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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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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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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 (1)


BY bebestar 2004-09-07

민주는 오늘도 여느날과 다름 없는 아침을 맞이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그런 소란을 피웠던 남편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깨우고,  아침을 챙겨주고, 옷을 꺼내 주고, 잘 다녀 오라는 인사도 문앞까지 나가서  해주었다.

그러고는 수아와 수민이를 깨워서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보낼 준비도 했다.

어제처럼 이 날 아침도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아침 시간이 지나 가고 있었고 수아를 마지막으로 집에 혼자 남게 된 민주는 창을 활짝 열어 아직은 이른 5월의 봄 향기를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 있었다.

전화 벨이 울린 건 청소기의 전기 코드를 꽂고 막 청소를 시작하려던 그 때 였다.

출근 전 까지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의 여유 밖에 없어서 마음이 급한 민주로서는 아침시간에 울려대는 전화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못들은 척 하려다가 한 숨을 쉬고 수화기를 들었다.

친정 엄마 였다.

민주에겐 항상 따뜻한 햇살 같은 존재.. 엄마..

수화기 너머로 들려 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민주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 아직 출근 안했구나.

지금 전화 받을 시간 있니?  나중에 할까?"

"아니요. 괜찮아요. 청소 해두고 출근 할까 했는데 퇴근하고 하지 뭐.

어쩐일이세요. 이렇게 일찍.. 혹시 아빠가 안좋으세요?"

석달 전 지병인 고혈압으로 인해 뇌경색 증상을 보이시던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인한 편마비 가 진행되며  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부터는 가족들 모두가 긴장감 속에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이른 아침에 이렇게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오는 날이면 혹시 아빠께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닌지 가슴부터 쓸어 내려야 할 때가 많았다.

"아니, 아빠는 괜찮으시다..저..

아빠가 아니라 너희가 괜찮은가 하고 전화를 했다.

아침에 이서방 얼굴이 영 까칠한게 안 좋아 보여서 말이지..

뭘 물어도 아무일 없다고 하기는 하는데 영 분위기가.. 혹시 둘이 싸웠냐?"

..후..

분명 무슨일이 발단이 되서 싸웠다고  어제 저녁의 일을 엄마께 먼저 말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그 일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면 엄마 앞에선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했었어야 한다는 생각에 민주의 기분이 언짢아 졌다.

그래도 생면부지인 남보다는 가까운 사위가 더 신경써 줄꺼라는 생각에 태환이 다니는 병원에 아빠가 입원하고 난 뒤 부터는 무슨 죄인이나 된 것 처럼 태환의 작은 감정의 변화에도 눈치를 보는 엄마때문에 민주의 맘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어제처럼 그런 말도 안되는 일로 사소한 싸움이 있었던 날은 아침에 맨 처음으로 태환의 얼굴을 대해야 하는 엄마 생각에 맘이 더욱 더 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 이서방이 뭐라고 해요?"

"아니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아침에 병실에 올라와서는 대뜸 그러잖아. 너희집에 전화 한 번 해보라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않고 어제 별 것아닌 일로 네게 화를 좀 냈는데 자기는 화가 나서 막 소리 지르고 그래도 나중에 가서는 너한테 찍 소리도 못한다면서 아마 네가 많이 삐져있을꺼라나 뭐라나 ..

말하는 상을 봐서는 심하게 싸운것 같지는 않은데 자꾸 전화 한 번 해보라고 다그치는 통에 지금 네 아빠 아침 드리다 말고 너한테 전화 하는 거야.

뭐 별일은 없는 거지? 어제 저녁에 심하게 싸운건 아니지?.."

무슨말을 했는지 어떤 거짓말로 어제 상황을 둘러 댔는지 수화기를 내려 놓은 지금 민주의 머리 속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하얀 백짓장이다.

 

어린시절 민주에게 있어 엄마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누구나 다 엄마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느낀다고 하지만 민주가 느끼는 엄마는 그저 응석을 잘 받아 주는 그런 보편적인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었다.

높고도 튼튼한 성벽..

아무도 감히 민주를 해하지 못하게 지켜주는 바람막이. 바로 그것이었다.

7 살, 어린 나이에도 자기가 혼자 버려졌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었던 민주로선 따뜻하게 그녀를 안아주는 엄마의 품이 다리를 펴고 쉴 수있는 유일한 장소였던건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고된 시집 살이...

여자의 적은 여자들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참 우습지만 너무 맞아 떨어지는 말...

민주가 고등학교 1학년 되던 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민주의 엄마와 할머니도 그 말에 수긍이라도 하듯 하나에서 열까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해 서로를 탐탁찮아 하며 사셨다.  

그 고부 갈등의 중심엔 항상 민주가 자리잡고  있었고 할머니의 그 매서운 기세에서 무슨 일이든 민주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기 위해 힘들어 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기가 어른이 되면 절대 엄마를 울게 하는 일은 없을꺼라고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다짐을 했었는지...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인 아버지께 시집을 온 엄마는 청상에 홀로 되신 할머니와 시누이 둘, 그리고 열 세살이 차이나는 어린 시동생들과 단칸 셋방에서 신접 살림을 차리셨다.

누구라도 어느것 하나 풍족히 누리며 살 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처녀때는 재산 꾀나 있었던 친정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고이 자랐던 엄마가  아빠만 믿고 따라온 시댁은, 말 그대로 빈민촌의 삶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고 한다.

