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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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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주권 인터뷰 하는날이...


BY 홍 영 옥 2004-07-08

 

결혼서류로 이민국에 영주권 신청한지 꼭 이년하고도 삼 개월 되었을 때

 

인터뷰하러 오라는 통지서가 왔다.

 

“자슥아! 삼 만불 씩 주고 결혼했으면 데리고 살다가 팽개쳐도 괜찮아.

 

 이민국에서 ‘어제 밤 에 했느냐? 어떤 체위였느냐?

 

무슨 색의 팬티를 입었는가?’ 다 물어 본다더라.”

 

하면서 연신 “받아 놓은 밥상” 타령이었다.

 

순간 한국의 선 희 얼굴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골을 많이 넣고 오래 끓여서 뽀얗게 된 이 국물을 찐하다고 진국

 

이라고 하거든요. 자기는 알짜배기 이 국물처럼 진국이야 진국 ”하였었다.

 

월급 받았다고 저녁상 차려놓은 어느 날 그녀의 그 말이 내 귀를

 

계속 맴돌았다. 나는 일단 그냥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뷰 날 아침은 다른 날보다 더 새벽에 명순 의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콩나물국에 마른멸치볶음, 김치, 김, 계란 후라이로 아침식사를

 

같이 하였다. 이민담당관이 질문하더라도 서로의 대답이 엇갈리지 않도록

 

나는 그녀의 동생, 부모님, 한국의 주소를 메모하고, 생일이 언제이고

 

어디서 알게 되어 결혼하게 된 것 등등 구체적인 사항들을 적어

 

달달 외웠다.

 

나는 처음으로  입어보는 회색양복이 조금 커서 어색했지만 짙은

 

 밤색넥타이까지 매고 그녀를 태운 뒤 이민국으로 향했다.

 

605번 프리웨이를 지나 10번 웨스트로 접어들었다.

 

‘로스 앤 젤리스’ 스트릿 에서 내려 우회전하여 계속 직진하여 갔다.

 

 20가부터 가기 시작하였는데 1가에 가서야 이민국 건물은 오른편쪽에

 

성조기를 펄럭이며 거만하게 서 있었다.

 

 아침 7시 반인데도 검색하는 정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한명씩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것 은 다 꺼내어 소쿠리에 담았는데도,

 

벨트에 딸린 버클에서 삐-익하고 ‘너는 아니야’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벨트까지 벗어주고 나니, 자꾸 내려가려는 바지 땜에 큰 허리춤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탄뒤 우리가 내린 곳은 이층이었다.

 

 208호실은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오십여 석의 의자에 거의 반 이상

 

 앉아 있었다. 나는 명순 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도 거부하는 몸짓을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 서로 다른 대답을

 

하지 말아야하는데....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때 나의 기쁜 첫사랑 선희 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내게 다가오는 것 이었다.

 

 거기에는 선희 에게 집적거리는  공장장 강씨의 능글맞은 얼굴도

 

 함께 보였다. 아이가 셋이나 있는 유부남인 강씨는 얼굴이 곱상한

 

공장의 여자아이들한테는 여지없이 추근대는 “징글 리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선희 를 이곳으로 데려 와야만 하고 그리 될래 면 지금이 순간을

 

아무 의심 없이 무사히 잘 넘어가야만 되는 것 이었다.

 

 내 마음은 달아오르는 질투심으로 인해 결심이 단호해졌다.

 

 “꼭 영주권을 쟁취하여 선 희와 함께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고는 명순 의 손을 부서지도록 힘껏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의 인터뷰 시간은 8시 15분이라고 씌어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거무티티 한 얼굴에 금테안경을 쓴 여자가 우리 담당이었다.

 

 나이가 오십은 넘어보였고, 아마도 필리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도 첫인상이 그리 까다로울것 같지는 않은 좋은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집에 방은 몇 개 있습니까?”

 

 안경너머로 우리 둘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 하나입니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가 대답하였다.

 

우리 둘의 표정과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나는 명순 의 어깨를

 

 오른팔로 감싸 안았다.

 

그러자 그녀도 오른손을 들어 내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아파트 벽은 어떤 칼라입니까?”

 

이민관은 이번에는 너희가 틀리겠지 하는 조소의 표정으로

 

 우릴 째려보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아침 보아왔던 그녀 집의 눈에 익은 색깔을 말하였다.

 

“라이트 핑크”

 

“아침에 집에서 나가는 출근시간이 몇 시입니까?”

 

“.........새벽 여섯시.....”

 

집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는 그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말해버린 셈 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당황스런 질문이었지만

 

나는 참 재치 있게 대답하였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는 거짓은 아닌 것 같다는 안심하는 듯 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휴! 너희들은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리 일찍 일어 날수가 있느냐?

 

너희 한국 사람들은 무척 부지런 하구나 ”

 

그러면서도 그녀는 계속 우리 둘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주시하고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지난번 당신 와이프 생일에는 무엇을 선물하였습니까?”

 

순간 머리속이 텅- 비어 나가는 것 같았다.

 

이건 둘이 말을 짜고 안했으니 아차하고 앞뒤 말을 잘못하면 큰일이었다.

 

 여기 미국인들은 시시껄렁한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거짓말 한다는 것

 

이 밝혀지게 되면 그때부터 야단법석으로 처음부터 철저히

 

다시 조사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적잖이 걱정되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사랑하는 선 희 에게 언젠가 생일선물로 안개꽃에 가득 둘러싸여

 

있는 열정적인 장미를 한 다발 선물하였던 기억이 번쩍하듯 떠올랐다.

 

 “빨강색 장미꽃 스물 네 송이”

 

 라고 말하고는 옆의 명순 의 발 을 슬쩍 밟았다.

 

영문을 모르는 명순 에게 그냥 무조건 받았다고 하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또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개를 기릅니까?”

 

하면서 책상 밑으로 엎드려 두루마리 휴지를 한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는 두어 번 감아올리면서 물었다.

 

 “예 쓰”

 

나는 씩 웃으며 긴장한 듯이 대답하였다.

 

“이름은 ?”

 

하면서 이번에는 두 손으로 아까의 휴지를 코에다 대고 “패-앵”하고는

 

 풀더니 다시 접어서 또 한번 콧물을 닦아내었다.

 

 “순 돌이”

 

나는 나를 몹시도 좋아하던 한국에서 의 우리 집 진돗개의 이름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수 도 르 ?”

 

그녀는 지독한 감기가 들었는지 빨개진 코를 한번 더 휴지로 닦아내면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아이는 몇 낳을 거죠?”

 

“셋 이요”

 

 명순 은 마치 자신의 대답이 결정적인 순간의 승리자나 되는 것처럼

 

 대답했다. 그녀는 나와의 이 가짜 결혼이 진짜 로 착각 하는 것 은 아닌가?

 

어디서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셋이나 낳겠다고 하는 건지

 

나는 짐작 을 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