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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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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란다가 떨어지는 비 내리던밤....


BY 홍 영 옥 2004-07-12

 


“경 을 칠놈 같으니라구!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하늘로 솟았나?

 

그러니까 부모님이 이름도 경칠 이라고 지었겠지.”

 

 이 외로움의 도시 엘에이에서 하나 뿐인 내 친구 박 경칠 이가

 

 도망을 갔다고 페인트가게에서 만난 여러 사람 들이 난리들이었다.

 

 어떤 사람 말로는 라스베가스로 매일같이 돈다발 들고 가더니

 

하청일 받은 사람들이 땀 흘리며 힘들게 일한 품삯도 안주고

 

 빚에 몰리어 타주로 밤에 몰래 줄행랑 했다는데 아마도

 

동부지역(뉴욕이나 워싱턴 같은)으로 갔을 거라는 추측뿐 이었다.

 

행실이 미운친구였지만 콩알만큼 이나마 의지하던 그가 사라져 버리자

 

이곳이 정떨어지고 점점 싫어져서 슬그머니 나도 어디론가 무작정

 

 가버리고 싶어졌다.

 

남미에 있는 ‘에콰도르’라는 나라에서 살다가 이곳에 온지 삼년

 

되었다는 ‘기쁨’ 이네 아빠가 페인트일 끝난 뒤 가진 술자리에서

 

하던 말이 “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이사 하는 것이 이민이고 그곳에서

 

다시 떠나는 것이 ‘삼 민’ 이야. 그러니까 우리 집 은 ‘삼 민’ 온 셈이야...”

 

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불현듯이 ‘나도 삼 민을 떠나볼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삼 민’가려고 차곡차곡 개어놓은 옷 몇벌 과 양말이 들어있는

 

가방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나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을씨년스럽던 겨울이 지나고 고독의 상징 보라색의 꽃나무인

 

‘자 카란다’ 가 이곳 엘 에이 의 거리를 수놓으며 가득가득 피어나고 있는

 

 봄이 되었다.

 

일주일 내내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남 가주에 이렇게 많은 양의 비가 오는 것은 몇 십 년 만의 일이라고

 

뉴스에서는 보도 하고 있었다.

 

 나 같이 페인트 칠 하는 노가다일은 비 오는 날 이 공치는 날 인 것이다.

 

밤이 되자 빗줄기는 천둥번개를 동반하면서 점점 거세어 졌다.

 

하릴없이 한국의 TV연속극을 비디오로 보면서 쓰디쓴 소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드라마 내용이 지금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선희 와의

 

 정감어린 장면들과 매우 흡사하여 마냥 추억에 젖어

 

시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때 밤이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뜻밖에도 춘 자 가 내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왔다. 그녀는 큰 가방 을 두 손으로 들고 우산도 없이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이제 토니 아빠 집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나는 식탁에 조그만 유리잔을 하나 더 놓으면서 말했다.

 

“나... 중국남자와 헤어졌는데, 오늘 당장 잘 곳이 없어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그 옛날, 나는 개구쟁이 친구들과 동네 뒷동산에 올라 꼭대기부터

 

 데굴데굴 구르기 시합을 하던 추억이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같이 가파른 언덕아래로 한없이 뒹굴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젠 술도 안마시고 마리화나도 끊을 거에요.

 

 술 따르는 일도 이젠 싫어요. 나한테 밥만 먹여주세요”

 

 하고는 천천히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세상살이에 지쳐 낡고 초라한 모습으로 내 가슴에 엎어져 우는

 

 그녀의 서러운 눈물은 그치지 않는 비가 되어 밤새 내리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에 떨어져 나온 ‘자 카 란 다’ 꽃 이파리들이 보도에서

 

 뭇 사람들의 발아래 짓이겨지고 있는 초록의 유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