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로 샹젤리제 ?
꺄따리나는 니꼴라의 팔짱을 낀채 뭐가 그렇게 즐거운 지 끊임없이 재잘대고 있고 니꼴라는 자기 팔에 매달려 조잘대는 꺄따리나를 별 표정없이 바라보며 걷고 있다.
나는 휴게실로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 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키의 니꼴라를 수줍게 바라보는 꺄따리나의 프로필을 통해 그녀의 통통한 뺨이 살짝 붉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상체를 앞으로 쭈욱 내밀고 커다란 엉덩이를 뒤로 뽑은 채 혹시라도 니꼴라를 놓칠세라 옆에서 잰걸음을 걷는 그녀의 폼이 꼭 짝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쫄바지를 입은 그녀의 비대한 엉덩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양쪽으로 씰룩댔으며 터질듯이 풍만한 가슴은 좀 작아보이는 듯한 브이네크 티셔츠 밖으로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쫄티 안에 갇혀있는 그녀의 두 가슴이 주인의 걸음걸이에 맞춰 철렁댔다, 제 자리로 돌아왔다, 철렁댔다, 제 자리로 돌아왔다 경쾌하게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큭, 하고 웃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읽고있던 서류로 눈을 돌렸다.
잠시후, 꺄따리나와 니꼴라가 나간 문을 열고 한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30 명이 함께 근무하는 사무실이었으나 그때 나만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 안을 가볍게 휘둘러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쪽으로 성큼 걸어왔다.
키가 상당히 크고 금발머리를 짧은 스포츠 형으로 말끔하게 이발한 남자였다.
안녕, 로랭 져스티스라고 합니다. 새로 입사한다던 이 은아씨겠네요 ?
스스로를 먼저 소개한 후 내 이름까지 정확히 발음하는 이 예의바른 남자에게 나도 활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인사를 했다.
미소짓는답시고 입가를 볼 양옆으로 치켜 올린채 눈은 웃지않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 로랭이라는 남자의 미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싱그럽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때 상대의 눈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는 듯한 투명한 시선이 마음에 들어 커피를 산다며 나를 휴게실로 그가 데려가려 할 때 별 저항없이 그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첫 눈에 그에게서 호감을 느꼈다
휴게실에 들어가니 꺄따리나와 니꼴라 주위에 너,댓명이 둘러서서 니꼴라의 농담에 다 함께 큰 소리로 웃고있다.
로랭과 내가 같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로 쏠렸다.
우리 두사람을 재미있다는 듯이 번갈아 보던 니꼴라가 내게 윙크를 했다.
아까 화장실에서의 음탕했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대체 그의 상대 여자는 누구였을까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있는 니꼴라의 시선을 느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려 자판기에서 커피 두잔을 뽑는 로랭의 뒷모습 쪽을 바라 보았다.
커피 두잔을 들고 미리 자리잡고 있는 그룹과 약간 떨어진 자리에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는 로랭의 뒤를 따랐다.
그의 행동에서 로랭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눈치챘다.
자리를 잡고 난 후 로랭이 그룹에게로 다시 다가가 남자들과는 악수로 여자들에게는 가벼운 목례를 하는 것으로 기본인사를 나누는 것을 지켜 보았다.
아주 간단한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도 나는 로랭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예의를 갖춘 괜챦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인사를 끝낸 로랭이 다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니꼴라가 내가 언제부터 근무하고 있는 지를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가 마치자마자 이사람, 저사람이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지난번 직장에서는 무슨 일을 했느냐, 대학에서는 뭘 공부했느냐, 어떻게 하다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었느냐, 불어는 어디서 배웠느냐, 등등.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으나 되도록이면 성실하게 그러나 간략하게 모든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별 말이 없던 꺄따리나가 그때 갑자기 얼마나 많은 외국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일하거나 정착하고 싶어하는 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 주위 사람들이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꺄따리나의 얘기에 모두들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외국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직장을 얻고 사는 것은 좋은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큰일이야.
