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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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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의 남자


BY 고은샘 2004-05-20

주영은 너무 빨리 남자를 알았다.

스무살.

우리는 성년식이니 뭐니 한창 들떠 있었다.

주영은 가구 공장에 경리로 취업을 했다.

사실 그 자리는 나에게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자리였으나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아서 주영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주영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주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하야. 나 첫월급 탔어. 맛있는거 사줄께. 나와."

나는 그때까지 취업이 되지 않아 공무원시험을 공부하는 중이었고 윤희는 대입을 위해 한해 재수중이었다.

"뜨락으로 나올래?"

뜨락은 근방에서 가장 고급스러워보이는 레스토랑이다.

"기집애. 학교 다닐때는 지 남자 친구만 챙기더만 이제 철 들었구나."

"으응......그래......"

그런데 순간 주영이 무언가 할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레스토랑에는 평일 오후라 별로 손님이 없었다.

"뭐 먹을래?"

"응. 우리 오랜만에 칼질이나 할까? 부드러운 걸루."

"그래. 내가 한턱 쏠께."

주영은 예쁘장하고 늘씬한 외모만큼 학창시절부터 남자가 많았다.

그러나 늘 주영은 한 남자에게만 빠져있었다.

그 남자 역시 내가 선배언니를 통해 소개해주었다.

선배언니는 우리학교 방송부였는데 유난히 발이 넓었다.

"언니. 우리도 남자좀 소개시켜줘."

"그래? 너희도 그런데 관심있는줄 몰랐는걸."

우리는 그 선배언니로부터 두남자를 소개받았다.

한명은 승철.나의 파트너이고 다른 한명은 인수. 주영의 파트너였다.

사실 승철은 그저 그랬다.

그러나 주영의 파트너인 인수는 내가 보기에도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멋진 남자였다.

주영은 빠져들었다.

그리고 늘 나를 데리고 다녔다.

물론 승철도 함께.

주영은 분식집에서 친구들이랑 라면하나를 먹거나 튀김하나를 먹더라도 돈을 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인수에게는 달랐다.

인수에게는 몇만원짜리 선물도 주저 않았다.

그런 주영을 친구들은 나무랐지만 나는 그럴수 없었다.

어느날 주영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우리 주영이 그기 있니?"

"네에. 지금 슈퍼에 잠시 갔는데요."

나는 얼결에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후 주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엄마한테 전화왔었지?"

"그래. 어떻게 된거니? 내가 여기 있다고 하긴 했는데...... 여기 오는 중이니?"

"아니."

"주영아......"

불안한 마음이 10시를 가르키는 시계앞에 멈췄다.

"주영아. 어디 있는거니?"

"......"

"주영아......"

뚜ㅡ뚜우-

그렇게 전화가 끊어졌다.

다음날 나는 하루종일 주영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주영은 나를 외면했다.

저녁에 친구들과 헤어진후 주영이 집에 찾아갔다.

주영의 부모님은 모두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집에는 주영이 혼자였다.

"주영아. 이제 말할수 있지?  너 어떻게 된거니?"

"은하야"

주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은하야. 나 인수오빠에게 내 모든것을 바쳤어."

"주. 주영아......"

나는 숨이 멎을것 같았다.

안돼. 주영아. 안돼.

우린 너무 어리잖아.

주영아. 너희 잘못되면 내가 너를 어찌 보라고.

나는 목이 메여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은하야. 나. 나 말이야. 인수오빠에게 다 주고 싶었어."

"설마 니가 먼저 원했니?"

"아니. 인수오빠가. 인수오빠가 오래전부터 원해왔어. 그런데 그동안 많이 망설였어."

"그런데? 그런데 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화가 났다.

"나 꼭 인수오빠에게 순결을 바치고 싶었어. 인수오빠 잃고 싶지 않아. "

주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 그래서 한숨도 못잤어.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그 어떠한 계산도 하지 말자고 다짐했어. 내가 줄수 있는건 다 주고 싶었어. 그래. 그것뿐이야."

주영은 고개 숙여 울었다.

나는 주영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나도 주영의 등에 엎드려 함께 울었다.

그러나 주영이 그렇게 사랑했던 주영의 첫사랑 인수오빠는 대학에 입학한후 주영을 멀리 했다.

주영은 나와 함께 호프집에서 호프 1000cc를 들이키며 울었다.

나는 달리 위로할 말이 없었다.

어디 남자가 그놈 뿐이냐고.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냐고. 대학갔다고 다 잘되는건 아니라고. 그놈 인생 지랄같이 꼬이라고. 나쁜놈.

나는 나를 통해 알게 된 남자에게서 상처받은 주영을 보며 가슴 한구석 마음의 짐이 무겁게 눌러졌다.

그런 주영이에게 또 아픔이 찾아온다면 그것도 내가 소개해준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면 나는 평생 주영을 볼수 없을것 같았다.

"주영아......"