 없었다.....

이 결혼의 조건들을 세밀하게 검토를 해 보니.....

양가의 부모들이 모두 자기의 자녀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나의 경우는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형인 내가 먼저 결혼하기를 희망하는 것이지만.....

......

여자의 경우에는..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실크 블라우스에 정장 투피스를 사 주면서까지.....

선을 보게 하는 것을 보면 부모가 강력하게 결혼을 시키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저녁..그 집에서 하루를 더 자는데.....

시집을 간 언니가 영암에서 찾아와서......

그 날 있었던.....단독회담의 진행 상황을 브리핑 받느라.....

밤늦도록....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장인 후보 님과 아침을 같이 하라고 하여.....

안방에 들어가니.. 그 분은 40대 초반의 젊은 모습인데..

나의 고향하고....아버지의 함자만 물어본다.

.....

나중에 대전으로 돌아가는 버스 터미널에서.. 여자에게 물어보니.....

자기 아버지가 두 마디나 물어 본 것은.. 내가 맘에 든다는 표시라고 한다.

물론 이 말의 진실 여부는 확인 할 수가 없다....

아니...이 여자...나한테 시집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아녀.....

.....

하기야 여자 쪽은.....큰처남 후보의 의견이 가장 비중이 큰데.....

그 친구는 몇 년 동안 나를 몰래 관찰하였고.....

자기 동생의 짝으로 삼으려고.. 1년여 전에 내 사주팔자를 물어 보았으니.....

......

여자 쪽에는 작전에 지장을 주는 요인이 거의 없어 보였다.

......

문제는 내가 빈털터리라는 것이다.

......

빈털터리가 꼭 결혼을 성공시키려면.....

......

이 작전은 다음 주에 있을 다자 회담의 결과.....

우리 부모님의 결혼 허락을 받는 것이 1 차 적인 목표이다.

......

우리 부모는 나보고 장가를 가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내가 결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는 내가 결혼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였을 때에.....

어느 정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지.....몇 주도 안 되어.....

결혼을 하려고 한다고 하였을 때에.....우리 부모님의 반응은 어떨까.....

.......

이 1차 작전에 성공하는 비결은

......

우리 부모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

그런데 빈털터리가 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결혼을 할 수 있는가.....

.......

물론 이것은 2차 작전을 수행하면서..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우선은 1차 작전을 성공시키는 것이 급선무.....

.......

우리 부모님은 내가 번 돈을 전부 동생들의 생활비로 내 놓고 있어서.....

내가 빈털터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뭔가가 있어서.. 부모의 도움 없이도 장가를 간다고 하면.....

부모는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을 것이다.....

.......

그러려면

......

일단은 다음 주 회담 비용을 내가 다 준비하여야 하고.....

그 때에 은연중에 나에게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하고.....

나의 결혼에는 집에서 전혀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드려야 한다.

.......

그러려면 물론 공작금이 필요하고.....

내가 돈을 써야할 일이 있을 때에 항상 그러했듯이.....

또 직장 동료에게 빌려야 한다.

.......

그것도 이번에는 좀 많이.....

......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왜.. 돈을 빌려 가며..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다.....

.......

 

 

********

목포에서 대전으로 가는 직행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나는 공작금을 조달할 전략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같은 실의 동료들에게서.. 매달의 용돈을 꾸어 썼는데.....

이번에는 그 규모가 더 커야 하고.....

좀 더 많은 돈을 조달하려면.....어떻게 하여야 할까.....

......

나는 그 당시에 대덕 연구단지에 있는 핵연료 개발공단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 곳에는 회사 바로 정문 앞에 독신료가 있고.....

한 방에 2명이 같이 생활하였다.

독신료에는 근 100여명이 있었는데.. 저녁 시간에는 휴게실에서..

TV도 보고.. 당구도 치고.....또는 어느 한 방에 모여 술도 마시고 한다.

내가 맞선을 보고 돌아온 것을 아는 동료들이.. 몇 명 내 방에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벌어지며.. 내가 하는 브리핑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최대한 자세히 회담 진행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모두들 재미있다고 야단이다.