실업률이 11 퍼센트이니 그야말로 정부가 골치아프지 뭐야.
어디 일자리 뿐이야, 순진한 불란서사람들하고 사랑을 가장해 결혼식을 올린 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후 그냥 이혼해 버리는 거야.
제나라에 두고 온 친가족들을 그때서야 프랑스로 초청 입국시키고….그러면 또 그의 가족들은 불법 체류로 프랑스에 잔류하게 되고…
이런 외국인들이 들끓는 대도시 변두리 지역은 온갖 범죄, 살인치사, 마약, 알코올 상용등이 생활화 되어 치안 부재로 발도 못들여 놓을 지경이 되었고..
정말 우리 프랑스 앞날이 걱정이야.
이대로 가다간 어떻게 될 지 정말..
쟈크 시라크 대통령이라도 되는 양 나라의 앞날 걱정을 늘어놓던 꺄따리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발언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외국인들 부류에 내가 끼는 것도 아닌데 괜시리 그자리가 불편해 졌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를 슬쩍 본 로랭이 갑자기 한국 음식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내가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듯한 그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져 그를 바라보며 우리나라 음식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불고기, 갈비, 잡채, 여러 김치들, 빈대떡, 각종 찌게들, 떡볶기, 김밥, 만두, 돌솥 비빔밥, 냉면, …
내가 신나서 우리나라 음식소개를 하는 것을 보고 있던 꺄따리나가 갑자기,
한국에서는 개고기도 먹는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지요 ?
라고 말하며 나를 본다.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녀는 다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아마 헛소문일꺼야, 그렇지요 ?
프랑스인들에게는 보신탕을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야만스럽게 비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떤 식으로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를 소개해야하나 잠시 고민을 할 때 잠자코 꺄따리나를 쳐다보던 로랭이 내대신 입을 열었다.
어떤 신문에서 봤는데 한국에서는 음식용으로 식용개를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서 사육한다고 들었지.
아무 애완용이나 닥치는 대로 먹는 게 아니라고.
아는 사람은 다 알던데.
사람 혐오증에 걸려 개 수십마리, 고양이들 수십마리랑 동거하고 잇는 브리짓뜨 바르도 같이 머리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사람들이나 개고기를 즐겨하는 한국인들 보고 말도 안되는 비난을 해대는 줄 알았는데,
꺄따리나 너같이 똑똑한 사람이 설마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
아니 그럼,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이네 ?
믿을 수가 없어.
로랭의 말에 지지않고 꺄따리나가 대뜸 말했다.
곧이어, 꺄따리나는 자기가 키우는 마르코라는 개 얘기를 하며, 자기가 그 개를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는 지, 그 개가 얼마나 인텔리젼트한지 마치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도 되는 냥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얼마전, 마르코와 샹젤리제를 산책하는데 글쎄 우리 마르코가 어떤 외국인이 잃어버린 여권이며 달라가 잔뜩 들어있는 지갑을 찾아내 주인을 찾아준 일까지 있어. 정말 대단한 일이지 뭐야.
마르코가 글쎄 그 외국인에게 역시 샹젤리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버뉴라는 추억을 남겨주게 되었지 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로, 샹젤리제를 주인과 함께 산책하던 영리한 프랑스의 개, 마르코 !
무슨 영화 제목같지 않아 ?
자기 스스로 도취된 채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는 꺄따리나의 말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이 와하하,하고 웃었다.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릴 무시한 채 로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빠리의 샹젤리제가 세상에서 재일 아름답다고 한 사람이 그 말을 어느 시대에, 왜 한지나 알고 있는지들 모르겠군.
세계의 모든 대로들을 가보기나 하고 하는 소리면 모르겠지만..
로랭은 내게 가벼운 눈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휴게실을 빠져 나갔다.
얼굴이 빨개진 꺄따리나 옆에 서있던 니꼴라가 로랭이 방금 나간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