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십년이 홀로 울면서 흘러갔다.
나는 성수 동 에 있는 형광등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서 ‘김 선 희’ 라는 동갑내기 여자와 운명적인 만남의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보통 키에다 갈대처럼 휘청거리는 허리와 쌍꺼풀이 없는
약간 작고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
함박꽃 같이 하얀 피부미인으로 예쁘장하고 고운모습은
쳐다보고만 있어도 나는 가슴이 떨려왔다.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음성은 향기로운 음악처럼 들려왔고,
슬그머니 내가 손을 잡았을 때 그녀 의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선희 는 깍쟁이면서도 남의 슬픈 일 에 감동을 잘하는 가슴이 따뜻한
여자였다. 나는 그녀를 알게 된 것에 기뻐했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녀를 알게 된 이후로 선희 의 존재는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고,
삶의 목적이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무조건 다 해주고 싶었고,
식사할 때는 선희 가 먼저 맛있게 다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뒤에 남은 음식을 먹었다.
그래도 마음은 항상 행복으로 가득 찼고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공장 기숙사 에서 숙박을 하고 있는 나에게 선희 와 함께 살아야 할
아파트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언제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진국 씨! 우리도 독수리 사냥하러 갈까?”
“독수리 사냥 이라?”
“미국을 상징하는 새가 독수리래. 그래서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영주권가지는 것을 독수리사냥 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도 미국에 가서
집 걱정 없이 살아보자. 응?”
“.............”
“미국은 여기같이 전세방 이 없고 아파트 월세만 있어서 목돈 없이도
잘 살수가 있대. 진국 씨가 먼저 가서 자리 잡고 뒤에 내가가면 되잖아.
가짜결혼 알선해주는 사람이 그러는데 일년이면 다시 이혼하고
우리가 결혼하여 영주권을 신청 할수 있다고 하던데....”
미국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선희 의 이야기에 나는 그때부터 이민가는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결국엔 위장결혼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으로 결론 내리곤
서류상의 아내인 명순 의 오빠를 만나 일을 진행하게 되어 결국엔
나 혼자만 먼저 미국에 오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