하기야 재미있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재미가 없으면.....

공작금 조달 작전에 지장이 오지 않겠는가.....

나의 이야기에 재미있어 하는 녀석들의 얼굴을 보니.....

공작금 조달은 문제없을 것 같다.....

......

나는 다음 날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회담 결과를 알려주고..

집에 연락해서.. 다음 주에 목포로 양가 맞선을 보러 가야 한다고

전하라고 했고.. 동생은 그 날 저녁에 전화로.. 내가 토요일 날 내장사로

와서.. 부모님과 함께.. 광주 외갓집에 들러.. 거기서 자고..

일요일 날 목포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고 알려준다.

광주는 외할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그렇지 않아도 문병을 가려고 했단다

.....

외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신 것은 안되었지만.....

이 소식은 나의 작전을 수월하게 했다.

......

부모님과 나는 정읍 시장에 가서 외할아버지께 드릴 고기를 샀는데......

내가 소꼬리가 기력이 쇠약해진 외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며..

하나를 사고 돈을 내자.....은연중에 부모님들이 안도하시는 기색이다.

하기야.....소꼬리 하나 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

비싼 소꼬리를 선뜻 사는 아들이 대견한지.. 아니면..

내가 외할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이 대견한지.. 아니면..

수년만에 처갓집에 가는 자신이 대견한지 아버지는 매우 기분이 좋으시다..

.....

외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병이 깊어.....

거의 몸에 살이 없는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 계신데.....

내가 목포로 선을 보러 간다고 하니.....

기력이 탈진된 상태에서도.....색싯감의 생년월일을 묻는다.

외할아버지는 한학에 정통하셔서.. 건강하실 때에는.....

다른 사람의 사주를 잘 풀어 주셨고.....

우리집 식구중에서는 내 사주가 가장 좋다고....

나를 특별히 좋아하신다.

내가 색싯감의 사주를 모른다고 하자.....이번에는 성을 묻고.....

내가 정씨라고 하자.....본을 물어 보신다.

그래서 다음에 와서 알려드린다고 하였는데.....

그런 일이 있고 겨우 4일 후에 외할아버지는.....

내가 사간 소꼬리로 만든 곰국을.. 별로 드시지도 못하고.....돌아가셨다.....

혼인을 앞두고.....상가에 가지 말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나는 외할아버지의 영정을 보며.....

살그머니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제 색시깜은요..... 나주 정씨이고요.....

생년월일은 모년 모월 모일 모시이래요.....

그 집에서 궁합을 보았다는데요.....

겉궁합은 조금 나빠도.....속궁합이 아주 좋대요.....

......

**************

 1979년 1월 7 일.....

34년 만에 목포에 온 부모님은 감회가 새로우신 듯.....

터미널에서 나의 후보 처가 집이 있는 목포고등학교 앞까지 오는 동안.....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 부모님은 고향이 줄포이고.....같은 소학교를 다녔는데.....

아버지는 둘째 이모와 같은 반이었고.....어머니는 큰 고모하고 같은 반이었다.

그 후에 고창 고보를 졸업하신 우리 할아버지가 쌀과 돈이 몰리는.....

목포로 가서 북교동에 자리를 잡고.....정미소를 운영하셨고.....

장성한 자식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는데.....

아버지는 지금의 덕수상고.....큰 고모는 이화여전.....큰삼촌은 연희전문을 나왔다.

아버지는 학교를 졸업하고.....무안군청에 다니셨는데.....

그 때에 이화여전에 다니던 큰 고모가 방학 때에 줄포에 놀러 와서.....

소학교 때에 짝꿍이던.....어머니 집에서 자면서.....

야.....너.....우리 오빠한테 시집와라....하고 꼬드겼고.....

그래서

어머니는 목포로 시집을 왔고.....

신혼을 목포에서 2년 여 지낸 후에.....

해방직전에 군산으로 이사를 했다.

......

*****

후보 처갓집에서 있었던.....상견례는.....

약 20분만에 간단하게 끝났는데....양가 부모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집사람 후보가 다과상을 들고 와서 인사를 하고.....

