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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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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근 중 1


BY 수미니 2004-10-31

 

13.    결근 1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가 어두컴컴한 아파트 안을 가득 채운다.

벌써 삼일 결근 중이다.

아파트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닫아 내리고 차단용 커튼까지 철저히 내리니 실내엔 하루종일 어둠만이 넘실댔다.

가끔씩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와 자동응답기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남기는 메세지를 꿈결에서 듣듯 그동안 무시해 왔다.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가끔 독한 술병만 비워대며 침대에서 뒹굴며 지냈다.

아무 일도 하기 싫고 아무 생각도 없이 자학하며 그냥 멍하니 그렇게 식물인간처럼 3일밤 3일낮을 집안에서 웅크리고 보냈다.

술기운이 깨는듯 하면 정신이 드는 것이 두려워 마시고, 마시며 너무 많이 마셔 텅빈 위가 부글대기 시작하면서 시큼한 위산이 목구멍으로 밀려 오를 때까지 참았다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지면  그때서야 화장실로 기어갔다.

변기 뚜껑을 열고 고개를 안으로 박고는 벽을 긁어 내기라도 하듯 꽥꽥대며 하얀거품을 토해냈다.

내보낼 음식물이 없으니 그저 비명지르듯 경련하며 위로 신거품만을 밀어 올리는 위는 독한 알코올의 갑작스런 침입에 아마도 충격을 받아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으리라.

 

미안하다, 위야. 조금만 참아라. 그냥 같이 죽어 버리자. 쫌만 기다리라고.

 

변기 뚜껑을 열고 얼굴과 머리카락이 콧물, 눈물, 토사물로 범벅이 정도로 실컷 토하고 나면 힘없이 그대로 변기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벽에 기댄 줄줄 흘러 내리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속의 액체란 액체는 밖으로 쏟아져 나와  바짝바짝 말라가는냥 목구멍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은데도 눈구멍에서 짭짤한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 내리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회사 동료들로부터 당하는 중상모략이나 인신공격 때문에 이런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비참한 생각이 들어, 그러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 때문에 잘못된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절망감에 그저 미칠 것만 같았던 것이다.

나이 서른에, 독신으로, 프랑스라는 외국에 떨어져, 지금 도대체 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고문하며 나는 그렇게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지난 삼일간 전부 5건의 전화 메세지를 받았다.

 

부서장의 메세지….

쾌차하기 바란다, 파블리나가 고맙게도 은아씨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자원했으니 회사 일은 걱정말고 쉬다 다시 나오라는.

 

파블리나도 간단한 메세지를 남겨 놓았다.

회사 걱정말라, 몸조리 잘하라…..

 

하루에 한번씩 그것도 아주 정확히 같은 시각인 오전 9 반에 니꼴라가 거의 똑같은 내용의 메세지를 남겼다.

 걱정많이 하고 있고, 매일 생각하고 있으니 빨리 다시 출근하기 바란다. 그리고 전화 해달라….

 

그러나, 신호음이 끊긴 자동응답기가 작동되며 메세지를 남겨달라는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작 용건을 남기지는 않고 그제서야 수화기를 내려놓는 전화는 하루에도 여러번 걸려왔다.

매번 같은 사람이 하는 행동인지는 모르나 하루에도 몇번이나 그런 식으로 메세지를 남기지 않고 응답기의 메세지를 끝까지 듣고 나서야 수화기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아무 없이 들릴듯 말듯한 한숨 소리만 남기고 마지못해 찰칵하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전화……………

전화가 걸려 올때마다 쏘우퍼의 쿠션으로 양쪽 귀를 틀어 막았다.

지금 제가 전화를 받을 없으니 이름과 연락번호를 남겨 주시면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라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미칠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절망의 수렁 속을 허우적대며 삼일 내내 송장마냥 무거운 몸뚱이만 달랑 들고 아파트안을 어슬렁대는 처참한 몰골의 스스로와,

자동응답기가 작동되기 시작될 때마다 사는 것이 너무도 즐거워 행복해 죽겠다는듯이 팡팡튀는 목소리로 메세지를 남겨달라고 재잘대는 여자가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쿠션으로 귀를 틀어막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상대가 전화기를 내려 놓을 때까지 괴성을 질러댔었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거실 쪽을 힘없이 바라 보았다.

 

마침내 여러번 울리던 전화벨소리가 끊기고 자동응답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제가 지금은 전화를 받을 없으니……

 

나는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겨우 기어 들어갔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겨 주시면…….

 

전화가 놓여있는 곳까지 이를 악물고 기어가 있는 힘을 다해 전화코드를 잡아 뺐다.

충격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전화기가 거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싸구려 전화기라 바닥에 닿자마자 산산조각이 버리고 말았다.

 

실내엔 다시 적막만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몸에 남아있던 마지막 기력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거실바닥에 쓰러졌다.

뒷통수가 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의식이 반쯤 빠져나가면서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빨려드는 것만 같은 순간적인 공포심을 느꼈다.

내가 죽는 것일까 ?

죽을 바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걸까 ?

 

그리고는 갑자기 아무 느낌도, 의식도 없어졌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아무것도 없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