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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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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사냥


BY 홍 영 옥 2004-07-10

 

필리핀 여자는 피식 웃으며 내 사진 이 붙어있는 서류에 싸인 을

 

해주면서 말했다.

 

 “이제 해외에 같이 여행해도 됩니다 ”

 

 “네?..........”

 

“패스 한거에요. 진국 씨! 이제 합격이에요.”

 

오랜 시간 마음고생하게 했던 미국 땅에서 선 희 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그 영주권을 나도 가지게 되다니...

 

정말 걱정 했던 것 과 는 반대로 너무 쉽게 인터뷰가 끝난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명순 에게 “ 오랜 시간 너무 고마웠어요. 우리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갑시다.” 하였다.

 

그녀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여 주었다.

 

이민국 건물 을 나와 한인 타운으로 가면서 나는 미국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통쾌한 웃음을 와 하하하 하고 웃었다.

 

‘누가 보면 칠뜨기라고 하겠네 ’

 

생각하고 참으려 해도 조금 있으면 너무 좋아서 자꾸만 입이 헤 벌어지도록

 

미친놈처럼 웃게 되는 것이었다.

 

미국도 별거 아니야....

 

 내가 계획한 ‘독수리 사냥’에서 멋지게 이긴 거야.

 

이젠 선희 만 오게 하면 우리 둘의 행복한 새날은 시작 되는 거야.

 

참! 아이는 몇 명을 낳자고 할까?

 

 나는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경칠 이 녀석 불러내서 술이라도 한잔 내가 사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 녀석이 아메리칸 드림이 어쩌구 하면서

 

지상낙원이라고 떠드는 통에 선희 와 내가 뿅 하고 바람이 들어서

 

미국까지 와서 영주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엘에이 한인 타운에서 제일 맛있다고 소문난 “한 일 관” 음식점에서

 

뷔페로 점심을 잘 먹은 뒤 그녀의 아파트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가기 전 우편함을 열어보니 그리운 내 사랑 선 희 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제 우리도 함께 살을 비벼가며 장난하면서 살수 있다고 답장해 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개봉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진국 씨 오는 2월 2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당신의 선희 가 ‘이 태철’ 이라는 남자와 결혼식을 하는 날이야.

 

고향의 부모님이 더 이상 기다릴 순 없다면서 맞선 을 보게 한 뒤

 

날짜를 잡아놓으셨어. 당신도 이제 나를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 우리의 사랑은 젊은 날의 추억으로

 

곱게 접어두기로 해. 안녕.”

 

 짤막한 절교장의 그 날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정말인지 아닌지 여태껏 의 기다림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난다는 것이

 

 앞뒤 분간이 서질 않았다.

 

 나는 다시 되돌아 차를 몰아  가든 그로브 로 나왔다.

 

아까는 바보처럼 자꾸 웃음이 나오더니 지금은 계속 눈물이 줄줄

 

양철지붕위로 빗물이 흘러내리듯이 두볼 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술집인 ‘삼 청 각’에 들어갔더니 춘자도 술을 마시면서 울고 있었다.

 

 “글쎄 우리아들 토니가 꿈에 나타나서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기에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전화했더니 자긴 마미가 한국여자라는 사실이

 

창피해서 받기 싫다면서 다신 연락하지 말래요.”

 

 라고 하면서 또 서럽게 꺼이꺼이 우는 것이었다.

 

조금 뒤 그녀는 “마리화나를 피우면 기분이 좀 좋아 지거든요.”

 

 하면서 내게도 한개 피 주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고 마신 술로 인해

 

이틀 동안이나 아무 일도 못하고 더러운 이세상의 온갖 오물들을

 

 화장실의 변기통을 붙들고 모두 토해내었다.

 

이제 새벽에 명순 의 아파트에 갈 일은 없어졌지만 가끔 전화통화는하였다.

 

 한 달이 되었을즈음 나의영주권 카드가 명순 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유효기간이 십년이라고 씌어있는 오른쪽 옆에는 엄지손가락

 

윗부분의 지문이 찍혀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가서 만날 사람이 사라진 지금의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플라스틱 카드 에 불과했다.

 

일 년이 지나갔다.

 

제법 선선한 가을 날씨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명순 에게 전화를 걸었다.

 

 “낼 모레 수요일에 같이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에 싸인 좀 해주세요.”

 

 “꼭 그래야  되요?”

 

그녀는 나와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아 자꾸만 미루었지만 난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고 명순 을 비롯하여 모든 여자한테도 무관심 해져갔다.

 

결국 우리는 이혼을 하였다.

 

언젠가는 다시 내게로 되돌아 올 것만 같은 선희 와의 결혼을 위해

 

서류를 정리해 두고 싶은 마음이 한구석에 있기도 했다.

 

 다만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영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명순 도 완벽하게 하나의 사업(?)이 마무리 된 목돈으로 다운 페이 를 하고

 

투 베드룸의 조그만 타운 하우스를 구입하여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

 

이후론 나는 그녀를 만난 일도 만날 일도 없어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녀와의 위장결혼은 한국에서만 두 집안의 호적등본에

 

흠집만 남긴 채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