많이 변한 목포의 모습 이야기 잠깐 나누고.....

......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

나는 부모님에게 옛날 사시던 동네를 한번 둘러 볼 것인가 하고 물으니....

아버지가 선창으로 가자고 하신다.....

우리 집은 그 당시에 10여 년 간 각 종 음식점을 했었는데.....

아버지는 모든 재료를 손수 사 오셨고....

특히 군산에서 식당을 할 때에는.....

새벽에 선창에 나가.....싱싱한 생선을 사는 것을 좋아하셨다.

내장사로 이사한 후에는 선창에 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목포에서 살던....먼 먼 옛날의 추억보다는.....

선창에서 싱싱한 생선을 사는 실리를 택하신 것이다.

역시 상고 나오신 분은 실리에 밝아......

특히 오늘은.....

아들이 팍팍 돈을 써야 되는 날이 아닌가......

......

나는 군자금을 충분히 빌려온 것에 안도를 하며......

부모님을 선창으로 모셨고.. 아버지는 오랜만에.....이런저런 생선을 고르고

흥정하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나의 양손과 어머니의 양손이 잡다한 생선 보따리로 가득 차갈 즈음에.....

아버지가 문득.....

애야.....니 색시 깜이 너무 깜해서 흠이다.....

하시고는 이런 흠을 눈감아 주려면......

내가 돈을 좀 더 써야 한다는 듯이.....다른 물건을 흥정하신다......

.........

아니 내 색시 깜이 그렇게 깜했었나.....

나는 아무리 내 기억을 더듬어 봐도.....

...........

노랑머리에.....구멍 뚫은 귀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사실 내가 군자금을 충분히 준비한 것은.....

내 색시 깜의 이런 흠을 무마하기 위해서 이었고......

상견례를 짧게 한 것도.....

색시 깜의 흠을 조금만 보게 하기 위해서 이었는데....

아버님은 잠깐 사이에 이런 옥의 티를 발견하시고......

피부색부터 흠을 잡으시니.....

아니.....이거 내 군자금이 바닥나는 것 아녀......

아니.... 아버지는.....상고까지 나오시고도.....

흑진주가 더 비싼거 모르시나벼.....

..........

************

이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데.....

아버지는 더 이상 살 것이 없는지.....

어머니 손에 들린 보따리들을 받아 들고.....터미널로 가자고 하시며.....

좀 까매서 흠이지만.....다른 것은 다 맘에 든다.....

그 집 어른들하고 상의해서 결혼 날 잡아라.....

양석이( 내 바로 아래 동생 )가 4월에 결혼을 한다니.....

너는 그 전으로 잡아라.....

약혼식은 오늘 만난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려라.....

하시고는......두 분이 무엇이 그리 좋은지.....빙글빙글 웃으며 가신다.....

......

아마 마음 속으로......

야..... 너도 살아봐라.....

진주는 흑진주가 더 좋으니라.....하시는 모양이다.

사실 우리 어머니도 흑진주인데.....아버지는 어디를 가나.....

어머니 곁에서 한시도.....떨어질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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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의 1차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고.....나는 다시 처갓집으로 가서.....

승전보를 전하는 용사인양.....의기양양.....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결혼 날은 이쪽 어른들이 정해서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의 작전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사전 포석으로.....

내가 회사 일로.....조만간 프랑스로 파견을 가게 될 지도 모르는데.....

배우자를 초청하려면..

혼인 신고를 빨리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이야기 하였고.....

여자 집에서도 이왕 결혼을 하기로 했으니.....

혼인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바로 부쳐주기로 했다.....

******

나는 약혼자의 손을 잡고 터미널로 가면서.....

예쁘게 방실거리는 흑진주를 보고 또 보았다.

......

그리고 내 결혼내정자로 확정되어서인지.....

노랑머리도.....뚫린 귀에서 달랑거리는 귀걸이도.....

너무 나도.....흑진주하고 잘 어울렸다.

아마 아버지도.. 우리 어머니가 조금만 젊었어도.....

귀도 뚫어주고.. 머리 염색도 시키고.....

그런 것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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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공 : 비우기 ( http://www.beug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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