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환영
천정에 붙어있던 내 몸이 서서히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 말이 안돼쟎아 ? 어떻게 기본단계부터 엉성하기 짝이없는 이런 프로젝트를 승인할 수 있냐구 ?
어디선가 레티씨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제대로 설명한거야 ?
적막이 감도는 어두컴컴한 터널 안을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한 내 앞에 팔짱을 낀채 독설을 내뿜던 레티씨아의 모습이 어둠을 뚫고 내 시야에 나타난다.
이런 1억 5천만원짜리 쓰레기를 Napoléon이 싸인했다는 것을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니까 글쎄 ?
믿을 수가 없다고 !
Napoléon 이 제대로 브리핑을 받지 못한게 틀림없어.
결재를 다시 받도록 해야해.
살기등등한 태도로 나를 내려다보는 레티씨아, 그녀의 가차없는 공격을 곁 미소를 흘리며 지켜보던 꺄타리나, 그 두 여자 앞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채 여름 마케팅 프로젝트 관련 두툼한 계획서를 들척이며 할 말을 찾는 내 모습이 눈앞에 선명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레티씨아의 말이 맞아, 은아.
이 프로젝트에는 헛점이 너무나 많아.
1억 5천만원의 예산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지않아 ?
어쩌면 Napoléon 이 네 열심에 싸인을 했지, 프로젝트의 치명적인 헛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모두들 알다시피 그는 바쁘쟎아 ?
네가 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불어엔 서투니까……
우리가 네 대신 설명을 해 줄까 ?
걱정마.
네 프로젝트의 메카니즘을 철저히 이해했으니까 .
꺄타리나는 천사나 지을듯한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불쌍하다는 듯이 내려다 보았다.
너무나 너를 도와주고 싶다는 듯이 고개를 약간 옆으로 숙인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부자연스런 태도에 경멸감을 느꼈으나 아무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레티씨아나 꺄타리나나 키가 178cm이었으므로 160cm이 될까말까한 나는 그녀들을 항상 올려다 봐야 한다.
그녀들을 올려다보며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치욕스럽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눈 앞에 선명하던 이미지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터널 안 어둠 속에 외토리로 철저히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다
열심히 눈을 돌려 터널 속을 두리번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이라 발을 더 앞으로 내밀 엄두를 못낸채 엉거주춤 서 있던 그자리에 그대로 선채 숨만 죽일 뿐이다.
함께 여행하자. 내가 네게 놀라운 비밀을 보여 주리라
거실에 앉아있을 때 들린 그 깊은 목소리가 내 머릿 속에서 울리는 듯 하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