큰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온 가족을 다 어깨에 지고 살아야 했던 삶..

하지만 가세가 기운다고 시어머니의  기세까지 꺾이는 건 아니었던지 손이 귀한 집에 시집을 왔으니 대를 이으라는 할머니의 불호령에 먹고 살기가 빠듯한 그 상황에도 무턱대고 아기를 가졌고 첫 아이를 낳았으니 바로 민주의 언니 민정이였다.

아무리 아들이 급하다고 하지만 할머니로선 처음으로 품에 안아보는 친 손녀였던 터라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고개도 못드는 엄마를 산후조리에 보약까지 지어주며 다음에 아들을 꼭 낳으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셨단다.

하지만 이듬해 추석을 잘 지내고 다음날 태어난게 또 손녀 였으니..

집에서 애기를 낳고, 딸인걸 확인한 할머니께서는 미역국은 고사하고 방에 엉망으로 흩어져 있는 태반조차도 처리를 해 주지 않아 엄마가 갓 태어난 민주를 방에 혼자 두고는 울면서 부둣가에 태반을 버리러 갔었다는 얘기를 하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할머니를 야속해 하던걸 민주는 기억하고 있다.

아니 굳이 엄마의 그런 기억을 빌리지 않더라도 민주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기억은 민주를 보던 할머니의 그 서늘한 눈빛 만큼이나 시리고 차가웠었다.

언제나 민주를 대할때면 같은 남매간인 언니나 남동생과 얼마나 많은 편애를 하셨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는 어린날의 작은 추억에서 조차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에 이르러서는 서릿발 같던 할머니의 그 눈빛이 기억나 온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을 느꼈었다.

살림이 그리 풍족하지 못했던 관계로 민주의 엄마도 무슨 일이든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부업을 항상 찾아서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고, 민주가 일곱 살 되던 해에는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작은 옷 가게를 차려 난생 처음 장사라는걸 시작 하게 되었다.

가게를 시작하며 엄마는 자연히 집안 일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고, 그 빈자리를 할머니가 대신 하면서 민주의 성격도 조금씩 변해갔다.

할머니가 집안에서는 어른이셨던지라 손님이나 친척이 집을 찾아 올때는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민주네가 아이가 셋이나 되는 걸 알고는 항상 과자를 사들고 오셨다.

하지만 할머니께선 그 것을 할머니의 장에 숨겨 놓으셨고 그것을 조금씩 풀어 놓을라치면 민주에겐 단 한번도 언니나 동생과 같이 앉아 그것을 나눠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항상 집안의 장손인 동생이 가장 먼저 먹을 수 있었고, 그 다음 차례가 언니 민정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먹다가 맛이 없다고 내팽겨치는게 있으면 그걸 주워다가 선심쓰듯 민주앞에 내미는 것이다.

단지 과자 뿐만 아니라 장난감이든 반찬이든 항상 우선순위는 동생이었고, 다음은 언니 민정이었으며, 여분이 있다면 마지 못해 민주에게로 차례가 돌아왔다.하지만 그나마 그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단지 할머니가 원하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 아빠도 없는 그 공간에서 할머니가 민주에게 가하는 정신적인 학대는  어린 나이의 민주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분명 민주가 원해서 여자로 태어난 건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그 일로..

그녀에겐 어떤 방식으로든 선택의 기회라는 건 있지도 않았던 그 일로 ...

그때 부터 였었다. 민주가 가위에 눌리는 그런 꿈을 꾸기 시작한건...

모든 역성을 다 받아줘서 막무가내인 동생과 작은 다툼이라도 있을라치면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할머니께서 매를 들고 나타나서는 벌을 세우셨다.

민주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동생이 뺏을려고 들어도 그걸 주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선 안된다. 그것이 처음부터 민주 것이었어도 상황은 별반 달라 질것이 없었다.

할머니 하면 떠오르던 회초리. 어린 대나무를 끊어서 만든 매. 직접적으로 매를 맞은 적은  없었지만 그냥 허공에 휘둘러 댈 때 나는 소리는 그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민주가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기세에 눌려서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방 한쪽 구석에 손을 들고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할머니의 노여움이 풀릴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2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그런 불공평한 시간을 지나면서 민주는 느꼈다. 아니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건 내것이 아닌건 절대 탐내지 말자. 절대 탐내지 말자. 절대..'

엄마가 장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민주는 성격은 꽤나 밝은 편이었지만,그런 시간들 이후로 조금씩 자기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기를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표현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지만 표현을 해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날이 더 많았던 탓에 그녀는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가게를 접은 엄마가 살림을 다시 맡아서 하기 시작하면서 2년  동안에 너무나 변해버린 작은딸을 보며 '다시는 널 혼자 두지 않겠다'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민주에게 네가 하고 싶은건 뭐든지 해주겠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민주는 피아노를 배울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 위복..

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깊은 배신감 때문에 넉넉치 않은 살림살이였지만 그렇게 민주는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쓸데없는 계집애한테 돈을 쓴다고 엄마의 결정에 반대를 하면 할 수록 엄마는 보란듯이 더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결국 피아노도 갖게 되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 생긴다는 것..

그건 동생의 것도 언니의 것도 아닌 민주만의 것이었다.

그때부터 민주에겐 피아노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시간이 흘러 그것 마저도 자신이 탐내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한채 민주는 서서히 피아노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